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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쓰고 싶어 써봤습니다. 제 생각은 이래요.
흔한 80년대생으로서, 현재까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풀어보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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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이든, 고등학생 때이든, 그 당시 삶에서 가장 큰 관심사와 고민거리는 대학 입시 정도였다. 집안이 어려웠던 것도, 불화도 없었던 그 시기를 회상 하면, 그 때는 몰랐지만 유복하게 굴곡없이 자라온 그 시절이 지금 와서 마냥 즐겁게 그려지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이제 겨우 서른 즈음에 들어선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웃기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이 글의 주제는 나의 인생 이야기가 아니라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니 나 자신이 우선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설명이 필요한 것 같아서다.
대부분의 가정이 그러하듯 학창기의 자녀에게 다른 걱정 거리를 최소화해주고 학업에 열중하게 만드는 그런 분위기의 집안에서 자라왔다. 덕분에 오다가다 들리고 보이는 뉴스, 식사 시간에 간혹 들리는 부모님의 뉴스 이야기 정도로만 사회 상황을 인지하는 정도였고, 흔히 어른들의 말씀대로 ‘정치인들은 모두 똑같애’, ‘원래 세상사가 그래’ 라는 견해를 나 역시 담습했다. 그리고 모든 관심은 어떻게 놀까,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에만 몰두했었다.
나의 사회 가치관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서 안에서만 머물러 있을 뿐 내가 사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구름 위의 이상으로면 느꼈다. 즉, 나는 나일 뿐, 다른 이의 정의, 불의는 내 관심사도, 내가 상관할 바도 아니었다. 사실, 미성년자는 당연히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다고 핑계를 댈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 정부 당시 고등학생과 대학 초반의 시기를 지내던 나는, 뉴스에서 무엇이 나오건 ‘정치인은 다 똑같아’라는, 경험을 통해 얻은 태도가 아닌 어른들을 따라하는 오만한 태도를 유지했고 여전히 나와 관계 없는 일들로 치부했다. 군대를 가기 전까지 내게 주어진 모든 자원을 소모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분명했던 건, 현재의 나를 형성하는데 가장 영향이 컸던 시기이기도 했다. 원래 성정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존의 형식을 탈피하여 자유분방하고 권위를 혐오하여 탈권위의 이상을 바라고 기성의 억압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학번에 따라 강력하게 유지되던 과내의 학번 서열과 이에 따른 부조리한 여러 악습을 겪고, 이를 철폐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졌다. 이는 나 혼자 뿐이 아닌, 많은 동기들과 가까운 기수들의 주류적인 생각이었다.
이 생각은 군 입대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군대에서도 겪는 많은 부조리를 직접 겪으며 내 후임에게도 전달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악습에 적응되지 않도록 계속 자신을 다그쳤다. 고참이 되어갈 수록 부여되는 혜택을 과감히 포기하고 후임들의 편의를 우선했고, 많은 반발과 부작용을 감내했다. 그 때까지도 나는 단순히 우리는 새로운 세대이기 때문에 변화를 이끌어갈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군대 복무 중 있었던 대선 결과로 인해 완전히 변했다. 단순히 새로운 세대였기 때문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에서 배우고 자란 세대이기에 형식과 권위에 매인 기성 세력에 반발했던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전경이었던 나는 군 복무 중에 국민과 현실에서 가장 첨단에 위치하고 있어 더욱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전경 생활 1년은 노무현 정부에서, 1년은 이명박 정부에서 복무했기에 누구보다 큰 차이를 현장에서 느꼈다.
직접적으로 경찰의 기조부터 다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경찰의 표어는 ‘시민의 친구’ 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1월 1일부터 그 표어는 ‘강한 친구’로 바뀐다. 그깟 표어가 중요한지 실감이 안나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표어가 바뀐다는 것은 내부의 기조가 바뀌고, 그 기조는 구체적인 실행 행동에 변화를 부른다.
구체적으로 ‘진압 작전’이 변하고, 매일 행하는 훈련 ‘내용’이 변한다. 노무현 정부 당시의 전경은 ‘시위를 보호하고 관리한다’ 라는 개념을 항상 교육받았고 숙지했다. 하지만 표어가 바뀌고 나서부터 받는 훈련은 ‘불법 시위를 강경하게 대응하고 체포한다’가 훈련의 방향이 되고, 이는 훈련을 ‘방어’위주에서 ‘체포’위주로 바뀌었다. 이 전에 시위에 대한 대응은 시위를 관리하고, 시위자들을 자극하지 않게 최소한의 경력을 배치했다면, 바뀐 기조의 경찰 대응은 대개 최대한의 경력을 배치하여 사전에 ‘유사 사태’를 차단하는 것이다. 이처럼 작게는 훈련부터 작전 수립까지, 크게는 경찰의 공권력 집행 태도까지 모든 것이 바뀐다.
