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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라 행복해라
게시물ID : love_265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morFati
추천 : 1
조회수 : 40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4/11 22: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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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여름이었다. 여러번의 인생 갈림길이 있었지만 이토록 절절하게 고민했던 적이 또 있었던가 싶다.
그렇게 회사를 옮겼다. 아침 6시,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던 사무실에 담아왔던 책을 정리하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아침회의때 끌려갔던 기억이 난다.

첫 출근이었지만 인수인계, OJT따윈 없었다. 정신없이 하루가 끝날 때 쯤 옆팀 대리한테 인사를 하다가 너를 처음봤다. '아 얘가 걔구나' ... 내가 아끼는 동생의 여친에 친구가 내가 이직할 회사에 있다더니 그 친구구나... 기억력이 나빠서 과거 어떤 장면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 너를 처음봤던 그 순간은 사진을 찍은 것처럼 머리에 남아있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그 다음날에 네가 다른 사무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봤을 때 '아 나는 저 여자랑 결혼할 것 같다' 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면 아주 웃기는거다. 말 한번 해본적 없었고 어떤 아이인지도 모르고 사실 예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주 웃기게 그냥 그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그리고 자꾸 눈길이 가고 말해보고 싶고 어떤아이인지 궁금했다.

옆집에 8촌도 아닌게 인연에 끈이 하나 있다는 이유로 아주 쉽게 메신저로 이러저러 얘기를 하다가 점심을 같이 먹고 날씨좋은날 함께 걸으면서 왠지 네게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여태 살아내면서 같은공간에 있는 사람에게 좋은 감정이 단 한번도 좋게 끝난적이 없어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는데 너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가을 좋은날 너와 점심약속을 잡고 블로그를 이잡듯 뒤져 갈만한 식당을 찾아내고 어디서 커피를 먹으면 좋을지 마치 데이트 코스를 짜는 것 처럼 1시간이 살짝 넘는 시간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 이런걸 좋아하는 내가 아닌데 그 날은 빨리 점심시간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전 내내 담배도 한대 피지 않을 만큼 설레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가을 좋은날 걸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좋은 언니를 소개시켜 주겠다는 너의 제안을 나는 웃으면서 거절했던 기억밖에 나지 않지만 말이다. 호감이 있는 남자가 있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었다.

그리고 얼마 뒤, 네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듣고서는 사람이란게 팔자가 있나보다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좋은 감정을 가졌던 친구들은 남자친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좋은 감정을 가졌을 때는 이미 소개팅을 했거나 좋아하는 남자가 있거나 였고 결국 이어졌는데 오랫만에 누군가를 보고 설레인다 라는 감정을 주었던 너도 남친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미 썸(?)을 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을 안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껴들자리는 없었다. 그때도 지금도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마음을 숨겼다.

가끔 밥을 먹고, 일도 같이했지만 나는 의식적으로 너를 멀리했다. 인사도 잘 해주지 않았고 업무상 요청할일이 있었지만 다 내가 해버렸다. 굳이 부딪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 주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너도 나와 똑같이 대응했었고

회사생활이라는게 쉽지는 않다. 내가 입사 할 때부터 왜 너가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 고 있었다. 이유도 들었거니와 회사생활을 해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가끔 이런 회사생활로 이야기를 몇 번 주고 받다가 몇달만에 점심약속을 잡았다. 그 날은 새벽 4시에 네가 출근했던 날이었다. 아마 본부장님이 줬던 커피가 아니었다면 그 약속은 없던 약속이었을 것이다. 본부장님께서 네게 커피를 가져다 주라고 했었고 너는 자리에 없었고 나는 자리에 놔두고서 메신저로 본부장님이 사준거라고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힘들다고 말하던 너의 말투는 존댓말에서 어느새 반말로 바뀌어 있었다.

솔직히 당황했다. 말도 섞지도 않고 인사도 데면데면 그랬는데 갑자기 말을 놔버리니 당황했다. 친하게 잘 지내야 말을 놓지 이건 뭐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그랬으니까... 재밌는건 메신저로만 대화를 했다는 거다. 점심 약속은 3일 뒤였지만 한번도 말을 섞지 않았다. 메신저로 대화를 했을 뿐이다. 나는 네가 처음 말을 놨을 때는 잠깐 정신이 나갔나보다라고 생각했다. 근데 너는 아주 편하게 얘기를 했다. 그리고 금요일에 나를 보자마자 "가자!"라고 하는 걸 듣고는 내가 지금 뭘 들은 건가 생각했다.

