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김현민 기자 = 독일 대표팀이 2014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독일 성공 신화의 기반엔 바로 탄탄한 시스템적인 기반에 더한 철저한 준비성과 흔들리지 않는 인내심이 가미되어 있다.
독일이 통산 4번째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이와 함께 독일은 5회 우승의 브라질에 이어 이탈리아와 함께 최다 우승 2위에 등극했다. 무엇보다도 남미 지역에서 처음으로 우승한 유럽 팀이라는 금자탑을 쌓는 데 성공한 독일이다.
무엇보다도 독일의 무서운 부분은 바로 꾸준하게 기본 이상의 성적을 올린다는 데에 있다. 아예 참가조차 하지 않았던 초대 월드컵과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라는 이유로 참가 자격이 박탈됐던 1950 브라질 월드컵을 제외하면 월드컵 본선 전대회에 출전했다. 1954 월드컵을 기점으로 16회 연속 8강 무대를 밟았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독일은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4회 연속 준결승에 진출했고, 무려 13회나 준결승 무대를 밟으며 이 부문 단독 1위를 달리고 있다. 월드컵 최다 경기(106경기)도 독일의 차지다.
게다가 독일은 이번 월드컵을 기점으로 브라질을 제치고 결승 진출 8회로 최다를 기록하게 됐다(종전까지는 브라질과 함께 7회로 동률이었다). 또한 224골을 넣으며 브라질(221골)을 제치고 월드컵 최다 득점팀에도 등극했다. 꾸준함이라는 점만 놓고 보면 독일은 브라질에도 앞선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독일이 꾸준하게 성과를 낼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탄탄한 시스템의 기반 하에 철저한 준비성으로 미래를 일찌감치 대비해나가며, 부진한 시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인내심을 발휘한다는 데에 있다.
독일은 그 어느 국가보다도 축구협회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다. 독일 축구협회(DFB)와 독일 축구 리그 연맹(DFL)이 공조 체제를 이루고 있다. 분데스리가의 탄탄한 기반이 바로 독일 대표팀의 강점으로 이어지고 있다.
독일은 EURO 1996 우승 이후 한 동안 유망주 배출에 실패하면서 '녹슨 전차군단'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비록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긴 했으나 EURO 2000과 EURO 2004 본선에서 연달아 조별 리그에서 조기 탈락하는 수모를 겪거야 했다.
하지만 절치부심한 독일은 이 때를 기점으로 유스 시스템 구축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2002/03 시즌부터 독일은 분데스리가 1부 리그와 2부 리그에 참여하는 모든 구단들에 대해 반드시 유스 시스템을 운영하도록 지시했다. 이후 분데스리가 구단들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약 10억 유로(한화 약 1조 1,175억원)가 넘는 거액을 투자했고, 그 결실로 무수히 많은 유망주들을 배출해냈다.
게다가 DFB 차원에서 독일 유망주들을 격려하기 위해 프리츠 발터 메달을 17세 이하부터 19세 이하 부문까지 연령대별로 수여하고 있다. 이번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 중 마누엘 노이어와 토니 크로스, 마리오 괴체, 제롬 보아텡, 베네딕트 회베데스, 안드레 쉬얼레, 율리안 드락슬러, 그리고 마티아스 긴터 등이 바로 프리츠 발터 메달을 수여했던 선수들이다.
지도자 육성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지도자의 레벨에 따라 UEFA A 자격증과 B 자격증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이하 EPL)에선 B 자격증 소지자도 팀을 지도할 수 있는 데 반해 분데스리가는 오직 A 자격증 소지자에게만 감독직을 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많은 지도자들이 UEFA A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다. 실제 잉글랜드의 A 자격증 소지자는 1,161명에 불과한 데 반해 독일은 5,500명 이상의 지도자들이 A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DFB의 지원에 기인하고 있다. 잉글랜드에서 UEFA A 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해선 평균적으로 7,595파운드(한화 약 1324만원)의 금액을 지출해야 한다. 상당히 부담되는 금액이 아닐 수 없다. 반면 독일은 평균적으로 530유로(73만원)면 A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다. 독일의 경우 해외 축구지도자 연수 프로그램에 있어서도 외무부와 DFB의 공동 지원 하에 상당 부분을 감면해주고 있다.
요즘 독일에선 토마스 투헬(前 마인츠)을 위시해 마르쿠스 바인치얼(아우크스부르크)과 타이푼 코르쿠트(하노버), 안드레 브라이텐라이터(파더보른), 그리고 사샤 레반도프스키(바이엘 레버쿠젠 코치) 등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유능한 젊은 지도자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DFB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반면 잉글랜드는 유능한 지도자의 부재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좋은 지도자가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뛰어난 유망주들을 배출할 수 밖에 없다. 선순환 구조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독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독일의 지원은 단순히 축구 내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독일은 이번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아예 브라질포르투 세구루에 '캄포 바이아'라는 명칭의 독일 대표팀 베이스캠프를 직접 착공했다. 월드컵 이후 이 베이스캠프는 리조트로 활용될 예정이다. 또한 병원과 학교 같은 제반 시설도 같이 지어 고용 창출을 유발해 브라질 국민들의 환심을 샀다.
