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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주의) (수정) 한국의 페미니즘은 왜 남성을 설득하지 못할까?
게시물ID : military_775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시엔
추천 : 18
조회수 : 666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7/06/03 00:39:49

<5.17 작성했던 글에서 조금 더 내용을 추가하고, 가독성 좋게 다듬었습니다.>



<서론>

최근 인터넷에서 가장 핫한 주제라고 한다면 단연 남녀 갈등 구조일 것이다.

예전부터 근근이 이어져오던 남녀 갈등은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인터넷만 들어가 보면 마치 혐오의 시대가 온 것만 같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성차별이든 인종차별이든 없어져야 하는 게 맞고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여러 종류의 차별은 존재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 어머니 시대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지금보다 훨씬 성차별이 만연하였다.

이에 입각해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한국 사회 속에 만연한 여성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큰 틀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자고로 사회운동은 성 소수자 문제인종 문제장애인 문제 등을

막론하고 반드시 다수에게 공감과 이해를 구해야만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고 그 운동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설득하고자 하는 대상이 나의 주장을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문제점이 개선이 될 것인가?

하지만 어째서인지 페미들의 주장은 설득하고자 하는 대상인 남성에게 공감과 이해를 얻지 못한다.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본론에서 계속 이어가겠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몇 가지만 먼저 얘기하겠다.

이것은 글쓴이 개인의 의견이므로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인터넷을 보다 보면 메갈리아 같은 급진적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의 일부일 뿐

페미니즘 자체는 좋은 운동이다페미니즘에 대해 오해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얘기를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의견에 반대한다.

 

인간과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언어이든 생활이든 모든 것은 변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당최 알아들을 수도 없는 신조어도 계속 생겨나고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과학기술을 마음껏 누리며 생활하고 있다페미니즘 같은 사상도 마찬가지이다.

 

최초의 의미가 어쨌든 간에 현대 사회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변한 것이다.

강산도 10년이면 바뀐다는데 이런 것이 안 바뀌겠나?

 

두 번째로는 메갈리아 같이 진정한 성 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게 아닌

단순히 여성의 이익을 위한 단체는 이미 소수가 아니라 다수라는 의견이다.

대부분의 사회운동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은 단연

정책 개선과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개선이다.

 

흑인이 지금보다 차별받던 시대에도 여러 사회운동을 통해

이 둘을 이루었기 때문에 흑인 인권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들을 보호하고사회 구성원들이 이에 동의했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이미 이 둘 중 하나인 정책 개선에 다가가고 있다.

가장 큰 여성 단체인 여성민우회에서 활동하는 많은 여성운동가가 이미 메갈의 사상에 동조하였고,

각종 꼴페미 발언을 일삼던 남윤인순을 현 대통령 문재인이 영입하였다.

이미 의미가 변질된 한국의 페미니즘은 정책 개선이라는 패를 하나 쥐었다.

 

더 이상 소수의 의견이 아닌 것이다따라서 아래서 전개할 내용들은

이러한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 다수라는 걸 전제로 진행될 것이다.

 

 

<본론>

지금부터는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이 왜 설득해야 할 대상인

남성을 설득하지 못하는지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목차

1. 지나친 정보의 편식왜곡취사선택

   1) OECD가 인정한 여성차별 국가 대한민국?

   2) 여성의 목숨이 위협받는 나라 대한민국?

2. 미소 지니와 여성 혐오의 오남용

   1) 너는 여성 혐오자야!

   2) 너는 잠재적 가해자야!

3. 페미니즘의 종교화와 정당화

   1) 내 목숨을 페미니즘에

   2) 나는 해도 돼

 

1. 지나친 정보의 편식왜곡취사선택

 

여성들은 끊임없이 여성의 고통을 이해하고 없애라고 주장하지만 남성들은 그러지 못한다 왜 그럴까?

일단 젠더 이슈에 가장 민감한 건 보편적으로 인터넷과 친근한 20-30대 남녀들이다.

특히 이들이 감정적 대립을 일으키는 이유는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들은 남성들이 갖고 있었던 기득권(기울어진 운동장)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을 내려놓아야만 진정한 평등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안티 페미니스트들은 특정 성에 대한 징벌적·대결적 접근에 호소하는

페미니즘은 평등의 본령에서 이미 멀어져 있다고 응수한다.

