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타닥 거리는 소리에 나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우산은 없었다. 가만히 앉아 창 밖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하늘과 투명한 물방울.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역시 그 때가 떠오른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 때를. 나는 떳떳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몇 년 전, 나는 성매매 업소의 관리자였다. 관리자라 해도 높은 직책은 아니었고 그냥 무슨 일이 있으면 손 봐주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무렵의 나는 무언가 어긋나 있었다. 나쁜 짓임을 알고도 저지르고 사람따위 물건처럼 바라보는. 그냥 쓰레기였다. 그리고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언제나 웃고 있었다. 나이도 가장 어렸고. 그 때문인지 인기도 가장 좋았다. 잘 웃어주고 어리고 얼굴도 반반한 여자라면 맥을 못추리는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그런, 멍청한 생물이다. 어느 날, 어디 회장이라는 인간이 그녀에게 팔을 두르고 방에 들어갔다. 나는 그냥 스쳐지나가려 했지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살짝 웃어주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물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게 우리들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였나. 비가 내렸었다. 비가 내리면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지 못하게 했다. 형님이 그 쪽으로 민감했었고 담배를 피는 건 관리자 중에서 나 뿐이었기에. 그래서 나는 오피스텔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공원에 나가서 담배를 폈다. 평소에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공원이라 그곳이면 뭐라할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날은 달랐다. 누군가 공원 한복판에서 비를 맞고 서 있었던 것이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 그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손을 뻗어 비를 맞고만 있었다. 별 사람이 다 있구나 하고선 담배를 물었었다. 한 대를 피고, 두 대를 피고, 세 대를 펴도. 그 사람은 여전히 그 곳에 서 있었다.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했지만 그냥 지나갔었다. 그 사람을 도울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굳이 착한 짓을 할 만큼 선한 사람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다음 날에도 비가 내렸다. 장마란다. 나는 쳇, 하고 소리를 내며 우산을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도착한 공원에는 그때처럼 누군가가 서있었다. 똑같이 비를 맞으며, 손을 뻗고. 이번에도 하염없이 비를 맞고만 있었다. 이번에는 다가가 보았다.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놀랍게도 그 사람은 아는 사람이었다. 바로 우리 업소의 에이스인 그녀였다. 그녀는 젖은 눈으로 날 바라보곤 살짝 웃었다. 난 그때는 몰랐지만 그 순간 그녀에게 반했다고 생각한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 젖은 투명한 황갈색 눈동자에 그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는 웃음에 빠지지 않고 있을 수 있을까. 다만 나는 여러군데가 고장난 사람이었기에 그런 것을 몰랐을 뿐이다.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 나를 보곤 그녀가 먼저 말했다. "정말 좋은 날이네요." 거무튀튀한 하늘에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도. 그리고 푹 젖은 그 상태에서.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 웃음을 지었었다. 지금에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한마디가 되었지만. 그리고 우리들은 그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비가 오는 날, 3시에서 5시 사이에만 장마기간에 한번 비가 내리지 않은 적이 있었지만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어머니는 사고로 잃었고 아버지는 도망갔다고 했다. 그 외에는 동생이 한 명 있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녀는 가족 얘기를 하지 않았기에 이것 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하지만 가족 얘기를 할 때, 슬픈 눈으로 서있었던 것은 알고 있다. 그 뒤로 가족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녀의 취미는 춤이었다. 그녀는 원래 발레를 했었다고 했다. 그 점을 봐서 더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고도 말했지만. 그녀는 디저트를 좋아한다고 했다. 마카롱이라던지, 바클라바라던지. 나는 물론 그게 뭔지 몰랐지만 달콤한 음식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녀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멀리멀리, 아름다운 곳에. 그 누구도 모르는 곳에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어두운 게 무섭다고 했다. 가로등이라도, 달빛이라도 좋으니 빛이 필요하다고 했다. 캄캄한 곳에 있으면 한 발자국도 내딛기 어렵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비가 좋다고 했다. 깨끗한 비가, 시원한 비가. 그래서 그녀는 비가 올 때마다 비를 맞는다고 했다. 나는 그녀를 알아가면서 사람을 알아갔다. 나에게 있어 한낱 업소 에이스일 뿐이었던 그녀는 나의 고장난 부분들을 고쳐주었다. "사람은 물건이 아니에요." 그녀는 말했다. 몸을 파는 자신 같은 사람에게도 마음이 있고, 좋아하는 것이 있고, 싫어하는 것이 있다고 . 그녀는 말했다. 당연한 말이다. 정말 당연한 말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그것이 당연하지 않았다. 