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시절부터 엄마는 일을 했다. 출퇴근 시간이 일정한 직장이 아닌 자영업.
내가 학교를 가야할 시간에 엄마는 항상 주무시고 계셨고, 내가 졸음을 참고 엄마의 퇴근을 기다렸다가 엄마의 얼굴을 보고 잠들 때보다 그렇지 않을때가 더 많았다.
나는 학생때 소풍날과 비오는 날이 제일 싫었다.
5살때 기억인데, 밥투정을 극도로 혐오하셨던 아버지는 김치를 안먹겠다고 투정부리던 나를 마당으로 내던져 버렸다.
그 후로 나는 음식에 대한 강박을 가지게 되는데 잔반을 결코 남기지 못하고 아무리 맛없는 식사도 먹을수 없는게 아니면 다 위장에 밀어넣게 되었다.
그런 내게, 소풍이니 김밥을 싸달라 피곤한 엄마를 조를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소풍이라고 김밥을 싸주시는 분은 아니었다. 그래서 소풍엔 말 그재로 밥과 김으로 된 깁밥을 싸가 구석에서 혼자 먹거나 아니면 과자만 사서 먹곤했다.
그것에 대한 불만을 크게 가지지 못한것은 역시 밥투정의 연장선이라고 생각되어 다시금 아버지가 나를 내던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에 착안된 무의식의 발현이었다고 본다.
나는 당시 개발제한 구역에 살며 초,중,고, 대학을 졸업했는데 가구수도 적다보니 버스는 하루에 단 두번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키 150cm의 여자가 시속 7~8킬로의 파워워킹으로 30분 정도가 걸렸고 초등학교는 키 110cm의 여자가 시속 3~4키로 정도의 종종 걸음으로 걸었을때 1시간정도가 걸렸다.
비가 오는 날. 그것도 갑자기 비가 내리면 나는 그저 그 비를 추적추적 맞으며 걸어오는 것밖엔 방법이 없었다.
교문에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엄마를 보는게 부럽고 괴로워서 울면서 집에 갔던 기억도 있다.
언제나 내 가방에 우산이 들어 있는건 과거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일까.
내가 엄마가 되면 우산을 들고 기다려 주고 싶었고, 김밥도 아침에 갓 지은 따뜻한 밥으로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워캉맘이다. 그리고 내 배우자도 워캉대디다.
세월은 변해 돈만주면 유치원생도 한입에 먹을 수 있는 김밥집도 많이 있고 스마트 폰엔 터치한번이면 일기예보 확인이 가능하다.
그래도 여전히 아침에 갓 지은 밥으로 예쁜 도시락을 만들어 주는 수퍼워킹맘도 있고 우산을 들고 기다려 주는 엄마도 많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을 모두 다 재우고 이시간이 되서야 도시락을 미리 만들어 놓고 전자렌지를 활용하려는 반쪽자리다.
딸은, 도시락을 맛있게 먹어줄까. 내가 한 음식은 좋아하지 않는데.
요리 솜씨가 출중한 다른 아이들과 비교되서 속상하진 않을까. 나는 왜 식당을 하시는 엄마의 솜씨는 닮지 않았나.
왜 나는 예쁜 도시락도 못만드는 똥손인가.
오늘따라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딸의 말이 사무친다.
내가 엄마에개 했던 그 말. 그리고 씁쓸하게 웃던 엄마.
딸이 내게 한 말. 미안하다고 말했던 오늘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