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국, 한반도가 아닌 대마도에 있었다" 2012-10-11
하늘에서 바라본 대마도 전경과 이병선 전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왼쪽 사진). 부산일보 DB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 일부를 지배한 증거라고 일본 역사학자들이 주장했던 '임나국(任那國)'은 실제로 한반도 남부가 아니라 일본 대마도에 있었으며, 대마도는 7세기 말까지 한국에 속해 있었다는 주장이 한 국내 원로 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한국지명학회 고문인 이병선(85) 전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가 최근 펴낸 '한국 고대 국명 지명의 어원 연구'라는 책의 논지다. 30여 년간 일본 고대 신화, 역사서를 섭렵하고 현지 지명까지 조사해 이를 다시 어원과 음운학적 분석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이 교수는 "옛날엔 주민의 이주로 동일한 지명이 여러 곳에 생겨나곤 한다. 대마도와 일본 본토에서 한반도의 지명이 널리 보이는 것은 이곳이 고대 한반도 주민의 이주지였기 때문으로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대마도 지명.
이 교수는 82년부터 대마도를 수차례 답사해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任那)'와 관련된 지명 80여 개를 찾아냈다. 이를 근거로 '임나'가 일본에 있었다는 '임나 대마도설'을 주장한다. 이는 일본 사학계의 '임나는 지금의 한반도 남부(김해 등) 지역'이란 주장과 맞선다.
'일본서기' 숭신 65년기에 임나국의 위치를 언급하고 있는데, 임나는 북규슈 축자국에서 이천여 리 떨어져 있고 계림(경주)의 서남쪽에 있다고 나와 있다. '환단고기'에는 더 분명하게 임나가 애초 대마도 서북계에 있었는데 후에 대마도 전체를 칭하는 이름이 됐다고 기록돼 있다. 이 교수는 임나가라가 대마도 하도(下島)인 계지(계知)가라에서 직선거리로 5㎞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결국, 임나가 대마도에 있었다는 얘기다.
나아가 이 교수는 "대마도가 7세기 말까지 한국의 속도(屬島)였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따르면 대마도의 백제와 고구려 읍락은 후견자 역할을 한 한반도 내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시기와 비슷하게 쇠락했고, 대마도의 신라 읍락은 600년과 623년 왜의 두 차례 공격을 받아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는 왜가 대마도에 지방관청을 설치했다는 684년께에 이르러서야 대마도가 일본의 영토가 됐다고 본다.
또 대마도의 삼가라(三加羅)를 통해 광개토왕 비문에 등장하는 임나가라(任那加羅)의 실체도 규명한다. 그는 임나가라의 가라를 변한지역의 가라(가야)로 본 일본 사학자의 주장과 달리 대마도의 삼가라(좌호, 인위, 계지가라)처럼 또 다른 보통명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일본서기에 임나와 함께 왜에 조공한 신라, 백제, 고려를 한반도의 신라, 백제, 고구려로 잘못 알고 있지만, 이 역시 7세기 말까지 대마도에 존재했던 신라, 백제, 고구려의 읍락(邑落)들이었다고 본다.
이 교수가 이번에 출간한 책은 30년 전에 그가 펴낸 '한국 고대 국명 지명 연구'를 대폭 수정·보완한 것으로 당시에는 임나와 대마도 관련 부분이 빠져 있었다.
그는 "일본 사학자들의 그릇된 역사관을 비판하고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되찾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사학계 일각에서는 "어느 특정 지역에 살던 사람이 다른 지역에 옮겨 살게 되면 본래의 지명을 많이 가지고 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그곳이 이전에 살던 곳의 식민지였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