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할아버지께서는 1933년 생이십니다.
그래서 해방되는 1945년까지 진주에서 국민학교를 다니셨죠.
딱히 할아버지께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해준 적은 많이 없지만 그나마 몇 개 들은 게 기억이 나서 끄적여봅니다.
일제시대 때 국민학교를 다니셔서 그런지 할아버지께서는 아직도 일본말을 읽을 줄 아십니다. 카페에서 일본산 캔커피를 사셨을 때도 캔에 적힌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다 읽으셨으니까 말이죠.
그리고 기미가요도 아직 가사를 기억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왈 "학교에 가면 아침 조례 시간 때 일장기 앞에서 기미가요를 불렀고, 정오가 되면 관공서에서 사이렌이 울리는데, 그때 일장기를 바라보고 기미가요를 또 불러야 했다"라고...
박정희 전대갈 때 오후 5시만 되면 태극기 하강할 때 애국가 불렀던 의례(?)가 아마 일제시대 때 기미가요 의례에서 비롯된 걸로 보이네요..
1945년 해방 때 썰도 기억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해방 당일에는 할아버지는 아무 거도 모르고 계셨는데, 다음날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는데, 할아버지께서 학교를 다니는 길에 파출소와 일본인 저택이 있었나 봅니다.
근데 그날(아마 8월 16일이었을 겁니다)에 파출소를 지나가는데 파출소 안에 순사가 없더랩니다. 조금 더 걸어가서 일본인 저택에 다다랐을 때는 저택의 대문이 열려있지 않고 잠겨 있더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의아해 하셨는데, 골목에서 마을 주민들이 칼이며 낫이며 들고서는 "일본놈들 다 때려 죽이자!"라면서 일본인들이 사는 곳으로 가던 모습을 보셨다고 하네요.
이게 할아버지께서 겪으신 해방 썰.
덤으로 그때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들었는지도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때는 밥도 먹을 돈이 없어서 고구마를 밭에 심어서 수확한 것의 대부분은 내다 팔고 x만한 크기의 고구마나 몇 개 삶아서 김치에 싸서 식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고기는 언제부터 좀 드셨냐고 여쭈어보니 "그때 우리같은 평민들은 고기먹을 꿈도 안 꿨다"라고(...)
어쨌거나... 앞으로도 할아버지께 썰 좀 많이 풀어달라고 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