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여성. Lgbt. 귀화외국인. 애완동물 관련은 인권단체들이 관심도 많이 가지고 정치인들이 보기에 사진도 이쁘게 나오며, 어느정도의 열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기성 어른들 및 단체들에서도 우호적인 입장이다.
허나 현재 2030남성들의 인권문제는 같은 2030남성들 끼리도 의견이 다르며. 40 이후의 세대에게는 전혀 논리적으로 먹혀들지 않는다.
그들의 경험으로는. 그들이 배워온 교육으로는 현재의 이 문제가 이해되지 않는것이 당연하다.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남성이란 자체만으로 기득권을 누려왔던 40세 이후의 남성들은 아직까지 자기 세대가 그랬으니 지금도 그럴것. 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문제.
특히 남성의 성에 관해서는 여성의 그것과 다르게 무한대로 이해심이 넓어진다. 서로의 성이 바뀌면 명백한 성추행임에도 불구하고 너도 좋지 않았냐 라며 생각할 남성들의 숫자가 압도적이기 때문.
그들에게 우리의 문제를 이해시키는데에는 정말 오랜기간이 걸릴것이고 그들이 우리의 문제와 이슈를 알아차리려면 우리에게도 마이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 마이크는 김재기처럼 반 미치광이가 대변하는 것으로 보여서도 안되며. 일베처럼 정신병자들이 대변하는 것 처럼 보여서도 안된다.
또한, 마이크를 만든다고 해도 공격적으로 우리가 쳐해진 부당함을 이야기 하는 것 보다 평화적으로 상대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2016년 한국을 빛낸 역사적인 촛불집회가 오직 평화와 대화로서 한국 최고의 정치권력자인 박근혜를 끌어내리고 구속시킨 것이나 한국 금권권력의 정점에 있는 이재용을 구속시킨 것 처럼... 평화와 대화는 칼과 총보다 강하며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글들은 그 무엇보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부분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와 말이 통하는 사람. 우리와 생각이 어느정도 일치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의 글을 보고 생각을 바꿔줄 사람들과 꾸준히 이야기 하고 토론하는것이 좋다.
미국여성이 참정권을 얻은것은 여성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800년대 후반부터 1920년까지 약 50년간 꾸준한 여성운동이 있어서 였고
흑인들은 100년이 지난 오늘날도 흑인인권운동을 해오고 있다.
지난 미국대선 출마자 중 당선가능권에서 가장 흑인인권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은 버니 샌더스였고 그의 연설도중 흑인여성 두명이 난입해 블랙 이스 매터 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그 사건은 아마도 미국 내 흑인인권운동을 몇년간은 퇴보 시켰을 것 이다.
오늘날 한국대선 당선가능권(10%이상 지지율)에서 가장 lgbt를 이해하는 사람은 문재인후보이고 문재인후보의 연설도중 난입한 lgbt관계자들은 국내 lgbt에 대한 상당히 많은 수의 무관심층을 혐오자로 바꾸었다.
2030남성인권은 어떠한가.
심지어 그들에 비해 마이크도 정말 작고 관심은 극히 미미하리 만큼도 얻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 그나마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수 있는 사람들을 비난하면서 까지....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해야 하겠는가.
솔직히 생각해보자. 오유만큼 다양한연령대의 사람들이 보는 사이트는 많다. 오유만큼 성별이 일정하게 분포되어있는 사이트도 많다. 오유만큼 많은수의 사람들이 보는 사이트도 많다. 하지만 오유만큼 2030남성의 아픔에 그나마 공감해주고 오유만큼 이 이슈를 많은사람들이 지켜볼 수 있는 사이트가 있는가???
단 50명의 추천으로 수백 수천. 어쩌면 수만. 의 사람들이 최소한 제목이라도 보고 지나가게 할만한 사이트가 있는가??
우리가 100의 아픔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성별 종교 나이 환경이 다른사람들에게 100의 아픔을 똑같이 느껴보라고 내 아픔을 이해해 달라고 하는건 터무니 없는 소리다.
내가 이리저리 해서 아프니 이 아픔의 10만큼. 아니, 1만큼이라도 이해해주시고 지지해달라. 부터 시작해야 우리의 목소리가그들에게 닿을것이다.
근 한달간 베오베를 눈팅하며 오랜만의 휴식에 쌓였던 생각을 풀어낸 글이라 다소 길기도 하고 읽는데 어려움이 있으실 것도 같습니다만...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겁니다.
오유를 비판해도 좋고 문재인의 정책이나 공약을 비판하는것도 생각의 자유입니다 심지어 가장 마초처럼 보이는 홍준표를 찍는 것 또한 당신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아픔에. 우리들 2030남자들의 마음에 당장 공감을 하지 않는다고해서 탈퇴하고. 비난하고. 약올리고. 서로간에 약점을찾고. 상처주면 우리가 샌더스의 연설에 난입한 2명의 흑인여성이나 문재인의 연설에 난입한 lgbt단체와 다를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아직 우리의 마이크는 작습니다.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우리가 이런 아픔을 겪는지도 모르고 안다고 할지라도 공감을 못할겁니다. 우리의 마이크를 키우려면. 일단은 우리와 구나마 말이 통하는 상대에게 적대적으로 굴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과 대화하며. 교감하며. 소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