페미니즘은 이미 젊은 남성들이 갖고 있지 않은 기득권을 핑계를 대며

오히려 엉뚱한 특권과 불평등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임금격차 문제를 보면 20~30대 남성의 경우 자신들이 또래 여성보다 자신이 노동시장에서

특별히 더 유리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끼지 않는다이것은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오히려 군 복무 등으로 인한 늦은 노동 시장 진입에서 오는 역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비교기준이 어머니나 이모가 아니라 또래 여성과 자신의 현재 소득이기 때문이다.

 

한편 젊은 여성의 경우는 자신의 이모나 어머니 그리고 여자 선배가 비교 대상이다.

더 열악한 노동시장에서 더 낮은 대우를 받으며 또한 결혼·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을 겪는 모습을

흔하게 보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닥쳐올지 모를 평생 소득의 감소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1) OECD가 인정한 여성 혐오 국가 대한민국?

 

페미니스트들이 한국에 여성 혐오가 만연하다는 증거로 자주 가져오는 것이 OECD 남녀 임금격차와

가사노동 분담률이다. OECD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이 두 지표는 겉보기에는 그럴싸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이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는다.

 

한 예를 들자면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생각 많은 둘째 언니"라는 분이 있다.

한창 메갈리아 이슈가 터졌을 때 이분은 매 갈리아를 은근히 옹호하며 메갈리아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에만 초점을 두지 말고 왜 메갈리아가 생겼는지 그 사회적 구조에 관심을 가지라고

주장을 하였다그러면서 이 분 역시 OECD 임금격차를 들먹이며 한국 사회의

구조적 여성차별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생각은 많았지만 깊지는 않았던 이 언니는 무엇 때문에

이런 지표가 나왔는지는 생각하지 않은듯하다.

 

이들의 주장은 한국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OECD가 25-64살 인구를 가지고 통계를 낸 지표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급속도로 성장을 이룬 나라다.

유럽과 미국처럼 전란 속에서 여성이 의무와 희생을 감내하며 서서히 얻어낸 여권 신장과 달리,

우리나라의 여권 신장은 단기간에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성 평등 지수에서 하위를 기록할 세대와 상위를 기록할 세대가

하나의 표본 아래 묶여 통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60대 이상 여성과 20-40세대 여성 간 문맹률을 비교해보면 이 점을 알 수 있다.

60대 이상 할머니들 중에서는 심심치 않게 한글을 배우지 못한 분들을 볼 수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본 교육마저 받지 못한 분들이다.

그러나 현재는 오히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앞섰다.

 

다음은 가사노동 분담이다한국의 가사노동 분담률은 지표만 본다면 정말 최악이다.

통계청의 생활시간 조사에 의하면 2014년에도 20세 이상 기혼여성의 가사노동시간

(가정관리와 가족 보살피기 노동)은 하루 평균 3시간 58분이지만

기혼 남성의 가사노동시간은 53분에 지나지 않았다. 4배에 가까운 격차이다.

절대적인 시간으로 본다면 여성이 남성보다 3시간 더 가사노동을 한다.

 

하지만 이 통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가사노동시간 격차의 뒤에는 노동시간의 격차가 존재한다.

 

많이들 알다시피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은 OECD 1위를 달리고 있다.

2014년 20세 이상 기혼 남녀 인구를 기준으로 볼 때,

남성의 경우 하루 평균(휴일 포함) 5시간 2분을 일한다면

20세 이상 기혼여성의 경우 2시간 32분을 일한다.

이에 더해서 출퇴근을 포함한 이동시간 (남성은 1시간 52분 여성은 1시간 24)까지 고려하면

남녀 격차는 세 시간 가까이 벌어진다앞서 본 가사노동시간 격차에 맞먹는 수치이다.

 

남녀 모두 여가는 물론이고 가정을 돌볼 절대적 시간이 적다는 소리이다.

결국한국 기혼남녀의 생활상을 요약하자면남녀 모두에게 장시간의 노동시간이 부과되고,

남녀 모두에게 짧은 가사노동과 여가가 허용되며가사노동은 여성에게 전가되고 야근 및 잔업 등의

장시간의 경제적 노동은 남성에게 전가되는 양상을 볼 수 있다.

여기서는 남녀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청년 세대에서는 남녀 차별이 크게 해소되었고,

이들이 기성세대가 되는 시점이 오면 대부분의 지표가 크게 개선될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지표를 가지고 오면서 우리나라가 이슬람권 국가인 터키보다 유리천장이

심한 나라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과 공감을 얻기가 힘들다.

