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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경오의 삽질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양치기 소년이었다.
양치기 소년의 존재 의의는 들어줄 사람이다.
양치기 소년의 말을 소수라도 믿어주고 들어줘야 거짓말하는 재미라도 생기는 법이다.
두세번 양치기 소년의 말만 믿고 늑대가 나타났다며 호응해줬던 사람들도
한 두 번 속고 더 이상 안 속는다.
언론은 이제껏 선동용 삐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특정 이해집단을 옹호하거나 혹은 독자 위에 고고하게 자리잡으며
“니 사고 방식은 이게 문제야”라는 식의 엘리티즘.
그게 설령 100% 맞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대중을 선동하거나
혹은 대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측면은 변한게 없다.
그들이 계몽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대중들은 자각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일진데
이 같은 사고 방식이 통할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언론’들의 태도는 황당하기 이를바 없다.
지금은 양치기 소년이 “늑대가 온다”고 외치면
대중들은 늑대가 진짜 오는지 망원경을 만들어 감시하고
늑대 같아 보이는 동물이 오면
어떤 동물인지, 그 동물이 들개인지 늑대인지,
늑대라면 크기가 어느정도인지 확인하는 시대다.
선동하는 말에 혹하고 넘어가는 대중들도 많지 않을뿐더러
양치기 소년의 말에 더 이상 속아넘어가지 않는 대중의 시대다.
속아주는 대중이 없다면 양치기 소년의 말 또한 아무 의미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