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을 살아오면서 좋은 예감은 빗나간 적이 많습니다.
머피의 법칙? 그런 게 저에게는 심하게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일을 하든 항상 플랜 B를 세우고, 좋은일이 있더라도 설레발 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지요.
특히 나 연애 문제에선 더욱이 그렇습니다.
저도 참 자랑도 하고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싶고 그렇긴 하지만 꼭 그렇게 설레발 치면 잘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특히나 연애 초기에는 발언을 조심하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나나는 달랐습니다.
나나는 항상 저에게 말했습니다.
“나 되게 강해요. 초이 씨 한국 가면 난 공부만 하고 일만 할거에요. 알잖아요. 그러니까 걱정하지마요. 난 강해요.”
그 강하다는 말.
자신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말로 들었습니다. 그렇게 믿고 있었구요. 당연히 믿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조금 소홀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다녔는지도 모르구요.
하지만 나나도 저의 징크스를 피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날
“ 나 할이야기가 있어요.”
라고 했을 때
피가 식는다라는 느낌. 이런거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단지 저 한마디 했을 뿐인데 그 몇초간 온갖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쳐 갔습니다. 한참을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멍하게 있다가... 뭐부터 해야하나 안절 부절 하고 있다가...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나나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답장이 왔습니니다
-전화는 받을수가 없어요.-
전화기를 이마에 대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입술을 잘근 물었지요. 도대체 뭐가 잘못 된것인가. 그렇게 믿어달라고 했던 것들이 전부 거짓말이었던가. 혹시 다른 남자가 그새 생긴건가
아니면 내가 다른 남자 였던건가?...
온갖 말도 안되는 상상까지 하게 되더라구요.
그래도 혹시 모를 다른 희망에. 내가 생각한게 아닐수도 있다라는 생각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무슨일 있어? 안 좋은 일이 생긴거야?
나나는 핸드폰을 계속 보고 있었던 건지 답은 금방 왔습니다.
- 우리 사이 문제에요.
맞구나...
나 때문이구나...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답장을 했습니다.
- 왜 그러는지 말 해줄수 있어?
나나는 한참동안 답이 없었습니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 했고, 그리고 뭔가 장문의 메시지를 쓰고 있다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그저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나의 생각을 들어야지 그에 따른 대처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썩 기분 좋지는 않더군요 하하
기다렸지만 기다리지 않았던 답이 왔습니다.
-초이를 정말 사랑해요. 정말 좋아해요. 근데 이젠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응? 안그랬으면 좋겠다니... 불길함은 배가 되었습니다. 천천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초이를 정말 사랑해요. 정말 좋아해요. 근데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가끔 왜 나를 좋아하는지 이해가 안될때가 있어요. 난 정말 평범한 여자인데... 그게 믿음이 가지 않을때가 많아요.
초이는 한국에 있지요. 저는 베트남에 있구요. 초이는 베트남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는거지요? 저는 베트남을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없어요. 여기에는 내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요.
그들을 떠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해요. 우리 만난 기간이 아직 짧으니까.
더 깊어 지기 전에 우리는 이쯤에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접는게 좋을거 같아요.
그래서 초이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너무 가슴 아파요.
나도 정말 사랑해요. 정말 진심이에요.
하지만 당신이 돌아올 생각이 없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을 만날 생각이 있다면 그러는게 초이를 위해 좋은거 같아요.
초이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정말 좋은 한국 여자를 만나야 해요. 혹시나 그럴 생각이 있다면 나에게 이야기를 꼭 해줘요.
난 초이와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어요. 그리고 당신을 언제나 생각하고 응원 할거에요.
그래서 우린 다시 친구로 돌아가야 할거 같아요.
다음에 혹시 초이가 오면 우린 만날 수 있어요. 하지만 인연이 아닌 친구일거에요.
그렇게 해줄수 있어요?
