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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동안은 저주다
게시물ID : freeboard_15615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뷁ㄱㄱㄱㄱ
추천 : 0
조회수 : 48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5/31 00:09:55
나는 동안이다. 남자다. 
서른 네살이다.
사실 사회에서야 몇개 되지도 않는 나이이지만
그래도 그동안 살아오면서 느낀바에 의하면
남자의 동안은 저주더라는 것이다



나는 어릴때부터 어려보였다 

이게 무슨 헛소리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중학생 무렵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였고
고등학생 무렵에도 초등학생으로 보였고
대학 들어가서도 중학생처럼 보였다.

심지어는 군을 제대하고 나온 이후에도 
나이를 가장 많게 봐준 사람도 대학 새내기로 봤다

얼마전에는 동네 꼬마가 날 보고 고등학생같다고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지금 민방위 2년차다...

아마도 내가 어려보이는 것은 단순히 얼굴만의 문제는 아니고, 동년배 평균보다 한참 작은 키와 좁은 어깨가 한 몫 했으리라....



어떤 사람들은 동안이 좋다 부럽다 말한다.

사실 나도 좋은줄 알았다. 남들이 "좋겠다" "부럽다" 라고 하니까 좋은건줄 알았다.

그것이 눈치없는 나를 비웃고 기만하는 것이었음을, 사회생활을 하고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때 모두가 나를 얕봤다

동기 신입들과 비교해서 적응도 잘 하고 인간관계도 무난해보이고 실적도 중상은 나오는 수준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특히 같은 남자들끼리가 심했는데, 노골적으로 무시하는게 눈에 띄었다. 

분명 같은 나이임에도 "니가 뭘 아냐?" 하는 표현이라든가 "고생도 안해본놈이" 같은 말을 자주 들었다. 그 '고생'의 기준이 대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육군가서 산에서 얼어도
보고 굶어도 보고, 편의점에서 공사판 노가다까지 알바도 몇년은 해봤는데 여기서 더 고생하려면 보릿고개라도 겪으라는 것인가 싶었다. 
심지어는 나보다 어리고 나보다 늦게 입사한 남자들도 나를 얕보고 이런일 저런일 떠넘기려다 얼굴을 붉힌 적이 여러차례였다. 변명은 언제나 한결같다. "저보다 어린줄 알고..." "제 후배인줄 알고..." 

그렇다. 윗사람이 그러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아랫사람이 초면부터 뭉개고 들어오는건 참기가 어려웠다. 어리고 아랫사람이라도 막대해도 된다는 법은 없건만, 하물며 껍데기만 보고 그런 대우를 받으면 그 기분은 이루 말하기 어렵다. 꼭 눈을 뒤집고 거품을 물고 지랄을 해야 손대면 문다는걸 어필할 수 있었다. 군대는 계급장이라도 달고다녔지... 다른 회사에서도 내가 처음 해야 하는 행동은 "겉으로는 이래뵈도 잘 깨뭅니다" 하는 점을 어필하는 것이었다. 일은 둘째치고 누구 만나려면 마음속으로 임전태세를 굳건히 해야했다. 지금도 그래야 한다.

물론 모든 남자들이 그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당수는 그랬다. 적어도 팔할의 동성들은 첫대면에서 나를 얕봤다. 나보다 너댓살 어린 사람에게 동생같다는 말을 들었을때의 자존심이 어떻겠는가... 

아무말 안하면 쫄아서 아무말도 못하는것처럼 보였기에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나이를 의식하면서 말하는게 습관이 되다보니 사람들은 날더러 "겉으로 보면 학생인데 말씀 들으 아저씨 맞네요" 하고 재미있어한다. 이러면 차라리 무시는 당하지 않으니 편하다. 물론 이후로 아재 취급이지만 이런건 그냥 웃으면 그만이다.


여자들은? 여자들은 원래 그런건지 모르겠는데 좀처럼 나를 얕보는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다. 다만 몇살 차이도 안나는 누님들은 내가 조카같다고 했고 동년배들은 "아무리 봐도 남자느낌이 들지 않는다" 고 했으며 나이가 적은 여자들은 처음에는 편하게 대하다가도 말을 몇마디 섞고나서는 말이 통하지 않아서 갑갑해했다. 어쨋거나 내면은 아재였으므로...


심지어 전에 사귀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은 가끔 나와 관계를 가질때 왠지 잘못을 저지르는 것 같아서 찔린다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때에 나는 그저 재미없는 농담이라며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축구를 보다가 흥분해서 주먹을 쥐거나 탄성을 내는, 보통 내 나이대 남자 대다수가 보이는, 그리고 내게도 지극히 평범한 행동이 그녀에게는 언밸런스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예뻐보인다는 말보다 어려보인다는 말을 더 듣고 싶어하는게 여자의 마음이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여자는 그런가보다. 그러나 남자는 그렇디 않다. 분명 그렇지 않다. 마음속으로 언제나 싸울 준비를 하지 않으면 반드시 누군가의 얕잡아봄에 당하고야 만다. 대개 상대의 실수는 초면 한번에 그치지만, 늘 반복당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것이 결코 한번이 아니다.


사람이 제 나이에 맞는 얼굴이 제일이다. 너무 많이보이는 것도 물론 좋지 않겠지만 적어보이는 것은 반드시 손해다. 왜 누군가를 만날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가? 기싸움은 몇번을 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누군가를 만나나는 것은 꽤나 기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나는 아직 결혼을 못했다. 애인도 없고, 그냥 어쩐지 결혼 못할것 같다. 언젠가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환갑도 안된 우리 부모님 칠순과 누가 빠를지는 재봐야 알 것 같다.

사회에서는 계속 싸우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풍조가 만연해있고, 나는 그러한 태도들을 마주할때마다 끊임없이 눈도 뒤집고 거품도 물고 이빨도 보여야 할 것이다. 만남은 투쟁이다.


남자의 동안은 저주다.

그것은 주변으로부터 남자가 남자로 보이기 위한 노력을 몇배로 요구하는 저주다. 나의 노력과 무관하게 발생하는 일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드는 저주다. 오는 말이 시궁창일때 가는 말이 똥물임을 보이도록 입에 손에 똥을 묻히게 하는 저주다. 여성에게 남자의 매력을 어필할 수 없는 저주다.



물론 그냥 니가 못생기고 만만해서 그래 - 라고 하면 할말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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