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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관심 많으나 SNS랑 친하지 않은, 인터넷 기사에 댓글 한 번 올려 본 적 없는 40대 후반 가정주부입니다.
여기 게시판에 글 올리는 것도 처음입니다.
한겨레 안수찬 기자의 “덤벼라 문빠들” 사건과 관련하여 일었던 감정들, 여러 생각들을 어디 좀 뱉어내야 할 것 같아 이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문재인을 지지하는(문빠라 불리우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사람들, 소위 진보언론을 자처하는 분들에게 드리는 글입니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순간이었나
“문재인 대통령 당선 확정”을 보며 그동안 꾸역꾸역 누르고 눌렀던 울음보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시원한 맥주 한 잔 들이키며 마음껏 울고 웃으며 당선의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다지 기쁘지도 않았고,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그저 앞으로 대통령으로서 헤쳐나가야 할 일을 생각하니 짧은 한숨이 나오더군요.
“아이고 이제 어떡하냐, 고생할 5년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그래도 오늘만은 이 기쁨을 만끽하자 재촉하는 남편 말에 유난히 쓰게만 느껴지는 맥주 한잔 했습니다.
다음날 당선증 받고 자택에서 대통령으로서의 의전을 받으며 국회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울음이 터져 한참을 울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문재인 대통령 되면 가야지” 하고 아껴두었던 봉하마을 나들이를 하고 왔습니다.
봉하 방문은 처음입니다.
네... 저는 나들이가 될 줄 알았습니다. 즐거운 봄나들이 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되었으니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겠다 싶었는데 여전히 가슴에 켜켜이 쌓인 울 때문인지 눈물만 나더군요.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귀향하는 그날이 오면 이 상처가 조금은 치유될까 모르겠다. 그래서 당선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생각했습니다.
이런 감정의 흐름, 이해 못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네 이해합니다. 저도 이런 제가 설명이 안되니까요.
내 친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게다가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안타까운 죽음을 받아들이고 무디어질 만큼 긴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는, 아니 우리는 왜 이러는 걸까요?
왜 아직도 눈물이 나고 때론 울분에 차 욕이 올라오는 걸까요?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상처를 치유 받을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위로 받아야 할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가 되고 손가락질 받는 처지가 되는 기막힌 시간을 통과해온 탓입니다
누구나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 하나씩은 안고 살지요
보통의 경우,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미워하고 원수처럼 생각하는, 혹은 나와 상관없는 어떤 사람이 나에게 퍼붓는 욕이나 저주에는 잠시 화가 나거나 기분 나쁠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로 남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가족, 내 편이 되어 주리라 믿었던 친구에게 비난받고 버림 받는 일은 감당하기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나쁜 놈에게 맞아 피 흘리고 있는 나를 향해 “넌 왜 그거 밖에 못해서 나쁜 놈에게 당하니? 너 참 못났구나. 너 같은 건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라고 비난한다면, 내 편이 되어 주리라 믿었던 가족과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듣는다면 그 마음의 상처, 그 깊이는 가늠조차 하기 힘듭니다.
내 편이 되어 주지도 않았을 뿐더러 공정한 심판자 역할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지난 시절 소위 진보언론이라 말하는 우리 언론이 그랬습니다.
이명박정권이 들어서고 난 후 참 허한 마음 어디 둘 곳이 없었습니다.
사람 보는 눈은 좀 있는지 이명박이 온 나라를 분탕질 칠 걸 알고 있었기에(그 사람의 살아온 과거가 그 사람의 미래를 보여줍니다) 답답하고 쓰라린 마음 달랠 길이 없었는데 다행히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향에서 평화롭게 살고 계셨습니다.
어디 마음 둘 곳 없었던 저에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저뿐만 아니었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로 몰려가 대통령님을 불렀던 건 아마도 그런 마음 아니었나 싶습니다.
소탈한 모습에 감동하고 위로 받았겠지요.
명백한 정치적 의도가 있었습니다. 진보의 씨를 말리려 했든, 아니면 그냥 노무현이 싫었든 의도는 분명했습니다.
탈탈 털어 먼지 하나 안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기업가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직접 받지 않았고 가족이 받았다는 것으로 피해갈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그러나 그것이 뇌물이었다는 증거는 없었습니다.
대통령을 한 차례 소환해서 조사하고 이후에 검찰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시간만 끌고 있었습니다.
왜냐? 대가성, 즉 뇌물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라 저는 판단합니다.
잘못한 일이 있다면 그만큼의 비난과 법적책임을 지면 되는 거였습니다.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정권과 악랄하게 같이 칼 춤 춰 주었던 검찰 앞에 노무현 대통령은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같은 사람들은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대통령을 떠나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진보언론이 어떻게 보도했는지 굳이 제가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의 죽음에 통곡했던 많은 사람들은 미안함, 죄스러움 이런 감정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세력에 대한 분노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상처가 되었습니다.
기자가 특정 후보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것, 저는 비난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도 기자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이고,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지지하고 좋아하는 후보를 당연히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기사에도 반영되리라 생각합니다.
기자도 인간인데 로봇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100% 기계적인 중립의 입장에서 글을 쓸 수 있겠습니까?
완벽한 중립? 이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언론은 약자를 대변하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대전제에 동의한다면 말이지요. (원조쓰레기언론은 열외입니다)
특정 후보자가 싫어서, 맘에 안들어서, 내가 혹은 우리 언론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맞지 않아서 표지인물로 싣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건 그 매체를 가진 자들의 특권입니다. 위임된 특권이든, 스스로 부여한 특권이든.
다만 그 모든 것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지면 되는 것입니다.
독자가 떨어져 나갈 수도 있고 그 후보의 지지자들로부터 비난도 받을 수 있습니다.
독자도 그런 매체가 마음에 안 들어서, 싫어서 떠날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기자가 그런 독자를 비난하는 것이 맞습니까?
욕 몇 마디 듣는 것이 그렇게 억울합니까?
000신문, 00신문, 000잡지 기자가 뭐 그리 대단합니까?
그 아픈 상처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문재인만은 지켜내겠다는 독자들, 지지자들의 마음을 단 한 번이라도 이해하려 애쓴 적이 있습니까?
이해하려 하는 순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을 애써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요?
억울한 걸로 치자면 그렇게 자기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노무현 대통령 당사자만 하겠으며, 그 유가족만 할까요?
그를 지지하고 사랑했으나 지켜주지 못했던 지지자들만 할까요?
문 지지자들 스펙트럼은 다양하겠지만 극성맞고 때론 표현이 거친 지지자들도 있습니다.
상처받은 그러나 치유받지 못한 거친 마음을 거칠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의로운 한 정치인을 지켜내야 한다는, 또다시 상처받기 싫다는 강력한 자기방어심리가 발동하는 탓입니다.
이해해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마음을 가라 앉히고 차분히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할 것입니다.
모두 그만한 시민의식 가진 분들이라 믿습니다.
유시민 작가는 언론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진보어용지식인이 되어 떠들겠다 하셨지요.
그렇게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각자의 몫을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저리 주저리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말들을 쏟아내고 나니 속시원하기도 하고, 걱정도 됩니다.
더 이상 이런 싸움이 이어지지 않길 바랄뿐입니다.
출처 | http://www.ddanzi.com/index.php?mid=free&bm=best&document_srl=1839181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