그만큼 부서져 있었다. 그날 밤은 잠에 들지 못했었다. 나 자신이 해온 일에 휩싸여서. "세상은 돈이 전부가 아니에요." 그녀는 말했다. 이런 일을 하는 자신이 말하는 것도 뭐하지만, 하고는 멋쩍은 듯 웃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가장 소중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역설적으로 나는 돈을 쓰지 않게 되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마치 갈구하듯 썼던 돈을 더이상 그렇게 쓸 수 없었다. 내가 갈망하던 것들은 결국 얄팍한 종이 쪼가리로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행복은 소소하게 어디에나 있는 법이에요." 잔혹해보이는 세상에도 언제나 행복은 깃들어 있다고. 길가에 핀 작은 꽃이 행복일 수도. 이런 비 또한 행복일 수도 있다고. 나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3시의 비내리는 공원같은게 행복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행복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도. 그것 또한, 처음으로 생긴 소중한 것이었다. 그것 말고도 많은 것들을 말해주었다. 자신 스스로는 소중하다는 것을. 꿈을 가지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누구나가 다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어느때나 희망을 버리면 안된다는 것을. 그녀는 말했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 눈동자에 비친 나는 점점 변해갔다. 점차 기계에서 사람이 되어갔다.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고 꿈을 가지게 되었고 소중한 것이 생겼고 행복을 꿈꾸게 되었고 그리고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관리자일 뿐이었고. 신음소리가 흐르는 곳에서 눈을 부라리는, 사람이나 때리고 다니는 인간일 뿐이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비는 내리지 않는다. 어느새 장마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끝없이, 끝없이. 세상이 물로 가득 찰 때 까지. 그 물에 휩쓸린다 해도. 계속 비가 내리길 바랬다. 잔혹하게도 그런 일은 없다. 티비에서 장마의 마지막을 알렸다. 나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그 또한 처음이었다. 시계를 보았다. 3시였다. 다행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그녀가 처음 만났던 그 모습대로 서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우산을 씌워주었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뭐라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뭐라 말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것이 고백이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살짝 웃으며 다시 빗 속으로 나갔다. 그리곤 고맙다고,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눈에는 여전히 슬픔이 담겨있었다. 그녀는 덧붙였다. 그건 이뤄질 수 없는 꿈이라고. 나는 뭐라 말하고 싶었다. 꿈을 꾸라고 한 것은 행복은 어디에나 있다고 한 것은 소중한 것을 만들게 한 것은 전부 당신이라고. 다만 나는 동시에 그녀의 그 눈동자를 떠올리고 말았다. 언제나 그녀는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그 눈 속에는 현실이 담겨있음을. 어두컴컴한 세상이 담겨있음을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런 나를 바라보고선 그녀는 말 없이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춤추었다. 그것은 여태까지 보았던 무엇보다도 아름다웠고 무엇보다도 슬펐다. 마지막에 그녀는 아름답게 한바퀴 턴 하고서는 웃었다. 처음으로 본 그 슬픔이 담겨있지 않은, 꿈꾸는 듯한 웃음에 나는 처음으로 순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차갑고도 투명한 빗방울과 함께 그렇게 내 사랑은 끝났다. 그 다음 날, 나는 잘렸다. 형님은 나에게 말했다. 어느새 사람이 되어버렸다, 라고. 그 말대로였다. 더이상 이 곳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떠났다. 그리고 지금에 다다른다. 지금은 꿈도 있고, 직장도 있다. 1년 사이에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모은 돈으로 집도 구했고, 처음으로 일반인 친구도 사귀었다. 더이상 과음도 하지 않고. 담배도 끊었다. 그래도 하나 변하지 않은 건 있다. 분명 나는 그 사랑을 끝났다라고 표현했지만 아마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비가 오는 날에는 그 시간들을 떠올리고 마는 것이다. 그 시간들이 떠오르는 이상, 끝나지 않을 것이다. 편의점을 나섰다. 편의점 직원이 개인 우산이 두 개니 쓰고 가라고 했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나는 비를 맞으며 걸어갔다. 옷이 젖어 온 몸에 달라붙었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녀는 왜 비를 맞고 있었을까. 당시의 나는 그냥 그녀가 비를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빗방울이 차갑고도 투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 더럽혀진 자신 스스로를 투명한 빗물에 씻겨 보내고자 했던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현실이 잔혹하다 해도 그 시간만은 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슬픈 눈을 한 것이겠지. 그래서 그렇게 아름다웠던 것이겠지. 그래서 그렇게 꿈 같이 느껴졌던 것이겠지. 그래서 나는 꿈을 꾼다. '언젠가 다시.' 그것은 빗방울에도 씻겨나가지 않는 모양이다. 그 시간이 씻겨나가지 않는 것 처럼. 문득 춤을 추고 싶어졌다. 할 줄 아는 것은 허접한 탭댄스 정도지만. 타닥 거리는 소리를 내며 길 한복판에서 춤을 췄다. 차갑고도 투명한 빗방울에 온 몸이 젖어가면서. 그때와 달리 전혀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때처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