나의 글에 남겨진 현명하고 소중한 충고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들을 했다.
너의 집 앞에 찾아가 새로운 남자의 차에서 내릴 때, 네 발밑에 네가 남기고 간 너의 물건을 집어던지고 오면 마음이 편할까?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내마음이 통쾌할 듯하다.
한번 배신 했는데 두번은 못할거 같냐는 말은 덤으로 남겨주고.
그러나 아니지.
그건 둘 다 패자가 되는 방법이니, 패자 둘에게 상처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는 짓이겠지.
그래도 너는, 너라도 승자로 남는 게 그나마 나은 결과이리라.
어제는 처음으로 밥을 먹었다.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 안타까워 하시는 목소리를 반찬으로 내어주시며...
그 목소리를 들으니 설움이 북받쳐 눈물이 나는 것을 이 악물고 참아냈다.
모래알 같이 입안에서 맴돌기만 하는 밥알을 100번은 씹어야 간신히 삼킬 수 있었다.
밥을 먹어도 배가 부른지 고픈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억지로 밥을 먹었다.
네가 어머니댁에서 맛있게 먹던 꽃게탕이 있더라.
오늘은 일찍 일어나 산으로 향했다.
5시간을 넘게 산속을 걷고 또 걸었다.
얼마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이 너무 상하였는지, 술병을 끼고 지내서였는지 너무나 힘들더라.
너무나 힘들고 숨이 차면 너의 생각은 하지 않을지 알았는데, 지난 시간 길을 걸을때마다 내게 꼭 안겨 걷던 너처럼 결코 떨어져 나가지않더라.
한번도 '너'라고 불러 본 적이 없어, 약간은 죄스러운 이마음이 긴 글을 써나가면서도 조금도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간신히 집 근처 초동학교 옆 공원 도착하여 벤치에 앉아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를 들었다.
세상에 근심은 하나도 없다는 듯이, 그네 하나에도 모든 걸 다가진듯한 천진난만함이 나의 마음을 꼭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그 곳도 너와 사진을 찍고 나의 컴퓨터 바탕화면을 장식했던 곳이더라.
그 생각이 들자 눈을 돌리는 길을 걸어가며 사진을 찍던 자리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 곧 자리를 떴다.
집으로 와 예의 돌덩어리 같은 밥을 준비했다.
충고의 글들을 읽으며, 몸이 상하면 정신도 상한다는 말을 들었고, 그것은 평소에도 나의 지론이었지.
정신줄을 놓고 있다보니 무엇이 옳은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살았던 사람이었는지를 모두 잊었던 탓이리라.
아직도 끈질기게 씹어야만 하는 밥과 아무런 맛도 없는 반찬. 아~ 저건 네가 좋아하던 멸치볶음인데.
씻고 잠시 앉아서 나의 글에 쓰여진 충고의 글들을 다시 본다.
어제만 해도 눈앞이 흐려져 잘 읽을 수 없었던 글들이 그래도 조금은 보인다.
그리고 몇 자 써내려가고 있는 이와중에도 너와 함께 갔던 곳들이 섬광처럼 스쳐가며 긴 잔상을 남긴다.
이 섬광과 잔상은 앞으로도 계속 되겠지. 질려 버릴 정도로 반복한 후에야 없어질테지.
산위에 올라 드넓게 펼쳐진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이 지구에서, 아주 작은 변방의 이 나라에서, 수많은 도시들 중 하나일 뿐인 이곳의, 어딨는지 찾기도 힘든 작은 방에서 세상의 슬픔을 내가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깨달음같은건 없고, 단지 그런 생각만을 한 것뿐.
낮에는 한없이 걷고 밤에는 심장이 터지라고 달린다.
조금만 멈춰서 이렇게 살다가 다시금 나의 삶을 찾아야겠지.
조금씩 나의 삶을, 나 혼자만의 살을 찾아감과 동시에 너도 조금씩 사라져주겠니?
한번에 사라져 달라곤 하지 않아. 조금씩이라도 확실하게 잊혀졌으면 좋겠다.
한가지만 부탁하자면, 우리의 추억이 싸그리 날아가는 기분때문에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카톡에 새로운 사람과의 사진은 당분간만 올리지 말아줘.
네가 그렇게 빨리 차단하지 않았으면 미리 말했을텐데.
아마도 이 여름이 지나면 낙엽과 함께 너는 사라져가겠지.
아직 너에 대한 마음이 남아 있을때, 한번만, 너의 그 청명한 목소리로 보고싶다고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