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너무 좋았다. 며칠 내내 집에만 있던 터라 답답하던 차였다.
어디를 나가볼까 생각해보는데 아이를 데리고 갈만한 곳이 그리 많지 않았다.
마침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거리에서 육아관련 박람회를 한다하여 구경도 할겸 외출하기로 했다.
사고 싶은게 참 많았지만 결국에는 아이 먹을 과자만 몇 봉 사서 나왔다.
점심시간 즈음이라 배가 고팠지만 몇천원 내 입으로 들어가는게 왜 그리 아까운지 주린배를 안고...
아이에게는 간식을 쥐어주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무슨 대학역에서 대학생들이 여러명 지하철에 탔다. 한 여학생이 입은 하얀 레이스 원피스가 눈에 들어왔다.
볼에는 분홍색으로 곱게 볼터치도 하고 있었다.
아..나에게도 저렇게 봄꽃같던 시절이 있었는데.
날이 따스해지면 괜시리 설레였고 봄에 어울리는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고르고
곱게곱게 화장을 하고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비춰보며 미소짓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하철 창에 비친 나의 모습은
잔뜩 빠졌던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해 잔머리가 삐죽삐죽 튀어나온 머리를 하나로 묶고
매일 똑같이 입는 지퍼달린 수유티에
혹여 아이 얼굴에, 손에 묻을까 로션만 겨우 바른 푸석한 얼굴
피곤함이 드러나는 다크서클
색색의 네일을 바르며 즐거워했던 내 손은 어느세 겨울 나뭇가지처럼 거칠게 변했고
멋스러운 핸드백 대신 아기용품이 가득 든 묵직한 백팩을 메고 있구나.
그런 내 모습이 초라다하고 생각하는건 아니다.
봄꽃보다 예쁜 아이가, 세상을 환히 밝혀주는 미소를 띄며
그 까맣고 깊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괜찮다.
다만
가끔은 마음 한구석이 아리고 씁쓸하다.
아이를 낳았으니 그걸로 된게 아니라
나도 나의 인생에서 멋지게 무언가 이루고 싶은데
나로써 뭔가 해내고 싶은데
아이를 낳고 많은 것이 일시정지 될거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완전히 '정지'로 바뀔까봐 두렵다.
아주 많이 두렵다.
나는 오늘도 많은 욕심을 꾹꾹 눌러삼킨다.
하고 싶은 공부도 읽고 싶은 책도
눈에 밟히는 화장품도 옷도 잠시 마음에 담아만 뒀다가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