 

이코노미스트지의 유리천장 지수는 대한민국의 '유리천장이 심각한 수준이다'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도리어 '여권신장이 단기간에 급속하게 이루어져 세대 간 격차가 크다'라는

점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대한민국에 '여성 혐오'가 만연했다면,

이러한 급격한 여권 신장은 이루어질 수가 없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 '여성 혐오'가 만연함을 근거로 삼아 탄생한

메갈/워마드 같은 급진 페미들의 존립 근거는 부정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들이 임금격차를 근거로 한국이 여혐 국가라고

얘기하는 이 OECD 지수의 종합 순위는 무려 4위이다.

 

또한 올해 UN에서 발표한 성 평등 지수에서 한국은 세계 10아시아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이 여혐 국가라고 주장하는 의견과는 사뭇 다른 결과들이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중에서 이 통계 결과를 인용하는 사람은 살면서 한 번도 못 봤다.

알다시피 많은 언론과 여성계에서는 여성의 불행만을 말하는 경향이 매우 짙다.

 

2) 여성의 목숨이 위협받는 나라 대한민국?

 

강남역 사건 이후지금까지 인터넷에서 페미니스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거짓말 안치고 이 얘기 안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한국은 강력범죄 피해자의 80%가 여성인 만큼 여성에게 위험한 나라이다."

 

이들은 어떠한 것을 근거로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일까?

 

첫 번째이들 주장의 근거는 2013년 UN 마약범죄사무소의 202개국 가운데

통가 아이슬란드 일본 뉴질랜드 라트비아 홍콩과 더불어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살해되는 7개국에 포함됐다는 것이 그 근거이다.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한국에도 여성 혐오에서 비롯된 여성 살인의 위험이 심각하다고

분석한 이 기사는 우선 통계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출발한다.

 

기사가 인용한 자료는 살인사건에 대한 통계이지 혐오 범죄에 대한 통계가 아니다.

게다가 기사에서 거론된 여성이 더 많이 살해되는 국가 중 아이슬란드일본 등은

OECD 국가 중에서도 강력범죄는 물론이고 살인범죄의 발생 빈도가 절대적으로 낮은 국가 중 하나이다.

 

예컨대 2015년 기준의 OECD 통계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와 일본의 살인범죄 발생 빈도는

10만 명당 0.3명이며 이는 10만 명당 1.1명인 한국이나 1.2명인 뉴질랜드에 비해서도 낮다.

한편 OECD 평균 살인범죄 발생 빈도는 10만 명당 4.1명이다.

 

이처럼 아이슬란드 일본 한국 뉴질랜드 홍콩 같은 국가 혹은 도시는

개발도상국인 통가나 한 해 10만 명당 6.1명의 살인 피해자를 낸

OECD 내 치안 불안정 국가 라트비아와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게다가 강남역 사건 당시 많은 사람이 잊고 있었지만현실의 안전과 가장 먼저

직결되는 수치는 범죄 피해자 내부의 남녀 비율이 아니라 범죄 자체의 발생 빈도이다.

피해자 성비 자체에서 여성의 안전 문제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많지 않다.

 

조금 더 깊이 UN 마약범죄사무소의 통계를 들여다보자.

 

실제로 기사의 내용대로 지난 2011년 한국의 살인 피해자 비율은

남성이 47.5%, 여성이 52.5%로 기록됐다.

그렇다면 기사에서 한국과 더불어 여성이 더 많이 살해된 나라로 거론된 아이슬란드는 어떨까?

 

아이슬란드는 해마다 여성 피해자 비율이 0%에서 100%라는 극단을 오간다.

2012년에는 여성 살해 피해자 비율이 100%라는 수치를 보이지만

2010년에는 정반대로 남성 피해자가 100% 비율을 보인다.

아이슬란드 같은 경우는 사실 피해자 성비를 따지는 것이 거의 무의미할 정도로

살인사건의 건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낮은 나라이다.

 

이와 비슷하게 일본도 2011년 살인범죄의 여성 피해자 비율이 52.9%를 기록하여

남성보다 비중이 높았지만 2007년과 2005년 그리고 2004년에는 남성 피해자 비율이 높았다.

그리고 더 장기적인 시계열(2004~2011)을 보면 대체로 남녀 피해자 비율이

50:50 수준에서 왔다 갔다 하는 추세를 보인다.

