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2C 무렵의 중국.
주황색으로 칠해진 영역이 남송(南宋). 파란색은 금(金). 초록색은 서하(西夏).
중국의 역대왕조들 중 최약체로 여겨지는 남송.
사실 맞다;;;
애시당초 북송(北宋)이 금(金)에 의해 박살나고 남쪽으로 쫓겨내려와 세운 망명정권의 나라였고
존속기간 내내 허구헌날 주변국들에게 삥뜯기고 주구장창 두들겨 맞기 십상이었으니..
다만 그 최약체 나라가 만들어낸 것들은 가히 놀랍다.
북송(北宋)의 도읍 개봉(開封)의 모습을그린 <청명상하도(清明上河圖)>.
송나라 최고 전성기 무렵의 개봉인구는 130만. 그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상당히 활기찬 분위기의 시장통이다. 당시 송나라의 번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라 하겠다.
당(唐) 왕조 멸망 이후 도래한 5대 10국(5代10國) 시대를 종결지은 송(宋) 왕조는 통일왕조로서 번영을 구가하며 경제, 문화, 사회 등의 전 분야에 걸쳐 가히 혁명이라 부를 만한 성장과 발전을 이룩했다.
이때부터 중국의 화남(華南)지방도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고 서역과의 무역도 활발해져 막대한 무역수익을 얻는다. 그래서인지 맨날 요(遼)나라나 그 이후의 금(金)과 서하(西夏) 등의 주변국들에게도 공물로 삥 뜯기고도 재정은 충분했다고.
이 번영과 융성함을 토대로 송나라 시대에는 유독 발명의 산물들이 쏟아져 나온다.
교자(交子).
세계 최초의 지폐.
인공섬.
정확한 획정지도 개발. 요새의 지도와 별 차이가 없다고 함.
물 시계탑.
운하의 갑문구조 개발.
화약무기.
화약은 그 이전에 발명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사용되어 무기화 된때는 이 송나라 때다.
훗날 몽골의 침입을 막기위해 따발총 비스무리한 무기도 개발해냈다.
목판인쇄술.
최초는 아니지만 개량화된 때는 송나라.
차륜선.
농사에나 쓰이던 수차의 원리를 이용하여 배를 만들어냄.
차륜의 원리에 대해서는 일찍이 서양의 로마도 알고 있었다라지만 그걸 이용하여 뭔가를 하지는 못했음.
기계벨트.
현대의 기계벨트 원리와 매우 유사하다.
불야성.
발명품이라기 보단 하나의 문화.
수도 개봉은 중국사상 최초로 24시간 불이 꺼지지않고 돌아가는 이른바 불야성이 되어 밤늦은 시간까지도 상점가와 거리에는 사람들이 수북했으며 오락장에서는 약과 옷, 음식, 공예품 등이 거래되었고 수천 명을 수용할 수있는 극장이 있어 거기서 연극을 하곤 했다.
또한 당시 한창 유행했던 차 마시기에서 비롯된 차의 향을 맡고 무슨 차인지 알아맞추는 놀이가 성행하여 거리 곳곳에서 이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북적였으며 또 국수가 유행해서 국수집엔 인파가 끊이지 않았다고.
- 중국의 4대 발명품인 종이, 화약, 인쇄술, 나침반 중 종이(종이는 한(漢)나라때)를 제외한 3가지가 모두 송나라 때 발명됨.
- 석탄을 사용.
- 주식회사 비슷한 상업조합이 만들어짐.
중국의 왕조들과 과거 미국의 GNP 순위.
1위가 한(漢)나라. 2위가 송(宋). 3위가 명(明). 4위가 청(淸). 5위부터는 1870년대의 미국..
- 11C 무렵 송나라의 철강 생산량은 오늘날 수치로 환산했을때 대강 약 12만톤이나 되었던지라 금이나 서하 등에 바치던 조공은 단 몇퍼센트에 불과했음. 그렇게 조공을 바쳐대도 나라가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
그러나 이 문명대국 송나라도 애초에 태조(太祖) 조광윤(趙匡胤)이 나라의 통치이념으로 삼은 문치주의로 인하여 생겨난 무인들을 멸시하는 경향 때문에 군대의 사령관으로 뭣도 모르는 문관들이 임명되기 일쑤였고 그 바람에 전쟁에서 제대로 된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해 결국엔 몽골에 의해 짓밟히고 만다.
송(宋) 태조(太祖) 조광윤(趙匡胤).
또한 근본적으로 송나라 군대가 주로 보병위주였기에 그 반면에 기병 중심의 군제를 편성했던 금(金)이나 요(遼), 훗날의 원(元)이 되는 몽골과 전투를 벌임에 있어서 불리했을 뿐더러 송의 군사제도인 모병제의 실패로 인한 원인도 무시할 수는 없음이다.
오죽했으면 금나라 기병 17명에게 송군 보병 200명이 떡발리는 사태까지 일어났을까.
쓰다보니 자연스레 송군을 까게되었는데..
아무튼 눈부신 발전과 성장을 통해 문명대국을 건설한 송나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