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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록대전
게시물ID : history_135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ardien
추천 : 19
조회수 : 2291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4/01/11 16:43:58
거록지전2.png

楚戰士無不一以當十, 楚兵呼聲動天, 諸侯軍無不人人惴恐.於是已破秦軍, 項羽召見諸侯將, 入轅門, 無不膝行而前, 莫敢仰視.
초나라 군사는 전원이 한 명이 열 명을 당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고 초군의 고함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키니 
제후들의 군사중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진의 군대를 깨뜨리고 항우가 제후들의 장수들을 불러 원문에 들어오게 하자 
무릎으로 기어서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감히 올려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사기 항우본기


BC 207년, 사실상 진나라의 멸망을 확정지은 전투다. 
거록에서 일어난 초나라와 진나라의 전투로 다른 제후연합군들도 있었지만 이들을 병풍으로, 참전조차 안했다. 
매우 불리한 전투였지만 문제는 초나라 지휘관이 중국사 최고의 야전지휘관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 항우였다. 
그리고 하필 이때 진나라의 지휘관은 최고로 꼽히던 장한이 아니라 그의 부하장수였던 왕리였다.

진승-오광의 난.png

1. 진승과 오광의 난, 그리고 장한의 등장

진시황과 호해의 폭정으로 인해 백성들의 불만이 폭주했고, 진나라는 진승과 오광이 일으킨 동양사 최초의 민중반란
(세계 최초는 아니다. 로마에서 먼저 민중반란이 일어나 공화정이 수립되었다.)에 직면했다. 
각지에서 살아남은 왕족들이 제후를 자칭하며 왕을 세웠고, 진승의 부하장수 주문이 이끄는 수십만 대군이 함양을 향해 짓쳐들어 오고 있었는데 
당시 진나라는 다른 군현에서 병력을 끌어올 시간도, 능력도 없었다. 말 그대로 진나라는 풍전등화의 위기가 닥쳐오는 듯 했다.

그러나 진나라는 아직 망할 운명이 아니었는지, 장한이라는 장군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장한은 호해에게 여산(진시황릉을 짓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에서 노역을 하고 있는 죄수들을 불러모아 이들을 군사로 쓰면 된다고 진언했다. 
장한은 이들을 끌고 나가 주문과 3번 싸워 3번 모두 이겼다. 수십만에 달했던 반란군은 와해되었고, 주문은 자결한다.

장한은 장초군에게 포위당한 형양을 구원하러 병력을 몰고 나갔다. 장초의 상장군 전장이 병력을 이끌고 오창에서 장한을 요격했으나
반대로 대패하고 전장은 전사한다. 그리고 장한은 병력을 이끌고 그대로 형양으로 나아가 장초군을 격파하고 
그 수장인 이귀를 죽여버린다. 그리고 왕리에게 군사를 주어 등열을 격파하고, 다시 군을 몰아 오서를 패배시키고 
장초의 도읍인 진현을 공격하였는데 이게 장한이 군사를 이끌고 함곡관을 나온지 고작 한달만 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상주국 채사와 장하라는 인물이 군을 이끌고 나섰으나 둘다 역시 패배했고 
진승은 도망치다가 마부에게 살해당하는 신세가 된다. 진승이 왕이 된지 고작 6개월만이었다.

장한.png
초한전기의 장한

장한은 곧바로 위나라를 공격, 제나라와 초나라에서 구원병이 와 진군을 포위했지만, 장한은 한번 야습으로 간단히 제,초,위 연합군을 
전멸시키고 위나라를 멸망시켰다. 이 싸움에서 제왕 전담은 죽고 위왕 위구는 자결했으며, 초나라 장수 항타는 목숨만 건져 도망친다.
그러나 명장은 장한 혼자만 있던것이 아니었던지라, 초나라의 명장 항연의 아들로 초나라를 다시 건국한 무신군 항량은 
동아에서 장한을 패배시키고 복양에서 또다시 한번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항량은 이에 장한을 상대로 방심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장한은 군대를 모아 한번 야습으로 정도에서 초군을 크게 무찌르고 항량은 여기서 죽게 된다.

진격로.png

2. 파부침주와 거록대전

項羽乃悉引兵渡河, 皆沈船, 破釜甑, 燒廬舍, 持三日糧, 以示士卒必死, 無一還心.
항우가 군사를 이끌고 장하를 건넌뒤 배를 모두 가라앉히고, 솥과 시루 등의 취사도구를 깨뜨리고 막사를 불사른 뒤 
3일분의 군량만을 휴대함으로써 사졸들에게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며 추호도 살아서 돌아갈 마음이 없다는 것을 보였다.
사기 항우본기


장한은 이제 조나라를 박살내려 북진, 수도 한단을 함락시켰다. 장이와 진여는 거록으로 도주햇는데, 
장한은 왕리에게 군을 주어 거록을 포위하게 했고, 조나라는 다른 제후들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그러나 왕리의 군세가 거대해 
제후들중 아무도 감히 먼저 나서려 하는 이가 없었다. 이때 초나라의 상장군은 송의라는 인물이었는데, 안양에서 무려 46일동안 술판을 벌이며 
나아가지 않고 있었다. 이에 항우가 참다못해 송의의 목을 베고 상장군의 직을 차지해 제후연합군에 합류한다.