 

이처럼 실제 통계를 들여다보면서 수치들을 무작정 인용하기보다는

통계의 국제적·시간적 추세를 볼 필요가 있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는 보고에서 살인범죄 발생 빈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구체적으로는 10만 명 당 1명에 근접할수록살인범죄 피해자의

남녀 성비가 1:1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54p)는 사실을 보고하고 있다.

 

또한서유럽과 동아시아 일부 국가 역시 살인범죄 피해자 성비가 1:1에 근접한 동시에

이들 국가 상당수가 살인범죄 발생 빈도가 낮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28p).

한국이 바로 그러한 나라이다.

 

이처럼 전반적인 범죄 위협이 낮은 일부 국가 중에서 상대적 피해자 성비가

특정 시점에 일시적으로 역전된 현상을 여성 혐오에 의한 범죄가 만연한 현상으로

해석하는 것은 완전한 억측이다.

 

이 모든 제반 사정들이 생략된 통계자료는 언론에 의해

대한민국은 202개국 중에서 유독 여성이 더 많이 살해당하는 국가 중 하나라는

공포스러운 메시지로 변환된다.

 

통계와 사실에 대한 편식왜곡취사선택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두 번째페미니스트들이 항상 거론하는 강력범죄 피해자 성비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독특한 강력범죄 기준을 알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강력범죄는 폭력과 무기가 수반된 범죄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대표적으로 폭행·상해·강도·살인·성범죄·방화 등이 있다.

 

한편 경찰청 통계 등 일련의 국내 기관들이 작성하는 강력범죄 통계는

강력범죄 중에서 이른바 흉악범죄로 분류되는

살인·방화·강도·성범죄(강간·유사강간·강제추행·강간추행)에 한정된 것이다.

 

방화가 강력범죄로 포함되고 강간에서 몰카 범죄까지 다양한 유형의 성범죄가

강력범죄로 포함되어 있다이것은 한국의 관행적이고 독특한 강력범죄 분류 기준이다.

미국 법무부의 강력범죄(Violent Crime) 통계를 보면 한국과 달리 방화가 빠져있고

폭행 사건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흉악범죄 기준으로 강력범죄 통계를 볼 때 여성 피해자 비율이 높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강력범죄 중에서 폭행 및 상해가 제외되고 성범죄의 범위를 늘려 잡으면

성범죄가 강력범죄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흉악범죄 중 성범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경찰청 통계 기준 80%에 달한다.

 

이는 한국이 성범죄 천국이어서가 아니라 살인·강도·방화사 건의 발생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과 최근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진 몰카 범죄와 같은 성폭력 사건도

강력범죄로 분류되는 특유의 통계 분류 원칙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처럼 범죄 발생 빈도에서 흉악범 죄보다 더 많고 남성 피해자 비율도 여성보다

훨씬 높은 폭행죄’, ‘상해죄’ 등 다른 강력범죄 항목을 제외하고

남은 흉악범죄만을 한정해서 본다면 여성 피해자 비율이 더 높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참고로 2013년 기준 살인·강도·방화의 남녀 피해자 성비는 1.3:1이다(경찰청 통계).

 

즉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것은 강력범죄 전체의 성비 불균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범죄의 성비 불균형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그동안 페미들은 해당 통계를 인용하며 성범죄 외의 흉악범죄에서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가 만연하고 있는 것처럼 통계를 왜곡하고 있다.

 

물론 성범죄 피해자 중 절대다수가 여성이라는 것은 사실이고,

분명히 우리 사회가 고쳐나가야 할 문제이다하지만 이러한 통계 왜곡을

그들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이념적으로 올바른 주장이라 해도 정확하지 않은 수단으로

뒷받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여성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한국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이런 지점에서 설득력을 잃는 것이다.

 

 

2. 미소 지니와 여성 혐오의 오남용

 

1) 너는 여성 혐오자야!

 

최근 일부 학계와 저널리즘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여성 혐오’(misogyny)라는 용어의 오·남용 역시 이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는 부분이다.

원래 미소 지니라는 용어의 사전 저 의미는 여성에 대한 혐오(hate)와 경멸(contempt)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부 여성주의자들이 사용하는 미소 지니라는 용어는 그 사전적 의미를

훨씬 초과하는 맥락들 (성차별성 고정관념성적 대상화 등등)을 끌어들인다.

