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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인증] 더러운 정치판 투표하기도 싫다
게시물ID : sisa_9383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E.A
추천 : 15
조회수 : 623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7/05/16 21:17:12
라며 나의 첫 투표권은 그렇게 버려졌다.

정치는 항상 나에게 싸움판이고 더러운 곳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중학생 시절 항상 뉴스에서는 안좋은 것만 비춰졌고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말이 우리들 사이에서는 유행이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나는 그저 정치에 대해 항상 염세적이었고
한발짝 물러서서 나랑은 상관없는 곳이길 바랬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스무살 나이에 처음 투표권이라는 것이 생겨서
투표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어디 누가 그나마 대통령감인가 토론회를 보아도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었고
후보들의 과거들을 살펴볼수록 정치판에 대한 염세는 짙어져만 갔다.

그렇게 나는 투표소 가기를 거부했고 행여 정치판으로부터 더러운것이 묻어나올까
내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나는 그 근처도 가기 싫어했다.
그렇게 이명박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나랑은 상관없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 대통령이 자살을 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당시에는 충격이었다. 
'이게 맞나... 이래도 되는건가..'
정치가 아무리 더럽고 다 그놈이 그놈이고 싸움판이라지만
최소한 민주주의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학교 학생회관 로비에 설치된 분향소를 들르며 왜 이렇게 된건지 
꼭 이렇게 됐었어야만 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알아보면 볼수록 극명하게 갈리는 빛과 어두음은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나의 관점은 바뀌기 시작했다.

정말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국민을 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국격이 무엇인지를 알며
인간의 욕심과 탐욕과 이기심의 끝은 어디인지, 알림의 창구가 되는 언론의 편향성은 어떠한지 알게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장로인 사실에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나는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고
최고의 희생과 헌신인 예수의 사랑이 걸레짝 취급을 받고 땅바닥에 내팽개쳐지는 것을 보고 
이 땅에 과연 십자가는 공동묘지를 연상하는 시뻘건 조명 밖에는 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신문을 읽고, 인터넷을 뒤져보다가 오유라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참 많은 사람들이 뜻을 함께 했고 함께 울고 함께 웃었다. 
나꼼수라는 프로를 알게 되었다. 훨씬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고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인터넷상으로는 이제 나라가 변할 조짐이 보이고 꿈틀댐을 느끼는 것을 넘어 승리를 장담하였다.
한껏 부푼 마음으로 치뤄진 대선의 결과는 참담했다. 
너무너무 아쉬웠고 아쉬움을 넘어서 허탈했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란 만화는 다 보고 자란 나의 마음에는 항상 정의는 질리가 없었다.
아무리 어려운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항상 주인공은 그 위기를 이겨내어 승리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정의가, 그 주인공이, 내 마음속의 태권브이, 마징가 Z 가 무너진 것이다.
승리를 예측 하던 사람들, 호언장담하던 리플들, 올라가는 추천수....
한태 사이트가 마비되었을 때, 내 마음도 멈춰버렸다.
오유가 미웠다.. 차라리 바람이나 잡지 말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 리플들을 보면서 잔뜩 기대감을 갖지도 않았을텐데.
또 다시 염세가 도졌는지, 오유라고하는 우물에 가둬져서 세상을 보지 못한것이라 생각했는지 몇 년간 발길을 끊었었다. 

뉴스는 뉴스대로 나오고 뭐다뭐다 하는데 신경을 쓰지 않은 탓인지 쓸 겨를도 없던 탓인지 
세상은 잘만 돌아갔다. 그렇게 또 나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밥먹다 말고 쳐다본 뉴스에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들렸다.
세월호 사건이었다.
본가가 안산인 본인으로서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울부짖는 사람들, 암울한 분위기... 지나가는 사람들의 인터뷰만 봐도 내가 다니던 길에서 한 것이고 
한 다리만 건너도 피해자와 관련된 소식을 알 수 있었다.

이 땅에 정의는 없었다. 질서는 무너지고 약자는 유린당했다. 아우성이 빗발치고 의미없는 발버둥만 았었다.
언론은 연신 거짓을 말하고 사람들의 눈빛은 흐려져갔다.
나의 마음에도 그 상처가 곪아져만 갔고 자괴의 웅크림으로 이 어둠의 터널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큰 상처가 곪은 채 낫게 할 방법은 없었고 시간에 맡기는 수 밖에는 생각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그 상처는 점점 심해져갔고 마침내 촛불로 작지만 강력하게 표출되었다.
고성으로 표출해버려서 흩어져버리는 것이 아닌, 조용하지만 냉철하게 오랫동안 그 분노가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깨어있는 시민들이 모여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가 되었고 그것은 실현되었다.
또 다시 찾아온 투표의 기회에서 사람들은 희망이 있었고 진지한 의지가 엿보였다.
엄지를 올리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인증샷을 찍으며 활기찬 그들 앞에서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마치 내가 투표를 안해서 그분이 그렇게 돌아가신것 같아 죄송스럽고, 정치를 알게된 후로 나는 투표장에 들어설 때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들어서며 말로만이 아닌 정말로 정말로 소중한 한표를 조심스럽게 넣었다.

승리의 결과에 사람들은 마음껏 기뻐했으나 손을 놓지 않는다. 불과 몇일 사이에 많은 부분이 정상화 되는 것을 보고도
안심하지 않는다. 어렵게 얻은 이 행복을, 이 정의를 다시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혹은 같이 노력하고있다.
이제 정치는 나와 상관 없지 않다. 이것은 내 삶의 일부일 수 있고 나는 이 안에서 살고 있을 수도 있다.
투표는 나의 뜻을 외치는 목소리 뿐만 아니라 내가 여기 서 있음을 알리는 존재의 표시가 되었다.
이제 어두워서 보이지 않던 우물에 달빛이 비추고 있다. 
이 달빛이 행여 거센 바람에 일렁여 흩어지지 않도록 사람들은 울타리를 만들고있다.
나 역시 아무것도 몰랐던 그 스무살의 풋내기가 이제는 그들과 함께 기쁜마음으로 동참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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