항우의 본대가 모두 도착하기에 시간이 걸렸고 거록은 함락의 위기였기에 영포와 포장군이 먼저 2만군을 이끌고 건너가 
진군과 접전을 펼쳤다. 비록 이기지는 못했으나 적어도 시간을 확보하는데 성공했고 항우의 본대가 강을 건넌뒤 
배를 가라앉히고 솥을 깨뜨리고 3일분의 군량을 휴대하여 결사의 의지를 다졌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사자성어 파부침주(破釜沈舟)의 고사다. 
어차피 여기서 패배한다면 미래는 전혀 없어지고 진나라가 다시 천하를 재통일할 것이었으니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할 상황이었다.

항우는 진나라의 용도(식량운반을 위해 길게 쌓은 성이었다고 한다.)를 끊었고, 진나라군 역시 식량이 부족해지게 되었다. 
진군과 초군 둘다 군량이 바닥난 상태로 사흘간 아홉번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대전을 벌였고, 마침내 진나라군이 크게 무너져 내렸다. 
진나라 장수 소각은 전투중 살해당했고, 지휘관이었던 왕리는 사로잡혔으며 섭간은 불에 몸을 던져 자결한다. 
항우는 이로서 조나라를 구하고 제후연합군의 상장군이 되었다.



4. 결과
진나라의 멸망을 확정지었다. 만약 여기서 진나라가 승리했다면 제후연합군은 와해되었을 것이고, 
그들은 각자 영지로 돌아가 몸을 보전하기에 급급했을 것이다. 장한은 순회공연을 다니며 제후들을 하나씩 쳐죽이면 그만이었다. 
이후 진나라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수없다. 장한은 그야말로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되서 조고를 몰아내고 
진의 전성기를 이룩하게 될수도 있다. 아니면 조고가 장한을 토사구팽하고 다시 진나라를 몰락의 길로 빠지게 할지도 모른다. 
분명했던 건 거록에서 승리했다면 진나라의 멸망은 최소한 몇년은 늦출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진나라군은 패배했고, 장한은 극원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장하 남쪽에 주둔한 항우와 넉달동안 대치하게 되었다. 
아직 장한에게는 20만에 달하는 군대가 있어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진의 황제 호해는 사람을 보내어 어째서 싸우지도 않고 
퇴각하냐고 장한을 꾸짖었다. 거록의 패배로 장한은 조고와 호해의 의심을 샀는데, 일견 당연해 보일수도 있는 것이, 
장한은 거의 전중국의 반란을 진압했고, 초나라를 세우다시피 한 무신군 항량마저 참살했는데 그 잔당에 불과했던 항우를 꺾지 못해 
진나라 조정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처지가 된 것이니 자리가 불안하던 조고나 호해로선 혹시 딴생각을 품고 반란군과 협력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거짓보고로 자신의 힘을 기르려는 수작으로 볼수도 있었다. 또한 조고는 호해가 자신에게 책임을 물을까 두려워 하고 있어 
장한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려고 하고 있었다. 이에 장한은 20만 군사를 이끌고 항우에게 항복하였고 진나라는 이렇게 멸망하게 된다.

항우는 거록에 올때만 하더라도 자신의 상관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한 불안정한 상태였다. (물론 초나라는 겉으로만 초회왕의 나라였지
사실상 항량이 거의 혼자서 세운 나라였으며, 항량의 후계자나 다름없었던 항우의 세력은 무시할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싸움의 승리로 항우는 전중국 최강의 사나이가 누구인지 보여주었다. 항우는 이후 초나라 최고권력자가 되며
또한 제후연합군의 상장군이 되었다. 거기다 이후 장한마저 항복하여
사실상 거록대전의 승리로 반란군에서 전중국의 패자로 등극하게 된 셈이었다.


그러나 항우는 자기의 성질을 못이기고 항복한 진나라 병사 20만을 산채로 파묻는 신안대학살을 저질러 천하의 민심을 잃고
18제후왕 분봉이라는 희대의 삽질을 저지른다. 그 결과, 제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나 왕이 바뀌고 항우와 전쟁을 벌였고
공이 많았음에도 벽지로 쫓겨간 유방은 그 틈을 타 신안대학살로 민심을 잃은 장한을 격파하고 관중을 장악하니
항우가 만든 천하는 뿌리부터 흔들렸고 이것이 곧 초한대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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