예컨대 우에노 치지 코와 같은 여성주의자들이 사용하는 미소 지니 개념은 가부장제 사회 내에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뿌리 깊은 혐오와 경멸 그리고 열등·우월의식 등이 뒤섞인 콤플렉스를

내면화하고 있다는전형적인 정신분석적’ 주장으로까지 이어진다.

 

이처럼 미소 짓니를 남성이 여성에 대해 갖는 내면화된 콤플렉스 전반으로까지 규정한다면,

미소 지니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만능 요술봉이 된다.

 

예컨대 여성이 남성이나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과 달리,

오직 남성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만이 심층적으로는 여성을 동등한 주체로

사고하길 거부하는 혐오 의식에서 비롯된다 논리 또는 여성을 싫어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명백한 여성 혐오다더 나아가 여성에 대해 무관심한 것조차 뒤틀린 남성성의 발현이다 등등.

 

일부 여성주의자들은 종종 이 모든 것들여성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그리고 여성에게

무관심한 태도 전반 모두를 다 미소 지니라는 개념 아래 포괄하는 논리를 구사하기도 한다.

 

이처럼 현재 의미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여혐=미소 지니’ 개념은 성적 대상화의 문제뿐만 아니라,

고정된 성 역할이나 성차별 그리고 성폭력과 여성에 대한 증오 발언 등의 모든 젠더 문제들을 한데

뒤섞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마치 모든 사회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처럼 취급된다.

 

미소 지니 개념이 너무 광범위한 것이 문제다여기서 진짜 되물어야 할 것은

사전적인 의미를 넘어서까지도 미소 지니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느냐다.

 

미소 지니=여성 혐오’ 번역이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미소 지니까 원래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

무분별한 낙인으로 사용되는 것이 핵심이다.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이 개념은 여성에 대한 남성 측의 모든 불쾌한 태도를 의미한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이 불쾌한 태도 속에는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정당한 반론과 문제 제기조차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그럼에도페미니즘>이라는 저서에서는 자신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다고

말하는 젊은 남성들이 여성 혐오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젊은 남성들이 역차별을 받는 부분은 분명 사회 곳곳에 존재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것에 대한 문제 제기를 단지 여성 혐오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은 낙인에 지나지 않는다.

 

또 다른 일례로한 기사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둘러싼 논란 및 메갈리아 논란과 관련해

페미니즘과 한국 사회 내 깊게 뿌리박힌 여성 혐오 간의 극적인 전투가 시작됐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내보낸 바 있다.

 

한국 사회 내 깊게 뿌리박힌 여성 혐오 세력이란,

페미니스트들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미소 지니라는 낙인 프레임으로 젠더 이슈를 바라볼수록 역설적이게도

상대방에 대한 비이성적인 공포와 혐오는 더욱 극대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문제 해결에 동참해야 할 절반에 가까운 인구를 논의와 참여에서 배제하고낙인을 찍고,

상호 간의 대결 프레임을 고착화하는 결과만을 반복해서 초래했다는 것이다.

 

메갈리아 이슈라든가강남역 이슈에서 자신에게 불쾌한 사실과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여성 혐오라고 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낙인 찍기는 쉽다.

자신에 대한 공격은 "여성 혐오"로 치부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한국의 페미니즘은 또 한번 남성을 설득하는데 실패하였다.

인터넷에서 가끔 보이는 우스갯소리인 "나 그냥 여혐 할란 다"가 그 예시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모든 것을 여성 혐오로 치부하는 여성계의 주장에 남성들은

공감과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2) 너는 잠재적 가해자야!

 

강남역 살인사건 발생 이후잠재적 가해자 논란이 일어났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로 인해 결국 여성 피해자가 죽임을 당했고,

여성 혐오를 방관한 현대의 남성들은 죄의식을 가지고반성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참으로 놀랍고도 신비로운 논리이지만잠재적 가해자 논란은 생각보다 영향력이 있었다.

실제로 뇌 대신 불어터진 라면사리가 들어간 일부 남성들이

자존심도스스로 생각해볼 두뇌도 없다는 것을 인증이라도 하듯이 너도나도

"나는 잠재적 가해자"입니다따위의 팻말을 들고 인증 사진을 올렸다.

 

이들의 논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공화주의를 이해해야 한다.

이 중에서도 "알레스 데어 매킨 타이어"의 서사적 인간관을 이 사건에 대입하고 있다.