이렇게 온 장문의 메시지를 읽어 내려간다는게 정말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혹시나 이게 농담이거나 새로운 베트남의 장난식 문자라고 생각하고 혹시 트릭이 있는건지 내가 놓친 부분있는건지 몇 번을 다시 읽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 있지 않았어요. 읽을수록 더 가슴 아플 뿐이지요.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떻게든 목소리는 들어야 할거 같아서요.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호흡을 한번 가다듬고 차분히 말했습니다.
초이 : 진심 이니?
나나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나나 : 응...
이라는 답을 했습니다. 책상에 머리를 꽁꽁 박았습니다.
화가 났어요. 왜 난 항상 이런식인가.
내가 항상 좋은 남자라고 하면서 결국엔 모두들 떠나는 것인가. 그저 나는 항상 마음의 치유만 받고 떠나는 그런 편하기만 한 사람인가?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는건가?
내가 만만한 것인가??
자존감이 점점 바닥으로 떨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너무 화가 났습니다. 너무 답답 했고요.
“왜? 왜!? 왜 내마음을 모르는거야 왜!”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빽 질렀습니다.
반대편으로 울먹이는 나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미안해요..”
그 말이 더욱더 화가 나게 만들더군요. 나나도 내가 이렇게 화가 날 건지는 몰랐나 봅니다. 꽤 놀람과 미안함에 어쩔줄 몰라 하더군요.
“난. 정말로.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어. 항상 노력 하고 있다고. 우리가 함께 할수 있도록 말이야. 계획을 만들고 있다구. 내 모든 능력을 총 동원해서 너와 함께 하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다구... 근데 왜 몰라주는거야... 왜 믿지를 않는거야 넌?”
나나는 그저 듣기만 할뿐 한참 말이 없었습니다.
저는 꽤 흥분해 있었습니다. 나나가 왜 그런 마음이 되었는지 알아 채고 그 이유를 들었어야 했는데 내 맘만 괴롭다고 내 주장만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나나는 계속..
“미안해요”
이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냥 눈을 감은체 수화기만 들고 있었죠.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오늘은 이만 끊어요 우리... 초이씨 진정할 시간이 필요한거 같아요...”
그래...
“내일 연락 할게요.”
그러던지...
많은 이별의 경험에 하나의 스킬은 늘었네요. 이별 할거 같으면 이기적인 놈이 된다는거. 그래야 나를 보호할수 있다고 혼자서만 생각하고 있는거.
참 웃긴 스킬입니다 그죠?
그래봤자 내 마음은 편해 지는건 아니었는데 말이죠..
침대에 그대로 누워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나와 찍은 영상들, 나나가 보내준 편지들 서로 주고 받았던 달달 한 문자.
우리의 첫 만남과 그 설렜던 순간들...
하나씩 돌려 보았습니다.
우리의 시작은 정말 드라마 같았는데
이별 순간은 아무것도 못한체 전화기에 대고 화만내는
최악의 이별을 하고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욕지거리만 계속 내 뱉다가 그렇게 잠들었었습니다.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습관처럼 핸드폰을 보았습니다만...
나나의 문자는 와 있지 않았습니다.
당연하지
그래도 한숨 잤다고 조금 진정 되긴 했습니다. 그래도 기분은 여전히 쓰레기 였구요. 기분 전환 할 것을 찾아 보았지만 하나도 도움이 되질 않았습니다.
운동도 딱히 잘 되지 않아서 금방 갔다 들어왔구요.
천천히 생각 해 보았습니다.
우리 만남이 아무리 소설같고 드라마 같다고 해도 현실입니다.
현실의 벽은 절대 만만하지 않을 것이고 나나도 저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고통을 안을 것이 뻔했습니다.
그동안 느꼇던 주위 사람들의 시선들...
과연 나나가 견뎌 낼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나에게 호언 하듯 이야기 했지만 그 플랜들이 그대로 이루어 질거라는 보장도 없었구요.
냉정 하게 생각 하면 그렇습니다.
정말 현실은 현실이구나.
