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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빠의항변
대통령 문재인의 배우자 '김정숙'에 대한 존칭을 '씨'로 쓴다는 것이 문제가 없다는 기자들과 사전적 정의를 거론하는 잘 난 지식인들에게 요구한다. 당신들 말대로 '씨'가 적절한 존칭이라 생각한다면 당신들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배, 상사, 선생님에게 먼저 '씨'라는 호칭을 즐겨 써라!
당신들 부모님과 집안 어른들, 시부모님이나 장인,장모를 '~씨'라고 불러라! 그러면서 그런 얘기를 하시라!
언어는 사전전 정의 이전에 정서적 공감이고, 정의이다. 절친한 선배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씨'라고 불러 봐라! 선배가 편안한 표정을 지을지? 아니면 싸대기를 때릴지? 궁금하지 않은가?
당신 아버님, 어머님에게 '~씨'라고 불러 봐라! 매우 기뻐하시는 부모님 얼굴이 그려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 싸가지 없는, 천박한 수준의 지식과 허접한 논리로 대중을 가르치려 들지 마라!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빠'라면 내 생에 처음으로 기꺼이 '빠'가 돼 그대들과 척을 지고, 싸울 것이다.
#언론적폐 #선민의식
내가 있으나 없으나 별 의미 없는 많은 사람 중에 하나로 존재하는 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나 존중하지만, 누구를 존경하지 않는다.
정보'혁명'에 뜻을 둔 삶으로서 기사를 제일 많이 읽는 사람 중에 한 명일 것이다. 많은 기사를 읽으며 느끼는 것은 기자다운 기자가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공정한 언론'까진 아니어도 공정하려고 애쓰는 언론이라고 느껴지는 언론사, 기자는 희귀하다. 1988년 조선일보 신림지국에 배달할 때부터 조선부터 한겨레, 한경,매경까지 읽을 수 있는 매체는 다 읽는 편이고, 포털의 스포츠와 연예를 제외한 뉴스 목록을 훓는 것이 일상이고 취미이다.
1.편향성과 왜곡
같은 사안에 대한 관점이 다른 것은 좋다. 문제는 자신들의 관점과 논리가 전부인 것처럼 쓰거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게 쓴다는 것이다. 각 매체별로 자신들의 관점과 철학에서 사실을 조망하고, 보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런 쪽으로 유도, 유발, 촉진하거나 어느 부분을 빼거나, 작게 다루거나, 크게 다루는 식의 기사쓰기는 보도 행위가 아닌 정치행위이다.
보도를 빙자한 정치를 하면서 언론으로 존중받고, 보호받길 원하는 것은 비열함이다.
2.취재 부족
발로 뛰는 기사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현장 취재와 사실확인은 기사쓰기의 기본이다. '발로 뛰는 기사쓰기'란 단순히 현장 확인과 관련자 확인 정도를 얘기하는 표현이 아니다. "관련자들이 숨기거나 과장하거나 놓친 것은 없는지?" 현장과 관련자 확인을 통해 탐사하고, 찾아내는 것이다. 현장에 가서 관련자들이 하는 얘기를 정리해서 쓰는 기사는 '취재'가 아니라 '받아쓰기'기사이다.
탐사와 추론이 없는 기사를 쓰며 기자로 존중받길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3. 통찰 부족
본인들이 취재하는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과 인맥 없이 관련 담당자들이 제공하는 보도자료, 관련 업무를 했거나, 관련 분야의 전문가의 조언 구하는 정도의 기사를 쓴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이 하는 말을 정리하는 것은 취합이지 진짜 기사가 아니다.
기자라면 자신의 취재 분야에 대해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 강의를 하는 사람 취재와 학습을 통해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이나 강의를 하는 사람보다 깊고, 높은 수준의 통찰이 있어야 한다.
현장과 이론을 동시에 접하는 활동을 하며, 현장과 이론의 맞춤과 비춤을 통해 자신만의 통찰을 갖추지 못한 기자는 기자가 아니다.
4. 특권의식 또는 선민의식
비판을 업으로 하면서, 비판 받으려 하진 않는다. 정의를 밝히는 보도를 한 기자들도 제법 있으나. 취재원들이 언론이 가진 힘 때문에 하는 접대를 대접을 받는 일도 많고, 스스로 요구하는 일도 많음이다.
행태적으로 자신은 공개적으로 세상을 비판, 비난 하면서 자신에 대한 비판, 비난 글은 '명예훼손'을 이유로 게시중단을 요구하는 조용기목사의 행태와 같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