 

서사적 인간관은 한 인간의 자아가 그 사람이 속한 공동체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하기 때문에 공동체의 영향 없이 자아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를 예시로 들면 한국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한국의 문화에 영향을

받으면서 자아를 성립한다는 뜻이다.

 

매킨 타이어는 더 나아가 공동체의 좋은 유산을 물려받으면서,

왜 공동체의 나쁜 유산에는 침묵하고 있냐고 지적하였다.

 

다시 예를 들면 독일이 현재까지도 전쟁 발발의 책임을 지고 있고사죄하고 있는 이유는

당시에 독일이라는 공동체의 가치가 투영된 행동이었고그 공동체의 영향을 받은

우리는 여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매킨 타이어의 서사적 인간관은 공동체의 유산에서 개인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지

개인의 행동이 공동체의 유산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전쟁 발발에 대해 독일이 사과하고노예제에 대해 미국 정부가 배상을 하고,

일본에 위안부 문제를 계속 이야기하는 것은 공동체의 유산이라는 개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개인의 행동과 공동체를 똑같이 보는 개념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만약 "여성을 살해해도 된다"라는 공동체적 합의가 있었다면,

이것은 공동체에 속한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맞다.

하지만 우리나라 어디에도 "여성을 살해해도 된다"라는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에겐 "여성을 살해해도 된다"라는 공동체의 유산은 없는 것이다.

 

한국인 조승희가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였을 때,

미국 정부에서는 어떠한 형식으로도 우리나라 정부에게 항의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한국 공동체의 합의가 아니라 개인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들의 좀 더 영리했다면 차라리 가부장제나 여성 혐오에

동조해온 남성들이 책임을 져라혹은 역차별에 대해 인내해라!라고 주장했다면

그나마 더 나은 논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물론 이 역시도 성 평등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고가부장제를 만드는 것에는 여성 역시 동참했기 때문에

결국 도태될 주장이지만 적어도 잠재적 가해자 이야기보단 낫다.

 

결국 이런 식의 궤변 역시 너무나도 쉽게 반박이 가능한 내용들이고,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하는 내용들이다.

 

3. 페미니즘의 종교화와 정당화

 

1) 내 목숨을 페미니즘에

 

이번 문단은 2번 문단과 비슷한 맥락이 되는 내용들이다.

페미니즘의 종교화란 모든 가치 위에 페미니즘을 두는 것을 뜻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메갈리아가 일삼던 미러링이라고 주장하는

각종 남성 혐오 호성 발언과 모방 범죄마녀사냥이 있다.

메갈리아 같은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의 원하는

페미니즘을 위해서 어떠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이 하는 모든 행위는 성 평등을 위한 고결한 행위라고 믿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행사 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추모행사를 남녀 갈등으로 번지지 말자고 주장했던 한 남성과 여중생이 폭행을 당했다.

이들을 폭행당한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이 둘이 페미니스트들에게 불쾌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어떠한 경우에도 폭행은 정당화되어서는 안된다혹은

"폭행은 범죄이다"를 망각하게 된 것이다.

 

인터넷에서도 이 현상은 매우 심각하다.

본인들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불쾌한 것이나 자신들의 의견에

반하는 모든 대상에게 낙인을 찍고 폭언욕설루머 생산을 반복한다.

 

이로 인해 많은 연예인들이 사과를 해야 했고웹툰 작가 마인드 C는 우울증에 걸렸으며,

사야카 씨는 수차례 책 출판이 엎어졌다. SJ 레스토랑의 셰프는 가게 문을 닫고

아직까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이 여성 혐오적 발언이나 행동을 했다고 말하는

이들의 논리와 근거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기틀이 약하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 대한 인민재판을 스스로 집행한다.

이는 엄연한 범죄이고타인을 향한 폭력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로 인해 남이 피해를 받는 것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들은 성 평등이라는 고귀한 임무를 지닌 전사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상식에 어긋나는 과도한 행동들은 이를 지켜보는

대중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은 커녕 혐오감만 불러왔다.

 

 

2) 나는 해도 돼

 

일베의 혐오발언이 일부의 문제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사례들 역시

단지 일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위에 서도 한 번 언급된 유튜버나인터넷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혐오발언 쉴더들이 자주 하는 말들이 있다.

 

"미러링은 그동안 사회속에 만연하던 여성혐오를 일깨워줬다."

"우리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다."