물론 지나치게 약해진 공권력은 시민으로부터 갖은 수모와 정상적인 공무 수행에 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바뀐 정부와 경찰 공권력 강화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항상 주의해야 하는 것은, 수모를 받는 공권력보다 공권력에 의해 수모를 겪는 국민이 생기는 경우가 훨씬 처참하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결정적으로, 경찰 내부에서 진행한 세미나에 참석했다가(연대 급의 인원이 모인) ‘시위대’를 한 번에 ‘빨갱이’로 표현하고 모두 ‘때려잡는’ 대상이라고 공적인 자리에서 너무도 과감히 설파한 어느 고위 간부의 열성적인 강의를 들으면서 확정되었다.
작게는 경찰 내부의 분위기로 설명했지만, 비단 경찰의 변화 뿐 아니라 바뀌는 정부에 의해 각 행정부가 모두 기존 노무현 정부에서 마치 U턴하 듯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에 나는 대통령이 바뀌었을 때 무엇이 달라지는 지를 비로소 깨달았다. 그 때부터는 ‘정치인은 모두 똑같아’라는 말과 태도를 버렸다. 하지만 이런 경험도 그냥 행정부와 정부 시스템이 바뀌는 정도로 인지했을 뿐이다.
제대하고 돌아온 대학교에서, 복학생은 나름 과내의 고참과도 같았다. 그 때부터는 더 이상 사회는 인맥과 서열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며 선 후배 관계에 신경을 쓰기보다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데 더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나름 선배들의 요구로부터 후배들을 지키고 방파제 역할을 하였다. 사실 노력했다기 보다는, 선배들의 부당한 요구는 그냥 내 선에서 커트하고 후배들에게 전달하지 않는 식의 무성의, 무성실이였달까. 어쩌면 옳지 않은 행동으로, 선 후배 간의 단절을 가져온 원흉이기도 했겠지만, 뭐 그 시기의 우리 학년은 꽤나 단결하고 분위기가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든 이 시기에 나는 내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심심한 날, 내가 따르는 선배(모든 선배를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나와 비슷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선배들도 많았다)의 두리뭉실한 권유에 선배와 함께 버스를 타고 따라나섰다. 가는 여정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도착했을 때 일찍이 실제로 볼 수 없었던 수 많은 인파가 내 시야 가득히 모여있었던 모습이, 그리고 온통 노란 색으로 뒤덮인 그 인파에 대한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 이야기는 그 때까지도 내게 먼 이야기였다. 물론 기성 세대에 대한 큰 반발심을 비롯, 근 현대사에 걸쳐 복잡하게 얽힌 정치 역학은 내가 관심을 두고 계속 들여다보기에 따분했을 것이다. 이런 여러 변명을 하지만 결국 나는 성숙한 민주 시민이 되려는 목표 따위는 그 때에도 없었던 철 없는 방탕아였던 것이다. 그냥 각종 매체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 따라, 이리 저리 주변에서 들리는 대화를 근거로 막연히 역대 대통령을 평가해왔다. 그런 어리석고 어리기만 했던 내 가슴과 머리를 시야 가득 채운 노란 빛 물결이 강타했다.
그 곳이 수원 화장터이고, 고속도로 출구에서부터 화장터까지 인파가 빼곡히 가득 차 있는 현실을 실제로 목도했을 때 그 많은 사람들이 나의 잘못된 인식을 완전히 날려버렸다. 내가 들어왔던 것처럼, 욕 많이 먹고 경제를 말아먹은 대통령의 장례식이 절대 아니었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정말로,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을 진심으로 느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엄청난 인파가 모였지만 소란스럽거나 어지럽지 않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엄숙함과 슬픔으로 애도하는 모습은 내가 어느 매체에서나 현실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경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선배에게 계속되는 질문을 던졌다. 그 선배는 애도하러 와서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처럼 기초적인 것부터 물어보는 내 질문이 귀찮았을 터이지만, 내가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잘못알고 있는 부분을 고쳐주는 것에 보람을 느꼈을지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보고 들은 여러 형태의 정보들이 여태 잘못되고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 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죄책감이 들었다. 그리고 도로에 운구 차가 나타났을 때 일어난 사람들의 낮은 탄식과 울음소리는 결국 나에게도 눈물을 불러왔다.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서가 아니었다. 이미 돌아가신 분에 대한 무관심이 한 없이 부끄럽고 죄스러워서였다.
