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media.daum.net/m/media/society/newsview/20140109001007434?RIGHT_REPLY=R13 [한겨레] "가만히 있는 나를 왜 또 울리냐."
8일 오후 2시 경북 청송군 청송읍 청송여고에 도착한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85) 할머니가 모여있던 취재진들에게 말했다.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했던 대구 포산고를 지난 3일 항의 방문한지 닷새만에 할머니는 또다시 대구에 있는 집을 나서야만 했다. 승용차로 2시간이 넘는 길을 달려왔다. 할머니는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이권희(34) 조직국장의 부축을 받으며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학교 본관으로 나있는 돌계단을 올랐다.
이 학교 박지학 교장이 안에 있었지만, 교장실의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방문자들이 항의를 하자 교장실 옆에 붙어있는 행정실에서 여직원이 나와 행정실을 통해 들어가라고 안내했다.
"당신들은 누구이며 어떤일로 무슨 내용으로 왔는지 말하세요."
교장실 안에있던 박지학 교장이 외투 주머니에 오른손을 찔러 넣은채로 할머니 일행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교장은 전날 이들로부터 이미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선정한 것에 대해 항의를 하기위해 방문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할머니는 "90살이 다되가는 노인이 찾아왔는데 손을 주머니에 찔러놓은 채로 태도가 그게 뭐냐"며 호통쳤다. 청송여고가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한 것에 항의하기위해 할머니와 함께 왔던 20여명이 함께 불만을 쏟아내자 교장은 다소 수그러진 태도로 말했다. "진정하고 화내지말고 이야기 합시다."
조현수 전국농민회총연맹 청송군농민회 회장은 "청송여고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사실이 아닌 역사를 그것도 친일·독재를 미화해 가르치려는데 유감이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선정을 철회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이 할머니도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보면 내가 일본군을 따라 다닌 것으로 돼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교장은 "그리 화내실 일이 아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문제가 있는 부분이 모두 수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엉뚱한 대답을 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1100곳이 넘는 오류가 발견돼 한 번 수정을 거쳤지만, 여전히 600곳이 넘는 오류가 남아있다.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로 끌려갔다'가 아니라 '따라 다니기도했다'로 표현하고 있고, 일제의 한반도 '침략'도 '진출'로 설명하고 있다.
항의하기위해 학교를 찾았던 사람들은 이 말에 거세게 항의했다. 곳곳에서 "교장이 읽지도 않은 교과서를 선정했다"며 고성이 터져나왔다. 급기야 이들은 교학사 교과서를 가져와 김 교장에게 펼치고 문제의 부분을 하나씩 확인시켜줬다. 그러자 교장은 "나는 다 수정됐는줄 알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조현수 전국농민회총연맹 청송군농민회 회장은 "청송여고 학교법인 청경학원 박명준 초대 이사장이 군사정권을 옹호하는 활동을 했다고 하던데, 그래서 아들인 교장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한 것이냐"며 따져물었다. 박명준 초대 이사장은 박 교장의 아버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장악한 뒤 만든 국가재건국민운동본부 청송지회장을 역임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선정하는 절차와 과정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조현수 전국농민회총연맹 청송군농민회 회장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선정하며 학교운영위원회는 열리지도 않았고, 교과협의회에 역사 교사도 1명만 참여했던 것으로 안다. 맞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교장은 "학교운영위원회가 열리지는 않았지만, 학부모의 의견을 들었고 정당한 절차를 거쳤다"는 이해하기 힘든 대답을 했다. 교과협의회에 역사 교사가 왜 1명만 참여했느냐는 질문에는 "학교에 역사 교사가 1명 뿐인데 그럼 어떡하느냐"고 반문했다. 교육부가 전국의 시·도교육청을 통해 각 학교로 내려보낸 '검인정 교과용 도서 선정 매뉴얼'에는 역사 교사 3명 이상으로 교과협의회를 꾸려 한국사 교과서를 순위대로 3개 추천하도록 돼 있다. 만일 청송여고처럼 역사 교사가 3명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주변 학교에서 부족한 역사 교사를 위촉해야 한다. 이날 밝혀진 것이지만 청송여고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선정하면서 학교운영위원회를 열지도 않아놓고서 마치 연 것 처럼 서류를 꾸며 경북도교육청에 보고했다.
이런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버티던 박 교장은 이날 오후 3시40분께 결국 "내일 학교운영위원회를 열어 학부모들의 의견을 구해보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철회한다고 말해라"라는 요구에는 끝내 답을 하지 않았다. "학부모가 반대하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을 철회할거냐"는 질문에는 마지못해 "예"라고 짧게 대답했다.
이용기 전교조 경북지부장은 "사립학교인 이 곳은 '개인기업'이라서 이런 것 같다. 이곳에서는 교장이 학교의 주인이고 나머지는 학교의 종이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냐"고 비판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이 청송여고를 항의방문한 이날 이영우 경북도교육감은 "교과서 선정은 학교의 권한인데 시민단체 등이 압박해 선정이 번복되는 것은 문제"라고 밝혔다. 이 경북도교육감은 이날 오전 경북도교육청 2층 회의실에서 열린 신년주요업무발표 기자회견에서 "다른 7가지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도 하나하나 짚어가며 확인해보면 분명 잘못된 부분이 나올 것이며, 잘못된 부분은 수정돼야 하지만 교과서의 다양성은 존중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 교육에서 (교과서 선정이 번복되는)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송/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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