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폐타이어
김종현
아파트 공터 한 귀퉁이
속도를 잊은 폐타이어
땅속에 반쯤 묻힌 깊은 침묵 속
햇빛을 둥글게 가두어 놓고
동그랗게 누워 있다
그가 그냥 바퀴였을 때는 단지
속도를 섬기는 한 마리 검은 노예일 뿐이었다
날마다 속도에 사육되고
길들어 갔다
다른 속도가 그를 앞질러 갈 때
그는 바르르 떨며
가속 결의를 다져야 했다
자주 바뀌는 공중의 표정 앞에서는
잽싸게 꼬리를 사려야 했다
검고 딱딱한 세계 위에서 세월을 소모하며
제한된 영역만 누려야 했다
지금 저 동그라미는 자신의 일생이
얼마나 속도에 짓눌려 왔는지 기억하고 있을까
튕겨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했으리라
예약된 모든 속도들 다 빠져나가고
속도는 한 줌 모래처럼 눈부신 한계였을 뿐
얼마나 어지러웠을까
속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속도에 매달린 세월
그가 속도의 덫에서 풀려나던 날
온몸이 닳도록 달려온 일생을 위로하듯
바람은 그의 몸을 부드럽게 핥아주었다
잠시 뒤의 어떤 바람은 풀씨랑 꽃씨를
데리고 와서 놀아주었다
벌레들의 따뜻한 집이 되었다
잃어버린 속도의 기억 한가운데
초록의 꿈들이 자란다
노란 달맞이꽃은 왕관처럼 환히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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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무다라이
박유진
철길과 도로 사이
우주 같은 공터에 고무다라이
머리에 이슬같은 봄비를 잔뜩 이고
느리게 유영한다
그녀는 원래 라면봉지였다
빗자루였다
비닐하우스였다
버려지고 부러지고 찢긴 후 고열에 녹아
공업용 색소에 버무려져 쪄내진 그녀는
깍두기를 무치고
가슴에 아이를 목욕시켰으며
자궁에 금붕어를 키웠다
금붕어는 아가미를 닫지 못하다가 비스듬히 죽었다
다르게 태어나고 싶었다는 생각은 수도 없었으리라
그녀 안에 흐르는 독이 모두 빠져나가기를 원했다
자신의 독으로 죽어가는 걸 원치 않았다
얼마나 구역질났을까
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을 내뿜던 세월
그녀가 우려지고 부닥치고 깨져
기어코 버려지던 날
보드라운 봄비가 내려와
그녀의 몸을 따뜻하게 적셔주었다
바람이 비둘기와 참새들을 데려다 주었다
그녀는 조용히 아이들에게 젖을 물렸다
고무다라이에는 더 이상 독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