그 날 이후 선배의 설명에 이해되지 않는 점들, 계속 생기는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에 파묻혀 살았다. 검색어는 또다른 연관 검색어를 가져오고, 해결된 의문은 또다른 의문을 불렀다. 각종 뉴스를 보고,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쉼 없이 사실 관계를 따졌다. 이 때부터 다양한 관점, 다양한 이유, 나의 가치관을 재정립하기 시작했다.
앞서 제기한 것처럼, 대통령(정부)에 의해 사회상, 세대가 바뀔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명확한 수치의 근거는 당연하게도 없다. 또, 나를 기준으로 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한 경험이 바탕이기 때문에 설득력도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주장하려는 바는 이렇다. ‘정부는 우리 모두에게 물질적,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다’ 라고 주장한다.
정치에 대해 ‘정치인은 누구나 똑같다’, ‘누가 되어도 똑같다’, ‘그 놈이 그놈이다’ 등등의 냉소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비단 어른들 뿐 아니라 혈기 왕성한 10대, 20대 젊은 사람들도 자주 하는 이야기이다. 마치 내가 그러 했던 것처럼.
당연히 젊은이들에게 정치상황은 크게 와닿지 않을 것이다. 까마득히 멀리 있는 사람들의 싸움, 자신과는 크게 상관 없는 다양한 갈등 해결. 어떤 결정을 하든, 크게 변화하지 않는 정책과 법들. 그나마 자신들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등록금 관련 공약들에 관심을 가졌을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회 지도부의 결정은 어떤 결정이든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든다면, ‘소수인에 대한 복지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결정 되느냐가 과연 다른 다수에게 영향이 없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소수인에 대한 복지가 정당하게 이루어진다면, 다른 다수인에게는 ‘소수인’에 대한 배려와 보호라는 개념을 인지하게 되고 사회적 기조로 확산된다. 자신도 모르게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미묘하게 변화한다. 이는 특히, 많은 것을 보고 배우는 학생들에게, 성장하는 청년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들의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다수를 우선으로 만족시키는 정책 결정 역시 마찬가지로 큰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은, 소수보다 다수의 만족, 감성보다 이성을 중시하는 가치관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사람들은 더욱 더 큰 만족을, 그리고 경쟁과 승리에 더 가치를 가지게 된다. 나는 정부에 의해 세대가 형성되는지는 분명히 말할 수는 없지만, 사회상이 변한다고 주장한다.
18대 대선 당시, 나는 분명하게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으며 이는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과도 큰 연관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정부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기에 단순히 대통령이 바뀌는 문제보다 사회적 기조가 변하는 것에 큰 우려를 느꼈다. 이미 이명박 정부의 많은 정책 결정은 이 전의 사회상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박근혜 정부로 이어진다면 특정 사회적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당시 주변인과 열띤 토론을 펼쳤을 때, 내가 경고한 발언은 이랬다.
‘박근혜와 그가 속한 정당이 주도권을 가지면, 사회에서 약자는 모두 희생되고, 힘있는 자에 의해 약자가 얼마든지 휘둘릴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힘이 있다는 것만으로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무더기로 나타난다는 이야기에요. 그러면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비열하고, 치사하고, 더러운 일들과 사람들이 넘쳐날 겁니다.’
특히 내가 걱정하는 것은, 다음 사회의 원동력이 되어야 하는 젊은 세대가 정부의 이전 정책들과 함께 발생한 여러 사회적 문제들, 이로 인해 생기는 사회 풍조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란 점이다. 서로의 이기심에 의해 발생하는 수 많은 이슈들과, 이를 부추기는 여러 사회 현상들을 보고 자란 세대는 어떤 사회적 가치관을 지닐까? 또 이러한 세대의 자녀 세대는 어떤 가정 교육을 받게 될 것인가? 세월호 사건으로 상처입은 10대들은, 과연 기성 세대를 우호적으로 느낄까?
노무현 대통령을 미화하는 것 처럼 느껴질지라도, 나는 내가 노무현 세대라고 표현하고 싶다. 노무현 정부 기간 동안 배우고 자란 사람으로서 노무현 정부가 뿌린 씨앗이다. 개인의 성정을 떠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노무현 정부 당시의 사회적 기조를 잇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이번 대선 결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대해 비단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 만을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의미에서, 이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과거 노무현 정부가 조성한 사회적 기조를 느끼고 경험했던 나의 세대처럼, 지금의 젊은 세대가 다시 생성될 수 있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낀다. 모두가 주변을 돌아보고 도움과 행복을 주고 받으며, 시민 의식의 성숙과 사회의 도덕적 성장, 여기에 더해 이기심에 대한 면역력이 높아지기를 바란다. 이런 바람에 정부의 5년 기한은 너무나 짧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