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어머니
우리 엄마를 보면 그 말이 틀린게 아닌듯 싶다.
엄마는 전라도 시골에 태어나 3남매중 막내로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라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먹고 살기 힘든 집안상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며 성장했다.
엄마는 학창시절 꽤 이름있던 체육 유망주였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꿈을 포기하고 미술로쪽으로 소질이 있었지만 이 또한 돈으로 인하여 포기하게 된다.
그때 엄마는 남들보다 세상의 이치를 좀더 빨리 깨닸게 되어 서울로 올라왔다.
계산능력이 우수했던 엄마는 회사 경리로 들어가 부장이던 우리 아빠와 만나 나와 동생을 세상밖으로 내보내셨다.
성격이 털털한것같지만 참으로 여린 우리 엄마. 사람들을 좋아해 현재 식당에서도 많은 단골들과 이야기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다.
엄마가 어렸을때부터 나와 동생한테 가르친 교육 방식이 정말 대단하셨다. 꼬맹이때 말도안되는것들에 대해 질문을 하면
무조건 yes/no가 아닌 일단 같이 해보았다. 그리고 그게 되는지 안되는지 내 몸소 느끼게 해주셨다.
엄마 또한 학창시절 돈으로 인해 꿈을 접은 경험때문에 우리가 하고싶은것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다.
일된 되든 안되든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고, 세상을 좁게 살지말고 넒게 볼라는말, 사람과의 관계는 정말 중요하다는것등
어릴때부터 우리는 그런 소중한 말들을 들으며 성장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처럼 세대가 변함에 따라 맞춰갈려고 노력을 많이하신다.
고정관념없이 여러가지 시선에서 객관적으로 볼 줄아신다. 내가 유학 온 입장에서 국제결혼 이야기를 꺼낸적이 있었는데,
국적이 어디던 상관없다고한다. 다만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문제이긴하지만 결국엔 자기와 배우자의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것이다.
딸을 간절하게 원했던 우리 엄마이였기에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며 자주 놀러가고 맛있는것들을 먹을상상을 하신다.
아마 그건 이뤄지기 힘들것같다 ㅋㅋ 아무튼 그러기에 나는 딸처럼 역할을 많이 했다. 집안일도 왠만해선 내가 다하고 25살인 지금도
엄마한테 어리광부리도 한다. 엄마가 좋다. 이유없이 좋다. 그게 엄마인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