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국에 보수를 표방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적어도 이런 국면에선 변화보다는 유지, 안정을 추구하는 보수라는 입장이 설 자리가 매우 줄어들것만 같았는데.. 그럼에도 그놈의 어찌됐든 보수, 보수는 결코 줄어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보수 스탠스를 취하는 당 수로만 보면 국민의당 포함 원내에 3개의 보수당이 있는 형국이구요.. 보수는 겉으로는 궁지에 내몰렸지만, 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우측에 있는 보수는 여전히.. 보수라는 가치를 표방하기엔 절망적인 수준이구요.
생각해보면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진보/보수라는 진영 논리에서 보수는 (적어도 국가주의가 강한 휴전중인 나라에선) 중도에 있는 다수가 자기를 표현하기 편안한 지점이라는 점, 그리고 스스로를 보수로 정의하게 만드는 다양한 프레임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국정농단사태가 드러나며 정치는 돌이켜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지만 국방, 외교, 언론들은 크게 변화하지 않고 기존 사업들, 기존 논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국방부의 싸드 도입은 오히려 가속된 느낌마저 듭니다. 왜냐면 그들은 설령 그 실체가 국정농단 시기의 부산물일지라도, 별도의 프레임상에 존재하고 있기 애문입니다.
여전히 북한은, 국방은 보수가 숨쉴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지점입니다. 2차 서해교전을 근처에서 경험했고, 전쟁이 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피부로 느껴본 저이지만, 싸드는 어쨌든 필요한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을 그 편안한 지점에서 끌어낼 방법이 없습니다. 자주국방에 한계가 있는 국가로서, 국방은 자기방어력과 외교적 실리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단순히 정치적으로 찬성/반대라는 입장으로 표현될 내용이 아니라고 해도 이미 던져진 프레임은 사람을 단단히 옭아맵니다. 정치인들의 과거와 현재, 정체성을 알아가는 어려움에 비해 너무나 명쾌한 판단과 주장의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그래도 북한이 제일 걱정된다"는 후배, 외교도 힘이(싸드가) 있어야 한다며 논의를 일축하는 친구를 보면서, 결국 선거는 선 긋기, 프레임 만들기 싸움이구나, 쉽고 방향성이 뚜렷한 프레임이 논의를 압도하는구나 하는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안철수의 지지율 상승은, 언론의 지원을 통해 새로운 프레임들이 기존의 논의를 해체해나가는 과정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될 논의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유력 대선후보가 없는 두 기존 보수당은 사실상 국민의당과 한집 살림을 하게 될 겁니다. 후보는 단일화하게 될 것이구요. 정당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적 주장의 집약체인데, 실제로 바른당이나 국민의 당이 하는 주장이 친박당과 그리 다르지도 않고, 그런 면에서 단일화가 당의 생명이나 밥그릇을 위태롭게 하지도 않을 겁니다. 저들 대부분은 학벌이나 사회적 위치가 만들어주는 엘리트주의가 정치적인 이견보다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구요. (전 노 전 대통령이 겪었던 저항감의 핵심은 정치적 마찰보다 그런 속물적 엘리트주의 때문이었다도 생각합니다. 그런 자기 방어적 속물 근성은 진보도 전혀 예외가 아닙니다)
술먹고 폰으로 쓰는 중이라 두서가 없습니다. 저는 우리가 어떤 프레임 앞에서도 결코 놓아서는 안될 논의는 국정농단이며, 이 국면에서 국민의당과 바른당은 새누리와 거의 같은 지점에 있다. 바른당은 새누리당 2중대에 불과하며, 국민의당은 결국 그들과 손을 잡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공론화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언처럼 말해도 좋겠지요. 쟤들 결국 합칠건데, 그래도 지지해줄 수 있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