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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그날 우리 엄마가 겪었던 이야기.
게시물ID : sisa_9412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제발여
추천 : 9
조회수 : 38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5/19 11: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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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제 고향은 광주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고향이 광주라고 하면 "사투리 전혀 안 쓰시네요?" 라고 하고,
제가 "7살 때 서울로 이사왔어요~" 라고 대답하면 
"에이~ 그럼 고향은 서울이네~" 라고 합니다.
심지어 광주 출신 친구들도 니가 무슨 광주다냐 합니다 ㅋㅋ
하지만 제 마음의 고향은 광주입니다.
엄마가 초중고 학창 시절을 보내시고 부모님이 신혼 생활을 하셨던 곳이기도 하지만
매년 5월 18일이 되면 들려주시는 민주화운동과 광주 시민의 이야기를 들으며
광주가 자랑스럽고 늘 감사했습니다.

엄마는 매년 5월 18일, 제가 다시 물어볼 때마다 꼭 처음 하는 이야기처럼 그 날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저희 엄마의 특징은 했던 얘기를 마치 처음 하는 것처럼 수십 수백번 다시 하기입니다..ㅋㅋ
갓 스물 한살 전북대 대학생이던 저희 엄마는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러 광주에 오랫만에 돌아간 그 날이 80년 5월 18일이었다고 하셨습니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개미 새끼 한마리도 없는 터미널의 쎄한 느낌에 어리둥절 한것도 잠시, 
택시 기사 한분이 다급하게 엄마를 다짜고짜 태우고는 방금 여기서 군인들이 학생들 다 때려 잡아갔다며
어디로 가는 중이냐고 물으시고 시내를 빙 돌아 엄마 친구 집까지 태워다 주셨답니다.
가는 중 다리를 건너는데, 군인 한명이 다리를 지키고 있었고 택시 기사 아저씨가 준 보자기 같은 천으로 얼굴을 감싸
아줌마인것첨 위장을 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건너고 있었는데 지나치면서 본 그 군인의 얼굴이 벌겋더라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그 때 전두환이가 군인들에게 술을 먹이고 사람 죽이게 시킨게 맞는 것 같어. 맨 정신엔 못할테니까.."
친구 동네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고 엄마가 택시에서 내리자 아주머니들이 아연실색을 하며
엄마를 마구 끌어당기셨습니다. 
방금 전 동네 금은방에 피를 흘리며 학생이 숨겨달라고 들어왔는데, 곧 따라 들어온 군인이 그 학생을 곤죽을 만들어 끌고 갔었다고,
십대 이십대 학생처럼 보이면 전부 끌고 간다고, 어서 숨으라고.
간신히 만난 엄마 친구분은 엄마를 보자마자 끌어안고 통곡을 하셨다고 합니다.
오늘 버스를 타고 광주 온다고 했는데, 그 온다는 시간에 버스 터미널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고 하고..
엄마 친구분은 엄마도 잘못 된 줄 알고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하셨었고 외할머니는 너무 놀라 쓰러지셨었다고 합니다.
다시 전화를 걸어 외할머니를 안심 시키고 이후로는 친구 집에 숨어 밤이면 목화솜 이불을 뒤집어쓰고 라디오 뉴스를 듣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반대로 들으면 그게 곧 실제 상황이었다 하더라구요)
낮에는 시청 광장에 걸려있는 시신들의 사진들로 실종자, 생존자를 확인하는데 그 참혹한 기억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며
엄마는 늘 눈물을 흘리십니다.

미선이 효순이 사건으로 첫 촛불을 들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분노하고,
이명박 정권의 광우병 파동 때 광화문 집회에 참여하고
박근혜 정권이 들어섰을 때 이 나라는 끝났다며 분노하는 제게
엄마는 늘 그러셨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카톡도 조심해라.
정치적인 의견을 절대 인터넷에 올리지 말아라.
넌 겪어보지 못했지만 엄마는 안다. 
죽을수도 있다.
제발 그런 시위에 나가지 말아라.

그렇게 두려워하고 걱정하던 엄마에게 이제는 됐다고, 이제는 괜찮다고 
엄마의 가장 큰 바람처럼, 언젠간 우리나라가 젊은 청년들에게 가장 큰 자부심이 될 그런 세상이 올 가능성이 더 많아졌다고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게 되어 참 행복한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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