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만일 내가 찍은 투표지가 제대로 집계되지 않고 경쟁 후보 쪽으로 집계된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사실 김어준의 다큐영화 <더 플랜>이 던지는 질문은 아직까지 그다지 의심해보지 않았던 사안이다. 설마 컴퓨터가 하는 집계인데 그런 오류 혹은 나아가 부정이 있었을까.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우리의 마음은 점점 의혹 쪽으로 기울어가는 걸 어쩔 수 없다. 그 의혹은 막연히 정황만 가지고 쓰는 소설이 아니라 데이터들이 일관되게 보이고 있는 숫자가 주는 의혹이라는 점에서 더 현실감을 부여한다. 그 숫자들은 통계학적인 분석을 통해 나온 것들이다. 지난 대선, 투표 분류기가 미분류한 표에서 박근혜와 문재인 두 후보 간의 득표율을 분석해보자 전국의 미분류 표에서 1.5라는 일정한 비율로 박근혜 후보의 표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 비율로 논문까지 쓴 통계학자는 이러한 일정한 비율이 나온다는 건 중앙의 통제가 있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미분류표의 비율이 1의 비율에 최대한 가까워야 상식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며, 1.5라는 수치는 지나치게 많은 비율이고, 만일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거기에 대해 이를 관리하는 주체는 합당한 답변을 내 놓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다큐영화는 이런 문제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해외에서 논란이 되었던 사안들이라는 걸 확인시켜줬다. 독일 등지에서 전자개표기를 두고 벌어졌던 소송들의 사례를 보여주며 이러한 컴퓨터 방식의 개표가 간단한 해킹에 의해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독일에서는 결국 그 신빙성을 문제 삼아 제기된 소송에 의해 전자개표기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됐다는 것.
<더 플랜>은 영화 말미에 자막을 통해 선관위에 수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는 걸 밝혀두었다. 영화가 나오고 난 후 지난 19일 선관위는 드디어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투표지 현물을 직접 검증하는 것”이고 “<더 플랜> 제작진의 요구가 있다면 조작 여부 검증에 필요한 범위에서 제3의 기관을 통해 공개 검증을 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결과를 조작한 것이 밝혀진다면 선관위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에 선관위는 한 가지 단서를 덧붙였다. “반대로 어떠한 조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의혹을 제기한 분들은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길 기대한다”는 것이다. 김어준은 이러한 대응이 “일종의 협박”이라고 밝혔다.
<더 플랜>이 제기하는 의혹은 한 마디로 끔찍하다. 만일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투표가 부정한 누군가에 의해 간단히 조작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영화 뒷부분에 <더 플랜> 제작진은 당시 사용됐던 전자개표기를 어렵게 구해 박근혜와 문재인으로 나뉘어진 표를 넣고 개표감시를 해온 ‘시민의 눈’ 활동가들이 보는 앞에서 해킹 실험을 선보인다. 놀랍게도 표에 찍혀진 도장과 상관없이 해커가 집어넣은 수치의 비율대로 정확히 표가 나뉘는 것을 눈앞에서 목도한 그들은 너무나 허탈하고 황당해 말을 잇지 못했다. 얼마나 화가 나고 황당했으면 심지어 그들 중에는 눈물까지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더 플랜>이 던지고 있는 건 질문이다. 수치들과 조작 가능한 전자개표기의 해외 사례와 국내에서의 실험이 모두 합리적 의심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주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투표에 대한 이러한 합리적 의혹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자격이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선관위 같은 공공기관은 이러한 의혹을 해소해줄 수 있는 확실한 답변을 던질 의무가 있다. 그것이 그저 의혹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물론 선관위는 <더 플랜> 제작진의 요구가 있다면 제3의 기관을 통해 공개검증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더 플랜>이 던진 질문은 그것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나온 미분류표의 1.5라는 일정한 수치의 비율이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그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직 확실히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