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에 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라는 유승민 후보의 질문에 대해 문재인 후보가 다소 매끄럽게 대답하지 못한 점에 대해 저는 이렇게 판단합니다. 외교는 내치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문제해결 방식을 달리 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하루만에도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다른 국면으로 전환되어 있는 것이 외교상황이며, 철저한 힘의 역학이 작용하는 분야입니다. 철의 의지를 가진 어떤 정치인이 정치적 결단을 내려서 밀어붙이는 것이 가능한 국내 정치와는 법칙이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후보토론은 유권자 판단을 위해 있는 것이지만, 또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등 외국정부에게도 대선후보 토론은 차기 한국정부의 입장을 가늠하는 판단 도구이기도 합니다. 차기 대통령이 높은 확률로 민주당에서 선출될 것이라는 것 또한 그들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고, 문재인이라는 자연인이 가지고 있는 어떤 입장이 그들에게는 중요한 등급의 외교정보로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봅시다. 한국의 대통령이 군사문제로 협상테이블에 앉았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이 안된다면 그들로서는 플랜 A-B-C로 이어지는 대응책을 모두 준비해 상황에 따라 꺼내놓을 것입니다. 반대로 한국 대통령이 사드 찬성인지 반대인지, 혹은 타협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떠한 스타일인지 파악당했다고 봅시다. 상대에 대한 분석과 판단자료가 입수된 상태에서 그들이 원하는 답을 이끌어 내는 일은 비교적 간단한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재인 후보가 현재 취하고 있는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것이 선명성의 부족이라는 식의 평가절하 되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무척 아쉽게 생각합니다. 예측 불가능성은 대화에서 협상력으로 작용합니다. 단지 안보적으로 선명하고자 장래에 중요한 협상력으로 작용할지도 모르는 그런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민주당 경선 때 이재명 당시 경선 후보도 동일한 비판을 하였는데, 선명하다는 것이 항상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이명박 전 대통령이 부시와 만났을 때 월령이 많은 소고기로 주문한 사건은 많이들 기억하실겁니다) 문재인에 대해 단지 우호적 발언을 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문재인이라는 자연인은 제가 주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보수적입니다. 광폭적인 변화보다는 현 체제 안에서 답을 찾고 있는 사람이며,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구하기에 차기 정부를 맡길 만 한다고 평가할 뿐입니다. 북한이 얼마나 포악하고 답없는 집단인지 그가 모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니 사실 싫어하겠지요. 그리고 대한민국의 주적으로 북한이 명시되어 있는 것도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도 북한에 대해 '주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차기 정부와 북한간의 감정의 골을 키우는 명백한 자살행위를 왜 해야 하느냐 라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온 사람이 처음부터 그런 발언으로 미운털 박혀서 취임식할 때 북한 중앙방송이 이 어떤 논평을 낼지 불 보듯 빤 합니다. 물론 작성자인 저는 북한이 '지구역사상 최악의 정권'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북한과 발전적이고 호의적이며 유의미한 어떤 결론을 이끌어 내고자 한다면 다소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그들을 대할 줄도 알아야 된다는 철저한 현실론에서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번 토론은 창과 방패의 싸움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유승민 후보측 전략은 문재인 후보의 실언을 유도하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전략이었고, 문재인 후보가 다소 방어적이었던 것은 그 계산을 읽고 의도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개인적으로 봅니다. 큰 실수만 안하면 사실 문재인 후보가 이기는 게임이었다 라고 본다면 지나친 생각일까요? 문재인은 역시 토론에 약하다는 둥, 주적이 어떻고 안보관이 의심스러우니 말들이 내일 또 쏟아져 나오겠지만 제가 보기에 대선으로 가기엔 꽤 여우같은 대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고싶은 말이 많지만 긴 글은 보기 싫은 법이니 이번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모든 의견 존중하며, 대차게 까셔도 좋습니다. 제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