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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의를 지지하는 자들은 어떻게 스스로 자신의
게시물ID : readers_134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hinejade
추천 : 1
조회수 : 513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4/06/13 19:58:33

  -경고, 이 글에는 왓치맨, 바이오쇼크, 은하영웅전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의를 지지하는 소수자들은 어떻게 스스로 자신의 정의를 정당화 하는지 설명하시오.



  그래픽노블 중 왓치맨이라는 작품이 있다. 작품의 슬로건은 감시자(영웅)는 누가 감시하는가, 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배트남전쟁 후 냉전까지 오면서 긴장되는 세계정세로 펼쳐져 있다. 미국만화답게 히어로(감시자)들이 나오지만, 작품 속 현재에서는 히어로의 불법성과 정부의 비도덕적협력으로 영웅들은 은거하여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핵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르는 급박한 냉정 속에서 그들은 결단을 한다. 그들 스스로가 냉전을 덮어버릴 정도의 악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정의다.

  이번엔 게임을 살펴보자. 바이오쇼크라는 게임이 있다. 마찬가지로 게임의 배경은 비슷한 시기인 대공황시대다. 부유한 사업가 앤드류 라이언은 복지를 싫어한다. 그의 숲이 공지로 지정되었을 때, 그는 숲을 태워버릴 정도로 자신의 자유를 주장한다. 그는 자유방임주의를 위대한 사슬이라고 칭하며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미국을 떠난다. 그리고 재력을 총동원하여 태평양 깊숙한 곳에 자유방임주의만이 절대적인 도시를 세운다. 수중도시 랩쳐의 탄생이다. 하지만 자유방임주의 속에서 그 도시는 파멸해 간다. 서로의 이기심을 충족시키지 못했고, 살인마저도 자유였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랩쳐를 떠나며 한마디 한다. 그들은 랩쳐가 향락의 천국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결국 누군가는 랩쳐의 화장실을 청소해야 한다는 건 몰랐지, 라고 말이다. 앤드류 라이언의 정의는 이렇게 끝이 난다.

  정의라는 것은 위 두 작품에서 보여지듯이 상대적이고, 자신 개개인의 세계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먼저 정의의 정의에 대해 알아보자. 정의는 받을만한 것이다. 이것은 한 이익이나 배분이 알맞은 몫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몫이 배분으로부터 전혀 다른 두가지 정의가 나타난다. 롤스의 정의와 노직의 정의다. 롤스는 평등을 주장한, 마르크스를 넘어선 불평등이 포함된 평등을 주장하며 이것이 정의라고 주장했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나지는 않지만, 최소수혜자에게 최대 이익을 돌려주는, 그래서 삶의 동기마저도(마르크스가 간과한 노동의 동기)포함시키는 주장을 한 것이다. 이것은 현재 대두되어온 복지정책과 맞물려 세계의 큰 관심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노직의 정의는 무엇일까. 노직은 자신의 자유를 정의라 주장했다. 개인의 자유만이 정의이며 개인의 자산을 타인을 위해 몰수하는 행위나 정책은 그 자유를 침해하는 불의적인 것으로 보았다. 즉, 자유라는 것은 하나의 성스러운 것으로 세금을 내는 것이나 기부를 하는 것조차도 자신의 의지로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확장되어 아나키스트적인 발상이나 신자유주의, 자유방임주의 확장될 수 있다. 또한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에 큰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이론적인 모습으로 정의에 관하여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모습의 학술적인 합리화도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정의를 현실적으로 대입하여 그 스스로의 입장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 알아보자.

  얼마전 나는 아딸이라는 떡볶이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사장은 통통한 체격인 나를 못 미더운 눈으로 바라봤지만, 이 아르바이트 전에 내가 조선소에서 일한적이 있었고 군필자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어 나를 채용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 3주째, 해가 바뀌어 2013년에서 2014년이 되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2014년은 최저임금이 올라 시간당 5300원을 받아야 했다. 나는 정중하게 사장에게 임금을 얼마나 올려주실건지, 현재 5000원 시급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사장은 당연하다는 표정과 목소리로 시급은 올려줄 수가 없다고 못 박으면서, 나를 붙잡고 자신의 정의를 설명했다. 세상은 법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같은 자영업자는 인건비가 가장 많이 나간다. 시급 5000원이 관행이다. 알만한 친구가 왜 이러느냐. 나는 여기서 알만한 친구에 초점을 맞췄다. 알만하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정의가 그 속에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정의는 사장의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며 노직의 정의일수도 롤스의 정의일수도 있다. 상대적인 나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정의가 아니라 불의처럼 보인다해도 사장에게는 그것이 정의하는 것이다.

  박민규의 소설 은하영웅전설에서는 동네아저씨가 된 옛 히어로 바나나맨(백인문화에 편입되어 동양인인지 서구인인지 자아를 헷갈려하는 동양인들을 비꼬는 인종차별 단어)에게 슈퍼맨이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어.”

  정의라는 것은 매우 어려운 덕목이다. 성선설, 성악설도 포함되어 있는 함축적 복합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그 정의에 대해 정당화하는 것은, 왓치맨처럼 희생이라는 의무감으로부터 정당화 될 수도, 바이오쇼크처럼 재창조라는 욕망으로부터 정당화 될 수도, 아딸 사장처럼 동정이라는 착각으로부터 정당화 될 수 있다. 이것은 심리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매개에 대한 저항, 인정, 포기, 외면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심리는 개개인의 세계관에서 파생된 것이기에 다양하고 상대적이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어, 는 누구의 시속에서 등장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와 마찬가리조 과도기적인 말이다. 정의라는 것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그러려니 하면서 그 의미확정을 유보하는 것이 가장 옳은 길일지도 모른다.




철학과 수업 중간고사 답안지를 다시 나눠주네요.

그냥 한 번 올려봅니다.

그리고 이 글 끝까지 다 읽는 사람 10명도 안된다에 제 왼쪽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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