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게도 답답한 날 답답하게 여긴 지인이 소개팅을 시켜주었는데 정말 너무나 고마웠다.
너무나 훌륭한 사람이었다.
찰랑살랑 거리는 긴 생머리에 풍만하고 잘록한 곡선. 탄탄하고 늘씬한 그 선..!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가 향기롭기까지 하다.
난 예의도 잊고 그녀를 자꾸만 훑어보느라 그녀가 하는 말들에 대답할 때를 놓쳐댔다.
아.. 애교 넘치는 눈에 저것이 앵두같다는 입술.. 입술.. 차라리 과일같다.
얼굴을 너무 빤히 봐서 실례인 것 같아 눈을 깔면 그곳에 꿈에서나 보던 것 같은 풍만한.. 또 실례인 것 같아 눈을 돌리면 잘록한 허리에서 절묘하게 이어지는 곡선이.
시선은 갈 곳 잃고 헤메고 있어서 곤란한데 이상하게 행복하다. 명랑하게 이어지는 목소리는 너무나 귀엽고 여성스러웠으며 한마디 한마디 할 때 마다 좋은 향기까지 났다.
“우리 저녁 뭐 먹을까요? 전 고기 좋아하는데.”
당장 스테이크를 대접했다. 커트러리가 춤추고 와인잔이 부딪혔다. 여러모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식사를 다 마치고 긴 수다끝에 시계를 보더니 눈웃음으로 날 홀리며 말한다
“근데 제가 좋아하는 고기는 이 고기가 아닌데.”
“돼지고기를 더 좋아하시나요?”
“아뇨, 그것보다 맛있는거.”
그래서 온갖 고기를 맛보게 해주었다. 두번째 데이트에선 양꼬치를 먹으러 갔고 세번째는 프랑스식 레스토랑에서 거위와 토끼 고기를, 그것도 아니라고 해서 집으로 불러다 특별히 주문한 흑염소를 요리해주기까지 했는데도 그녀는 꼭 마지막엔 자기가 원하는건 더 맛있는 고기라는 것이다.
조바심이 났다. 어떻게든 그녀를 만족 시키고 싶은데 맛있는 고기를 먹고싶다 라는 숙제가 이렇게나 어려운 것이었나.
대체 어떤 고기가 맛있는 고기일까, 어떤 고기를 좋아하는 거냐고 물어보니 애교를 흘리며 그건 태우씨가 맞춰달라며 마음을 간지럽힌다.
주말 당일치기로 횡성행을 제안하자 그녀가 처음으로 한숨을 몰아쉬며 답답해했다. 이제 그만 만나자고 하면 어떡하지. 마른 침을 삼키며 눈치를 보는데 그녀가 제안을 해 주었다.
“우리 집으로 오시면 제가 맛보여 드릴게요.”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그녀의 집에 방문했다.
처음 가는데 빈 손으로 갈 수 없어 고민하고 고민하다 그녀가 좋어하지 않을까 하는 선물을 마련해 손에 들고.
현관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자 인터폰으로 날 확인하고 문을 열어준 그녀의 모습은 아찔했다.
그녀는 레이스가 달린 앞치마 하나만 두르고 요리중이었다.
“앉아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러고 돌아서서 요리를 마무리 하는데 내 온 정신이 그녀에게 쏠릴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넋을 놓고 한 편으론 화끈하고 한편으론 뭔가 아쉬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렸을땐 식탁이 다 차려져 있었다.
“오늘 힘드셨죠? 식사부터 하세요. 진짜 맛있는 고기가 뭔지 천.천.히 맛보여 드릴게요.”
눈물이 쏟아질 것 처럼 행복했다.
내 머릿속은 김칫국에 설레발에 갖은 망상이 두루마리 휴지를 던진 것 처럼 대책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 봉투는 뭐에요?”
“아 선물을 잊고 있었네. 아영씨가 좋아할 것 같아서..”
“태우씨는 왜 맨날 감동만 줘요? 귀여워서 내버려 뒀는데 제가 진짜 졌네요.”
다행이다. 나의 노력을 알아주고 있었다니. 그녀의 볼이 꽃잎같이 상기되어 있다. 기뻐하는 모습에 내 마음도 절로 편안해졌다.
“선물 뭔지 봐도 되죠? 우리 같이 풀어요.” 내가 가져온 꾸러미를 안고 그녀가 다가온다.
"리본 풀 줄 알죠? 제건 태우씨가 풀어주세요."
긴장이 된다. 사르륵 사르륵 리본으로 묶인 에이프런을 풀어내어 날것처럼 싱싱한 그녀의 나신을 접했다. 상상 이상으로 그녀의 가슴은 아름다웠다. 세상에서 가장 탐스럼고 터질 것같은 가슴을 바라보며 내가 그녀가 좋아하는 고기에 대해 오해를 해 온 것을 깨달았다. 고기를 손질이라도 해 올 걸. 그럼 그녀가 저렇게 놀라서 비명지르며 도망가진 않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