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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가 글 써봅니다.
게시물ID : military_737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최카피
추천 : 11
조회수 : 39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4/29 01:30:38
직업 상 책게 또는 유자게, 스타1 게에서 놀면서 베스트 게시글 눈팅이나 하는 아재입니다.
오유는 인포메일 시절부터 하면서 제일 좋아하는 커뮤니티이며, 다른 커뮤니티 활동은 안하는데, 이번 WINDOWS2000님 밴 사건은 제가 오유에 몇 번 안되는 실망되는 사건이라 이렇게 글까지 씁니다.
군대는 일반 보병으로 전역을 했고 밀리터리에 관한 자료도 꽤 좋아합니다.
군게에서 무기에 관한 자료들이 베스트에 오르면 나름 관심 있게 지켜보기도 합니다.

요즘 이슈의 정점이 되는 군대 문제, 페미니스트 문제에도 나름 불만이 있었지만 글을 쓰기에는 제 지식이 짧기도 하여 굳이 키보드를 두드리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도저히 참아지지 않는군요.

스스로 완벽히 합리적인 사람도 그렇다고 완벽히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 시대를 사는 그저그러한 보통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2014년 세월호에 울분을 토하고 진도 체육관도 다녀왔습니다.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도 다녀오며 그래도 나름대로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며 살아가는 일반인입니다.

먼저 군대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해봅니다.

저는 1999년 10월 군번으로 2001년 12월 전역이었지만 2002년 1월 전역하였습니다.
두번의 영창을 다녀왔습니다.
첫번째는 국방부에 글을 썼다는 이유였는데, 당시(어려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중대장과 소대장들 그리고 행보관이 영창을 가야한다니 그대로 따랐습니다.
두번째는 그렇게 달라진 저의 군생활에 큰 회의를 느껴 가족이 면회를 왔을 때 사준 소주를 후임에게 줬고 그 술을 먹고 후임이 탈영하여 함께 영창을 다녀왔습니다.
두번의 영창 사건은 제 삶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부정적인 영향도 컸고, 긍정적인 영향도 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세상을 알고 보니 후회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두번째 영창 사건은 여러가지로 이해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저의 첫 영창 즉 국방부에 글을 썼다는 이유로 간 것은 지금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사건이죠.
당시 보통은 2년 2개월 군생활을 하는데, 저는 1개월 정도를 더 했습니다. (이것에 대한 변명을 하려는 글을 아닙니다.)
두 사건은 제 삶에 깊숙이 들어온 정의를 고민하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한명의 개인이 어떤 사건으로 어떤 입장과 어떤 처지에 위치하는가? 그것도 모든 정보가 감춰지는 군대에서 직접 경험한 저는 군대라는 조직에 다른 면까지 추정하게되는 사건들입니다.
예전부터 일련의 군대 문제들이 시사문제까지 확대되는 것을 뉴스로 보면, 저는 전혀 다른 생각들이 들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전 군대 생활을 꽤 잘하는 일반 사병이었습니다.
분대장을 상병 5호봉에 달았습니다. 풀린 군번이기도 했지만 두달위에 고참이 2명 동기가 1명 이었고,(두달위에 고참 1명이 분대장) 분대장을 달던 때 소대에는 제 위로 약 8명이 있었습니다.
자랑이 아니라 나름대로 분대장을 달기 전까지 군 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후임들에게 단 한번도 직접적인 구타를 행한 적은 없습니다. (약간 변명을 하자면 갈굼이나 욕설을 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부분은 질타를 당해야 합니다. 이유가 어찌되든...)
밑밥으로 이야기를 까는 이유는 다음에 있습니다. (아래 이야기는 완전 증명을 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너무 지나 증거를 확보하기에도 당시 일개 사병이 증거를 남기기에도 어려웠습니다. 직접 경험한 내용으로 약간의 사실 왜곡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병 때 였습니다. 일과가 끝나고 중대에 일 잘하는 일병과 상병 약 10명이 행보관과 다른 소대 부소대장(중사)의 카렌스 차량에 타고 어떤 현장으로 이동되었습니다.
공사장으로 우리는 2인 1개조로 공사장에 있던 철근을 훔쳐 자대로 돌아왔습니다. 싯가로 정확하지 않지만 약 200만원 정도(그 이상일 수도)로 추정되며 그 돈은 행보관의 주머니로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작업(절도) 명령을 받았던 사병들은 1일 외박권을 포상으로 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자잘한 부조리는 수도 없이 경험했지만 제 군생활 중에 가장 큰 부조리였습니다. 직접 참여 했다는 사실은 이후에 정신적으로 저를 괴롭히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런 일을 명령한 행보관과 부소대장은 그것으로 벌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제가 영창을 간 두 사건과 명령을 받아 수행한 사건 중 어떤 것이 더 정의롭지 못한 것 일까요? 물어볼 가치도 없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번 밴 사건은 영자님이 제가 군대에서 경험한 부조리한 조직과 일면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저는 오유를 무척 좋아합니다. 다른 커뮤니티를 못해서가 아니라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커뮤니티이며 그 동안 애착이 들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벌써 13년이 넘었네요.
이곳을 만든 영자님도 좋아합니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에 대한 해명과 원점으로 돌려 보다 정의를 실현하는 오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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