아에 더해 독일은 소프트웨어 전문 회사 'SAP'와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매치 인사이트를 만들어 선수별 432만여개의 데이터와 팀별 4,968만여개의 데이터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실시간 데이터 분석이 가능한 툴을 확충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독일은 감독 선임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매번 감독 선임에 있어 플랜 A부터 C까지 미리 대비해놓고 있다. 독일은 오랜 기간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에게 구애했으나 이 기간에도 벵거가 안 될 시를 대비한 계획들을 미리미리 세워놓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요아힘 뢰브 현 독일 대표팀 감독이다. 원래 뢰브는 처음으로 감독 지휘봉을 잡았던 1996/97 시즌 슈투트가르트에서 DFB 포칼 우승을 차지했고, 이듬 해인 1997/98 시즌 UEFA 컵 위너스 컵 준우승까지 기록하며 차세대 젊은 감독으로 명성을 떨쳤으나 이후 페네르바체 감독을 맡으면서 다소 감독 경력이 흔들리는 시기를 보내야 했다. 1999/2000 시즌 칼스루에 감독직을 수행했으나 팀은 3부 리가로 강등됐고, 이에 그는 티롤 인스브루크와 오스트리아 빈 같은 오스트리아 리그 팀들을 맡으며 변방을 전전해야 했다.
하지만 DFB 기술위원회는 뢰브의 전술적인 역량을 높게 평가했고, 본격 뢰브 감독 만들기에 착수했다. 다만 2006 월드컵이 자국에서 열리기에 다소 독일 내에선 무명에 가까웠던 뢰브 대신 스타 플레이어 출신으로 지도자 경험이 일천했던 위르겐 클린스만을 대표팀 사령탑에 임명했다. 이를 통해 클린스만이 얼굴 마담 및 선수 관리를 총괄했고, 뢰브가 전술을 도맡으며 클린스만을 보좌했다. 또한 독일 월드컵 이후 뢰브는 자연스럽게 클린스만의 바톤을 터치하는 형태로 감독 교체가 이루어졌다.
현재 DFB는 독일 수석 코치로 투헬을 선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 수석 코치 한지 플릭은 로빈 두트가 베르더 브레멘 감독직에 2013년 부임하면서 지난 1년간 공석으로 남았던 기술 위원장에 오를 예정이다. 만약 투헬이 독일 대표팀 수석 코치직을 수락한다면 뢰브 감독이 독일 대표팀과 2016년까지 계약을 체결 중에 있기에 이대로라면 EURO 2016 이후 자연스럽게 투헬이 뢰브의 뒤를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독일은 원활한 감독 교체를 통해 대표팀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1년간 기술위원장이 공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급하게 이 자리를 새로운 인물로 대체하기보단 기다리는 미덕을 보였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DFB는 인내심을 가지고 감독은 묵묵히 지원해주고 있다. 지난 8년간 뢰브가 감독직을 수행하면서 역대 독일 대표팀 감독 최고 승률(68.75%)에 더해 매번 메이저 대회 준결승에 진출하는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EURO 2008 준우승 이후 2010 남아공 월드컵과 EURO 2012에서 연달아 준결승전에서 탈락하자 비판 여론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FB는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뢰브와 2년 연장 계약을 맺으며 뢰브에 대한 지지를 보내주었다. 이에 뢰브도 우승 트로피로 신뢰에 보답한 것이다.
비단 뢰브만이 아니다. 오토 네르츠가 1926년 독일 대표팀 초대 감독직에 부임한 이래 독일은 88년간 단 10명의 감독 만이 부임했을 뿐이다. 평균 재임 기간 8.8년에 달한다. 역대 최악의 독일 대표팀 감독으로 불리는 에리히 리벡과 뢰브 의 감독직 승계를 위해 디딤발 역할을 수행했던 클린스만을 제외하면 전원 4년 이상 장기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 4년간 무려 3명의 감독이 부임했던 한국과는 비교 체험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한축구협회가 이르면 이주 내에 기술위원회를 새로 구성한 뒤 새 감독 선임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시스템을 먼저 확충할 필요가 있다. 조급하게 전시 행정으로 물갈이에 나서기보단 신중하게 기술위원회와 새로운 코칭스태프를 구성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계약 기간 동안은 특이사항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외부 여론에 휘둘리지 말고 지지를 보내줄 필요성이 있다. 독일의 월드컵 우승은 단기간에 이루어진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