사실, 반말이라는게 아무것도 아니다. 나한테 반말하는 나이어린 동생들이 없는게 아니다.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포인트는 크게 두가지였다. 첫째는 내가 그렇게 반말하기 편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고 둘째는 니가 반말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의아했던 거는 내가 너와 대화를 나누면서 느꼈던 점인데 너는 일정수준까지 친해지기는 쉽다. 하지만 그 이상은 힘들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아니 너는 유별났다. 칼 같이 선을 긋는게 느껴졌다. 그래서 네 반말이 당황스러웠던 거다.어쨎든 회사생활 하면서 회사사람이 아니라 그냥 사적으로 지낼 수 있는 오빠라고 생각을 해줬다면 고마운일이다.

그리고 어느 금요일에 너희 팀장과 니가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생각을 했었다. '아 저 아이가 그만 두겠구나' 갑자기 아무 이유없이 그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물어봤을 때 그렇다고 대답했었다.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후회없을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갑자기 매일 보던 너를 갑자기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우울했다. 슬프거나 뭔가 무너진다는 느낌은 아니고 딱! 우울하다.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평소처럼 지냈다. 그리고 동생이 알려줬다. 너 회사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그날 너희팀은 단체 회식을 했다. 나는 그날 야근을 했다. 너에게 서운하지는 않았다. 내게 따로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퇴사전에 같이 밥먹자는 약속 못지켰다고 얘기해주지 않았던 것을 서운해 하지는 않았다. 그걸 바라는게 웃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너희팀 회식이 끝나고 너는 잠깐 회사에 들어왔다 나갔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나갈 때 나한테 뭔가 말을 하려다 만것처럼 잠깐 서있다 간 것을 말이다. 잠깐 바람이나 쐴겸 나가서 너의 마지막 퇴근길을 배웅해 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너의 이 회사 마지막 출근과 퇴근을 하던 날, 그리고 내가 야근을 하던 날
내가 야근을 하는 건 아주 일상적인 일이긴 하지만 어쨎든 사무실에 나 혼자 있었는데 네 자리에 갔었다. 평소에도 깔끔했지만 아무것도 남긴것 없이 치우고 갔었다. 정말 싫었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정도로 너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물론 인수인계자료와 니가 회사다니면서 만들었던 자료는 남아있다. 하지만 그거는 회사 자산일 뿐이다.

너의 마지막 출근과 퇴근이 끝난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들이 펼쳐졌다. 평소와 다를게 없었다. 회사라는게 누구하나 나간다고해서 안돌아가는 조직이 아니다. 다만 남은 사람들이 조금 힘들뿐이지

그러던 어느날 메신저 쪽지가 왔다. 네가 간식을 사왔다고 회의실에서 먹고 하라고 회계 담당하시는 분이 쪽지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에는 내가 정말 정신이 없었다. 자리에 막 착석했을 때 네가 내 자리로 와서 간식 좀 먹으라고 했었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나타나다니 여튼 너는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나타나기도 하고 당황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니가 정말 회사를 마지막으로 있다가 간날 잠깐 산책을 하면서 조금 얘기를 하고 너를 보냈다. 아마 한 두번은 만날 일이 있을 것이다. 니가 부담을 주고 떠난 사람에 대한 미안함으로 한 번, 니 친구의 남자친구에 친한 형이라는 인연으로 한번 더 만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어쨎든 한국이란 나라가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족히 10시간은 가야 할 나라로 떠날 것이 너는 너무나 분명하다. 정해진 것은 없다고 했지만 사람이란게 마음이 떠나고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것이 스멀스멀 조금씩 자리를 잡으면 언젠가는 하게 되어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제 너를 볼 수 있는 게 한 두번 밖에 남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또 만날 수야 있겠지만 그 시간만큼 또 변해있을 것이다. 너나 나나 모두가 말이다.

조금 더 일찍 만나서 네가 썸을 타던 남자가 없었다면 나는 너를 잡을 수 있었을까?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결정했을 때 힘들다고 얘기했을 때 내가 더 노력했다면 결과는 달랐을까?

오늘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떠나는 버스를 보면서
뛰어봤자 탈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뛰어갈까 생각을 했었다.
뛰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를 보면서 설렌다는 감정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다시 알게 해줘서 고맙다. 그러던 어느날 너를 지하철역까지 배웅해 줄때 모습이 또 사진처럼 찍혀서 머리에 남았다.
이제, 네가 내가 좋은 감정을 품은 사람이 멀리 떠나거나 다른 사람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그런 사건(?)에 마지막이길 바란다.

잘가고 잘 지내고 행복하고 가기전에 한번 니가 일을 넘겨서 약간의 짜증을 내기 시작한 인간이랑 같이 즐거운 시간 보낼 수 있었음 좋겠다. 고맙다. 내가 이제 뭘 해야하는지 알려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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