 

이런 주장은 메갈리아 신드롬 역시 기본적으로 불특정 다수로부터 받은

여성 대상의 혐오발언과 사이버 테러를 다른 불특정 다수에게 되갚겠다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그 동안 내가 피해자였으므로 이번에는 내가 가해자 집단이 되겠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이 주장을 지배하는 평등관·정의관이란

내가 맞았으니 이제는 내가 너를 때려야겠다는 식의 뒤틀린 평등주의뒤틀린 정의라는 점이다.

이러한 뒤틀린 평등주의를 집단의 뒤에 숨어서 불특정 다수를 향해 피력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인터넷상 젠더논쟁에서 일어나는 도덕적·심리적 퇴행과 악순환의 정체이다.

 

그런데 현재에도 메갈리아에서 파생된 각종 혐오발언은

이제는 넷상에서 뿐만이 아니라 공식적인 페미니즘 명함을 단 인사들 사이에서도

일반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다일례로 한국의 대표 여성주의자 정희진은 최근 강연에서

한남과의 사랑은 가능한가라는 표제를 가져갔다.

 

비슷한 사례로 김치녀와의 사랑은 가능한가라는 제목의 강연을 기획했다면

그 강연자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하는 혐오발언에는 남들과 달리 더 고상한 도덕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궤변 역시 자신들의 행동은 옳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끝내기 전에>

이 문단은 거의 넋두리인 내용이다.

인터넷에서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자와 대화를 하면서 좋게 끝난 기억은 별로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답답한 것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논점을 이동시키는 점이다.

 

한가지 글쓴이의 경험을 사례로 들자면글쓴이는 유튜브를 자주 이용하는데,

자연스레 페미니즘과 관련된 게시글도 많이 보게 된다.

 

그러다 문득 여성 징병에 대한 주제로 댓글이 있길래 여성 징병의

필요성과 그것이 왜 성 평등한 제도인지 얘기를 했더니 이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고

강력범죄 여성 피해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여기에 대해 반박해주면

또 원래 주제랑은 아예 상관이 없는 임금격차나유리천장성 평등 지수를 들고 온다.

이에 대해서도 반박해주면 결국 마지막 패턴은 항상 비슷하다.

 

"당신이 여성의 고통에 대해서 뭘 알아요"

"당신이 하는 게 여성 혐오에요", "당신은 차별주의자에요"

라는 식으로 대답 회피나 낙인 찍기 혹은 무반응(+차단)이다.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사람들과의 대화 중 아직까지 이러한 패턴을 벗어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기본적인 토론을 할 자세가 안되어있는 아주 비겁한 행동들이다.

 

 

<결론>

페미니스트들은 성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남성에게도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도 대개 막연한 선언적 주장에 그치곤 하며

또한 많은 이들에게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기보다는 일종의 화전양면전술로 받아들여진다.

 

왜냐하면 (1) 여성에게 지워진 부담을 나눠 가지는만큼 남성에게도 무엇이 좋은지그리고

(2) 여성에게 지워진 부담의 반대편에서 다른 누군가 어떤 부담을 가져왔는지,

그것을 대개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사노동 격차나 임금 격차군대 문제는 그중 몇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 정도면 다행인 수준이고,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은 애초에 공격의 대상이 잘못되어있다.

결국 페미니즘이 부셔야 할 적은 가부장제이지 현대의 남성이 아니다.

현대의 남성 역시 가부장제로 인한 피해를 겪는 사람들이고,

이들에게조차 낙인을 찍고 죗값을 물으려 한다면반발심이 생기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결과이다.

 

게다가 이 땅에서 차별받고 고통받는 이들은 여성들뿐만이 아니다.

노동자학생장애우성 소수자노인어린아이심지어 그들이 기득권이라고 지목하는

성인 남성들도 정도와 방식의 차이일 뿐이지 여성들 못지않은 차별과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러한 현실을 제쳐놓고 여성들 자신만을 위한 사회운동을 한다면 과연

이 운동이 얼마나 많은 대중들에게 공감과 이해를 불러올 수 있을까?

불행히도 혐오와 공포증오에 기반을 둔 뒤틀린 이념은 오래가지 않아

그 바닥을 드러내고 몰락했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한국식 페미니즘도 결국 선배들의 길을 따라 사라질 것이다.



PS. 박가분 작가님의 여러 글들을 읽고 제가 한번 더 각색하고 정리한 글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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