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성에 대한 의문을 알고는 있습니다만 다음은 나무위키 발췌입니다.
민병두(閔丙梪, 1958년 6월 10일 횡성 ~ )는 대한민국 정치인으로 현재 3선(제17, 19, 20대)
국회의원이다.
대학 때 전두환 등의 신군부 세력에 항거하여 민주화운동을 선두에 서서 헤쳐 나가다 두 번 투옥되었으며, 이후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학림사건은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고 사법부가 과거의 잘못된 판결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문화일보 기자 시절 워싱턴 특파원ᆞ정치부장을 역임하였으며, ‘국회 노동위 돈봉투 사건’, ‘국정원 정치개입 문건’ 등의 특종을 터뜨리며 다수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문화일보 야당반장ᆞ국회반장ᆞ정치부장시절에는 특종뿐만 아니라 의제설정 등으로 뉴스를 주도하는 등 영향력을 발휘했다. 진보ᆞ중도ᆞ보수 언론을 막론하고 영향을 끼쳐서 전략적 능력을 인정받아 2004년 열린우리당 창당시 영입됐다. 제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총선기획단장으로 활약하면서 총선을 성공적으로 이끈 후 제17대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17대 국회에서 본회의 100프로 출석등 성실한 의정활동과 함께 아시아문화중심도시지원법 문화예술교육지원법 평생교육법 제정을 통해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등의 입법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초선의원으로는 드물게 전략기획본부장, 홍보기획본부장, 열린정책연구원 수석부원장, 정책위수석부의장 등 당내 핵심 요직을 거치며 전략가와 논객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지금도 정책통 전략가 논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제18대 총선에서는 당시 야권의 불모지였던
동대문구을에 출마, 낙선하였으나, 제19대 총선에서는 당시 여당대표였던
홍준표 후보와의 대결에서 승리하여 제19대 총선의 최대 이변으로 평가받았다. 당시 여당후보였던 홍준표 후보는 낙선이 확실시 된 후 자신의 트위터에 “30년 공직생활을 마감합니다”라는 글을 남기며 정계은퇴선언을 할 정도였다.
소선거구제가 부활한 1988년 이후 동대문을에서 최초의 민주당계열 국회의원으로 원내에 진출하면서 여러 족적을 남겼다. 2012년 대선 직후에는
경제민주화ᆞ복지확대등 대선 당시 양당의 약속 중 공통되는 것을 이행하자고 제안해 경제민주화의 입법적 물꼬를 텄다.
일감몰아주기 금지법, 편의점 및 프랜차이즈 불공정 해소법 등 경제민주화를 제도개선에 앞장섰으며, 상가권리금을 최초로 법제화한 바 있다. 차명거래를 금지하는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을 21년만에 통과시켰다. 2014년에는 을을 위한 정당이라는 전략지도를 제시했고 이를위한 특별위원회 명칭으로 을지로위원회를 제안해 오늘날 민주당의 대표브랜드가 되게하는데 일조했다. 민주정책연구원 원장으로 국내 최초로 정책엑스포를 주도하였으며, 유능한 경제정당ᆞ든든한 안보정당이라는 진로를 제시했다.
2016년 총선에서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선정한 경제민주화, 양극화해소 디딤돌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제 20대 총선에서도 빼어난 의정활동과 지역활동을 바탕으로 상대후보를 큰 차로 압승하여 야당출신으로 동대문을에서 최초로 3선 국회의원 고지에 올랐다. 국회
정무위에서 계속 활동하며 보훈업무지원ᆞ국민권익신장ᆞ공정거래ᆞ금융정의를 위한 노력을 하고있다.
정치노선은 정체성에 기반한 확장주의, 사회경제노선은 진보적이되 대중의 신뢰를 중시하는 정치스타일이며,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한다.
민주정책연구원장 시절 펴낸 '새로운 진보정치' '수권정당의 길'은 정체성에 기반한 확장주의와 집권로드맵을 담은 것이다.
오늘 김상조 교수님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더민당 민병두 의원님이 너무 인상적이라 이래저래 검색질을 좀 해보았습니다.
제 개인적인 검색 결과는 이래저래... 멋있는 분이시더군요.
이런 분들을 하나 하나 발굴해내고 칭찬하고 띄워주는것도 주권자로서의 하나의 의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제풀을 넓혀가고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들을 적립하는것도 중요한 정치행위의 일환일것같습니다.
근데 민의원님한테 응원문자라도 하나 보내려고 열심히 연락처를 검색했으나 핸펀 번호를 모르겠네요.
아시는 분 있으시면 댓글 부탁드리고 모두들 응원문자라고 하나씩 보냈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