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어학연수 처음 갔을 때 였다.
일본에서 살 집만 한국에서 구하고, 히라가나도 모르고 그냥떠났다.
지금보면 참 무모한 사람이었다.
어쩄든 도착해서 그럭저럭 영어만으로 살아가는게 가능했는데,
흰옷을 즐겨입는지라 집근처에 작은 드럭스토어가서 표백제가 어딨냐고 영어로 물어봤다.
근데, 있는 점원은 영어를 하나도 못하는 사람. 아담하고 귀엽게 생긴.
나도 일본어는 하나도 모르는 상황인데다
핸드폰도 없어서 번역기도 사용불가능.. 사전도 없음.
그런데, 그 점원이
서로 대화가 안통하는 상황에서도, 땀이 송글송글 맺히면서도.
어떻게든 내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해주더라.
20분정도 서로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하면서 표백제라는걸 찾아다 주었다.
알고보니 그냥 세제였고 , 표백제는 일본어가 어느정도 된 다음에서야 살수있게 됬지만, 참.. 일본잘왔구나 생각했다.
그 단순한 세제 하나를 파는데 20분을 설명하면서도, 단 한순간도 웃음을 잃지않는 모습이..
혹시나 알아들을까. 미련하다 싶을정도로 일본어로 계속 이야기 하면서도
손발로 표현해주는 그 서비스정신이든 마음씨던 너무 감사했다.
어떤 누가 나의 마음을 알기위해 이런 노력을 할까, 부모님이외에 이럴수가 있나..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사람이다.
그때마다 필요한게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가게 되었고,
물건 이외에도 맛집, 일본어학원 등등을 손짓 발짓으로 내가 찾아갈때마다 알려주었다.
핸드폰이 생긴뒤에는 필요한거를 번역한 한자를 보여주면서 거기서만 꼭 물건을 샀다.
많이 돌아다닌뒤라 그곳이 싼곳은 아니라는걸 금방 알게됐지만, 그래도 거기서 가서 샀다.
생판 남에게서
겉 친절이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을,
한국인이 아니라 내가 쪽바리라부르던 일본인에게서 25년만에 처음 느꼈거든.
2개월 공부해서, 일본어로 그때의 고마움을 담아서 편지를 써줬다.
그 점원이 내가 그렇게까지 도움이되었는지 몰랐다고 감사하다고 하면서 90도로 인사하고
기쁨의 눈물을 조금 흘리더라.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 다음에 뭐라고 했는데, 아마 손님앞에서 울컥해서 미안하다고 했던 것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사람은 자신의 번호를 알려주고,
필요한거나 도움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달라고 했다.
일본티비 수신료를 받으러 온 사람이, 왜 수신료를 안내냐고, 조센징이라는 소리를 하면서 무시할때,
전화하자마자 바로와서, 부장이 찾아와서 사과를 하게 해줬다.
같이 쇼핑갔을때, 하라주쿠의 GAP 직원이 똥씹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볼때
나대신 화를 내주며, 사과를 받아내주었다.
방사능 피폭때문에 걱정인 나를 위로하며, 짧은 기간이라 괜찮을거라고 다독여 주었다.
후쿠시마근처의 한자를 모두 알려주며 이 원산지의 물건만 안사면 될거라고 굳이 알려주었다.
일본인으로서 기분 나빴을텐데..
작은 차로 나와 어학원의 한국인친구를 태우고 바다를 보여주기도 했었다.
그사람의 할머님 할아버님에게 가정식을 대접받기도 하고, 일본의 시골같은 한적한 곳에도 가볼 수 있었다.
당시 그 사람 할아버님이 꽤 큰 플라스틱 제조업체 회장이셨고, 아버님이 사장이셨는데
한국에서 중산층도안되었던 우리집보다 더 작은곳에서 알뜰하고 검소하게 생활하고 계셨다.
그런 집안의 딸이 동네 약국에서 일을하고있었다니.. 놀라웠다.
그분들과 즐겁게 맥주를 마시고 취해 다음날 일어났을때,
벗어뒀다가 없어졌던 옷들이 저녁때 세탁한 뒤 정성스럽게 포개져서 있는 모습에
부끄러우면서도 너무 감사했다.
떠날때 할머님께서는 우리 왼손에 도시락을, 오른손에는 편지봉투를 쥐어주셨는데, 각각 2장의 편지와 2만엔이 들어있었다.
그땐 아무생각없이 꽁돈이 생셨다고 기뻐했는데, 지금와서 생각하면 울컥한다.
그 편지는 사회생활하면서 너무 힘들때, 맥주를 마시면서 읽는데.. 슬프고 그리우면서도 큰 힘이된다.
그 이후로
한달에 두번 정도?
그 사람은 우리집에 가끔 들러, 부족한게 있으면 기억해뒀다가 다음에 올때 사다주는 섬세함과 넉넉한 마음씨가 있었다.
편리한 생필품이나 가구가있으면 선물해주기도 했었다.
물론 나도, 6개월 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그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선물들을 해주기 시작했지만..
받은거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도 처음으로 한국인과 연을 맺게 되었던 거였고, 나로 인해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남녀사이인데다, 서로 각자의 애인이있어 스킨쉽은 전혀 안하면서 선을 지켰는데
한국으로 귀국하는 전날 두손으로 얼굴을가리고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던 그 친구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자기 딴에는 떠나기 1달전에야 드디어 마음을 열었다고 하더라. 근데 왜이렇게 가버리냐고..
나는 그사람이 마음을 여는데 그렇게 오래걸린줄 모르고 있었다. 친한줄 알았는데;
한국에 도착하고, 2달정도 지났을까.. 국제전화가와서
남자친구랑 헤어졌다고, 너가 너무 보고싶다고 했었는데
여자친구가 있는 내 입장과, 취준의 상황을 설명하며, 완곡히 거절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괜찮으면 여자친구와 함께봐도 괜찮냐는 말에, 그렇게 대화는 끝이나버렸다.
그때의 여자친구를 정말 사랑했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한사람의 마음을 거절하는게 너무나 미안했다. 거절이라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럽고 미안한 것인줄 몰랐다.
몇년이 지나고..
내가 여자친구와 헤어진 다음에, 몇번 연락이와서 사귀는 단계까지 갈뻔했으나..
그때마다 상황과 어떤이유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
그때는 내가 취준이였기에 자신감도.. 여유도 없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예전의 그 사람을 잊지못하고 있기때문도 있었을것이고..
확신을 갖지못하는 내가 확신을 강요할순 없었다.
또 그렇게 1년이 지난 뒤, 나는 취업을 했다가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시간적이든 금전적이든 여유가 생긴 2달 전쯤.
그녀가 결혼을 한다고 연락이왔다.
그사람 할아버지 회사의 직원이라 하더라.
다음달에 그사람의 결혼식에 가는데, 20만엔 축의금 넣고 올 생각이다.
그사람이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다.
곧 갈께. 결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