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인지 환상이었는지 구분은 안가지만, 그런 세세한 구분은 신경쓰지 않는다.
파티장이었다. 꽤나 고전적인 분위기를 서양식 파티였다. 남자들은 체형은 달랐으나 모두 고급스러운 양복을 자랑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색색깔의 드레스를 뽐내고 있었다. 모두가 자신의 잔을 들고 서있었다. 어디선가 4분의 3박자의 우아한 왈츠 소리도 들려왔다. 자기 파트너를 찾은 자들은 그 왈츠 선율에 몸을 맡긴 체 아름다운 춤사위를 펼쳐내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서 꽤나 격식있고 분위기 있는 파티라고 생각했다.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지만 말이다.
참석한 자들이 모두 포도주였다.
팔다리와 몸뚱아리는 모두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윗가슴에서부터 꼭대기의 코르크 마개로 이어지는 기다란 형태는 분명 포도주 병이었다. 안에는 액체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허나 당시엔 이게 그리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포도주병들이 나누는 이야기들을 한마디도 이해하진 못했지만 '뭐 어때'하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사실, 그런 점을 제외하면 꽤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웨이터들로 추정되는 포도주들이 권하는 핑거푸드들의 맛도 훌륭했다. 몇번이나 말하는 것이지만, 상당히 훌륭한 파티였다.
분위기는 무르익어 슬슬 마무리를 향해 나아가는 듯 했다. 어디에선가 이 파티의 주최자로 추정되는 포도주병이 파티장 중앙에 있는 무대위로 올라왔다. 꽤나 즐거운지 손발을 까불대고 있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둥,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았겠지.
순간 한 눈을 판 사이에 무대 위에 올라선 포도주 병은 안주머니에서 묵직해 보이는 쇠망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걸 자신의 코르크 마개 위로 힘차게 쳐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이 신호탄이었음에 틀림이 없었다.
주위의 병들도 어느 샌가 자신의 쇠망치를 꺼내어 들어올렸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힘차게 내리쳤다. 한 병도 빠짐없이.
유리 조각은 깨어져서 바닥에 흩뿌려졌다. 하나 둘 위엣부분이 깨어진 몸둥아리들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붉은 포도주(희한하게 그 많던 포도주들 중 백포도주는 없었다. 기묘하기도 해라.)는 바닥을 흥건이 적셔 일종의 빨간 호수를 만들어 내었다. 병들이 들고있던 잔에는 적포도주가 그득그득 채워졌다.
그러나 그 잔들을 비우는 자는 한명도 없었다.
출처 |
내 뇌 주름 어딘가에 낑겨있던 종잇조각에서 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