평범한 한국 남자와 평범한 베트남 소녀
다시 이야기 하자면
결혼 생각이 없어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자신의 위주로만 살아온 한국남자와
연애 생각 하나도 없이 일과 공부만 해오던 대학생 베트남 여자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은 둘의 현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보는건 꿈.
네 현실은 우리에게 절대 꿈을 주지 않지요. 그 걸 견뎌낼 자신이 있다고 저는 각오를 하고 있으나...
괴로워 할 나나를 생각하면 또 그런건 아니네요.
그래서 생각 했습니다.
나나의 말대로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구나.
담배를 어찌나 많이 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아닌 나나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당장 어디 취직 준비 해야 하는지도 모를 소녀가 무작정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을 버리고 한국으로 올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요. 그리고 나로 인해 너무 급격히 변했던 자신의 상황이 겁이 났을 겁니다.
좀더 천천히 만날걸... 좀 더 신중히 할걸..
하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친구로 더 있어야 했고 서로의 상황이 좋아지면 더 발전 해 갈수 도 있었는데
너무 빨리 나나의 마음을 확인 하려 했고 나의 마음을 꺼내 놓았지요
그게 후회 됬습니다.
설레발 치지 말걸...
그나마 다행인건 쉽게 갈수 있는 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보고 싶어도 볼수가 없어서...
서로 빨리 잊을수 있겠다라는거?
그거 하나 있네요 하하하
그리고 두 번 다시 내 맘을 꺼내놓을 사람들 만나지 못할 거라는 것
뭐 연애하다가 이별을 한 사람들이 늘 그렇듯 저도 다른건 없었습니다.
괴로워 하다가 슬퍼하다가 시간 지나면 추억으로 남겠지요.
작고 이쁜 소녀 하나가
정말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나이 많은 남자를 좋아해 준거
아무도 없던 머나먼 이국 땅에서
좋았던 만남
좋았던 추억
그리고 좋았던 그 소녀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솔직히 만나면서 이런 끝은 생각을 안했던건 아니었으니까요.
차차 나나가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구요.
나나를 원망하거나 미워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혹시나
혹시나 후에 다시 만난다면
우린 다시 좋은 인연이 될수 있을까?
하는 조그마한 기대도 해도 되는거 아닐까 하는 희망도 조금 마음 속에 심어 두었구요.
무럭무럭 그 희망이 자라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이 아주 달콤한 열매를 맺어서
우리 둘이 사이 좋게 나눠 먹을수 있다면 참 좋겠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쉽게 다시 사랑할수 없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다시피 현실은 현실입니다. 그 주변의 시선과 나에게 주어진 상황들이 정말 힘들고 싫을 지라도 그것은 현실입니다.
저는 너무나 큰 꿈을 꾸었던 것일까요?
그 꿈은 그저 좋은 추억만 남기고
현실로 가는 발걸음을 무뎌지게 만들었지만 하지만 저의 발걸음은 현실로 가게 만들었습니다.
드라마 같던 소설 같던 사랑
저에겐 없었습니다. 저를 응원해주는 사람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나를 사랑 해준 나나에게 너무나 죄스러웠지만...
저도 더 이상 용기가 나질 않았습니다.
이쯤에서 그만 하는 것도 서로에게 좋은 결말 이야 라고 생각 했지요.
주위 친한 친구들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안타까워 했구요. 하지만 괜찮다고 다독여 주었습니다.
괜찮지 않았지만 그저 웃었습니다.
하나 바라는게 있다면 나나는 제발 나만큼 안 힘들어 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
그 거 하나만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구요.
그렇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응원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했고 그리고 우려 했던 사람들의 입장도 이해를 못하는건 아니었습니다만
다음에 혹시 저 같은 사람을 보면 그러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저만큼 힘들어 하고 잇을테니까요 그래도 응원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주변에 누군가가 저와 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면 저는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당신은 꼭 이루길 바란다는 응원을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안타깝지만 저는 마음의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한달 간의 작은 사랑이야기는 막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