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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캐러비안의 해적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 시리즈 비교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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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가막새
추천 : 2
조회수 : 137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5/29 09:5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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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러비안의 해적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시리즈 비교 분석

(스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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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코메디언, 조니 댑의 잭 스패로우

위험천만한 대자연에 노출된 바다에서 인간의 도덕적 가치는 힘을 잃기 쉽상이다. 그 혼돈의 바다 위에서는 누구나 자신만의 가치를 시험받게 된다. 이를 대표하는 상징적 캐릭터가 바로 해적이다. 이 점이 아마도 무법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이제 막 도덕과 내적 투쟁을 벌이는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 또한 누구나 일탈을 원하니까. 그런 해적들 중에도 나사 하나 풀린 캐릭터가 있었으니. 조니 댑에 의한, 조니 댑을 위한, 조니 댑의 잭 스패로우. 그는 캐러비안 해적 시리즈의 상징이자 분위기를 대표하는 캐릭터다. 분명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도둑질도 태연하게 하는 그지만 절로 미소짓게 만드는 장난꾸러기로 느끼게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조니 댑의 뛰어난 연기력 때문이다. 잭 스패로우는 그의 삶 자체가 마치 광대와 같아서 표정 하나 걸음 하나 존재 하나만으로 진지하고 엄숙한 현실을 조롱한다. 이 점이 아마도 우리의 마음 속 일탈 욕망을 대변하고 자유롭게 만드는 해방구로써 잭 스패로우가 절대적 지지와 환호를 얻는 이유일 것이다. 20세기의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같은 21세기의 코메디 캐릭터는 아마도 조니 댑의 잭 스패로우가 유일할 것이다.  모두가 한결같이 심각하고 필사적일 때 잭 스패로우만 등장하면 관객은 그와 함께 한 걸음 물러서서 웃으며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 찰리 채플린도 말하지 않았던가.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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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그리고 부성애

인류의 영원한 테마는 언제나 사랑이다. 태어나자 마자 제 발로 일어서는 노루나 바다를 향해 기어가는 거북이와 달리 인간의 새끼는 무력하다. 기어가긴 커녕 앞을 볼 수조차 없다.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게 인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가 어찌되었건 보살펴준 부모에게 감사해야한다. 그리고 이 마음은 필연적으로 사랑에 대한 보상심리나 피해의식으로 자리매김한다. 캐러비안의 해적 전 시리즈에서 로맨스와 부성애는 서브 플롯으로 한 축을 이룬다. 고어 버빈스키 감독의 <캐러비안의 해적 시리즈 1편 - 블랙 펄의 저주, 2편 - 망자의 함, 3편 - 세상의 끝에서>에서는 윌리엄 터너(올랜도 볼룸)과 엘리자베스 스완(키이라 나이틀리)의 로맨스 그리고 터너 부자의 부성애로 관객의 감성을 사로잡았다. 이 로맨스와 부성애 서브 플롯은 <캐러비안의 해적 4편 - 낯선 조류>에서는 잭 스패로우 본인과 안젤리카(페넬로페 크루즈)의 로맨스, 안젤리카와 검은 수염(이안 맥쉐인)의 부성애로 이어졌다. 이번 <죽은자는 말이 없다>에서도 역시 이 서브 플롯은 유지된다. 올랜도 볼룸과 키이라 나이틀리의 특별출연과 함께 과거의 로맨스를 이어 그 둘의 아들 핸리 터너(브랜트 스웨이츠)와 카리나 스미스(카야 스코델라리오)가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부성애는 시리즈 전체의 조연 헥터 바르보사(제프리 러쉬)가 자신의 버린 딸 카리나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살짝 곁들이자면 살라자르 선장(하비에르 바르템)이 해적을 증오하는 이유 또한 아버지의 복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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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럭버스터 환타지에 잡아 먹힌 스토리

스케일은 1편부터 점점 커져 이번 <캐러비안의 해적 : 죽은 자는 말이 없다>에서 정점을 이룬다. 화려하고 웅장한 블록버스터 장면은 자주 등장하지만 해상 전투는 역시 전편 <낯선 조류>와 같이 다소 실망스럽다. 해적 영화에서 관객이 기대하는 것은 연달아 터지는 대포와 줄을 타고 배를 넘나드는 육탄전이다. 초기 3편의 감독 고어 버빈스키는 이를 잘 이해하고 해상 전투를 매우 다채롭게 선보였다. 하지만 시리즈는 3편 이후부터 그냥 환타지 마법으로 도배된 CG로 일관한다. 배를 잡아먹는 상어를 닮은 살라자르 선장의 배는 아이디어만 좋지 관객이 원하는 바를 완전히 엇나가고 있다. 이는 4편 낯선조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으로 밧줄을 조종하고 불을 뿜고… 해상전투에서 기대하는 것은 선상을 뛰어다니는 선원들과 바다로 떨어짐과 동시에 링에서 아웃되는 아슬아슬함이 아닐까. 2, 3편의 플라잉 더치맨과 블랙펄의 해상씬은 얼마나 멋졌나. 문어머리 대비 존스의 깊이 있는 캐릭터도 그립기는 마찬가지다. 이번에 살라자르 선장으로 출연한 하비에르 바르템은 한편의 악당으로만 소모하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배우이다. 살라자르 선장에게서 남는 기억은 오직 해초처럼 흐느적대는 머리카락 뿐이다. 살라자르 캐릭터만이 아니라 화려한 스크류바 문신을 한 대머리 마녀나 독해 보이는 영국 해군 선장 또한 일회성으로 소모될 뿐 스토리를 지탱하는 역할은 없다. 이번 영화가 이전 고어 버빈스키의 3부작에 비해 유치하게 비춰지는 것은 비단 연출력 때문만이 아니라 이야기 구성의 허술함도 한 몫했다고 할 수 있다. <캐러비안의 해적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타이틀처럼 이후 캐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죽어 더이상 말이 없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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