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시장의 진정성에 관한 불신을 갖고 계시는 분들이나 그가 내건 공약에 관해 회의를 품고 계시는 분들
그리고 아직 이재명 시장을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글을 남깁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이재명 시장이 강연이나 토론회나 여타 방송에서 꼭 빠지지 않고 하는 말이 '약속'에 관한 것인데,
요약하면, 자신이 한 말은 반드시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대충 자신의 공약에 관한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그간 성남에서의 성과와 연계해서 얘기를 하는데
예를 들면 정책과 관련된 발언을 하거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기 앞서 다음과 같은 발언은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약속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 제 1차 경선 토론 모두 발언 중
"저는 언제나 말씀드렸던 것 처럼 저는 제가 말한 건 지켜야 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인데."
- 제 33회 한국여성대회 사회자 낙퇴관련 질문 중
"이재명은 할 수 없는 약속을 하진 않습니다. 이재명은 말한 것은 꼭 지킵니다."
- 일자리 정책 기자 회견 중
등등.. 수도 없이 많습니다. 거의 출연하는 각종 매체마다 등장하는 단골 멘트입니다.
물론, 추상적으로 지킬 수 있다는 식의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정책에 관련해서 소요되는 비용이나 재원마련 방안을 항상 같이 준비해서
자신의 공약에 대한 신뢰성을 되도록이면 최대한으로 담보하려고 노력하죠.
그러면 이재명 시장이 자신이 뱉은 말이나 약속에 대해 느끼는 무게감이랄까 그 책임의 경중이 어느정도일지 추측할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이재명 시장은 판검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됩니다.
이 부분을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것이고 아시는 분들이라고 해도 여기까지만 아시고 그 속사정은 모르시는 분들이 다수일 겁니다.
이재명 시장은 사업연수원을 마치고 판검사를 하지도 않고 유명 법무법인이나 로펌에 들어가지도 않고 바로 개업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도무지 이해가 안되죠? 인권변호사를 하더라도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잠깐이라도 판검사를 하고 나서 개업을 하더라도
충분히 가능한데 도대체 잠깐이라도 판검사 경력을 포기 하고 바로 개업을 한 것일까요?
<혹시 판검사할 성적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요?>
이재명 시장은 사볍연수원 18기입니다. 당시 18기로 들어간 인원은 297명이고 수료한 사람은 293명입니다.
수료한 사람 중 138명(판사 70명 + 검사 68명)이 판검사로 임용이 되었습니다. -사법연수원 자료-
이재명 시장은 본인이 113등에서 115등정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재명 시장의 연수원 동기들의 증언은?
본인과 동기들 말을 종합해보면 성적상으로는 판검사 임용이 충분히 가능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면 판검사가 도저히 적성에 맞질 않아서 였을까요?>
사실 판검사가 적성에 맞질 않아도 성적이 되면 1년이라도 일하고 나오는 것이 법조 인맥을 형성하거나 경력사항에
큰 이점이 되기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상식으로 통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판사로 잠깐 재직했습니다.
더욱이 이재명 시장은 연수원 시절 검사시보를 하면서 검사직에 아주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합니다.
"원래는 판검사를 하고 싶었다."
"판검사직을 포기하며서 울었다."
"검사가 체질에 맞는데 그걸 못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안동지검에서 시보를 마치고 나오는데 검사가 체질에 딱 맞다고 느꼈습니다."
- 펙트올 인터뷰 중 -
"안동에서 검찰 시보생활을 하면서 마약사범과 퇴폐사범을 단속했는데, 검사직에 많은 매력을 느꼈다."
- 성남시절 되기 전 한 블로그 -
정리하면 이재명 시장은 최소한 검사직에는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형편상의 이유로 집안의 무언의 압력이 있었을까?>
사실 이재명 시장은 대학선택의 기준이 장학금을 얼마나 주느냐였다.
따라서 당시 장학금 혜택이 가장 컸던 중앙대학교에 입학해 3년 동안 당시 직장인 한달 봉급에 달하는 20만원씩을 매달 받았고
이 돈으로 집안의 생활비나 형님의 등록금을 충당했다. 한마디로 예전 소를 팔아 공부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이재명 시장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집안에 부채의식이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고 형편상의 이유로 집안의 압박을 받을 이유가 없다.
더욱이, 오히려 어머니는 아들이 판검사가 되기를 바라고 계셨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왜? 검사직에 큰 매력을 느꼈고, 성적도 되었는데 도대체 왜?>
뱉은 말(빨간 줄)에 대한 책임감과 젊은 날의 객기(노란 줄)
<책 '이재명의 굽은 팔'>
<팩트올 인터뷰 중>
우선 뱉은 말은 되도록 주워담지 않으려는 개인의 성격에 기인만 측면이 크다고 봅니다.
판검사를 잠깐 하고 인권변호사를 해도 상관이 없을 텐데, 아마도 판검사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다닌 모양입니다.
노동변호사만 생각하다가 막상 점수가 나와보니 판검사 임용이 가능했던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웃을 수만은 없는 해프닝고 같죠. 보통 이정도 되면 주워담아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을텐데 말이죠.
그러면 얼마나 인권변호사를 외치고 다녔기에 저런 고민을 했을까요?
최원식 국회의원의 페이스북과 다른 기사내용을 보면 이러한 대목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요악하면, 이재명 시장은 사법연수원 시절 현 국민의당 문병호 최고위원이 제안해서 만들어진 노동법연구회의
초대맴버입니다. 한마디로 노동변호사의 길을 걷기로 동기들끼리 의기투합한 것이죠.
당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고 계셨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여기서 잠깐 스쳐갑니다.
노동변호사를 꿈꾸던 노동법학회 회원들이 당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고 계셨던 노무현 변호사를 초청해서 강연을
들었는데, 인권변호사로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생활도 바뀌게 되었다는 내용의 강연을 듣고 나서 노동변호사를
꿈꿨던 젊은 이재명 시장이 큰 영감을 얻었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죠.
이건 사족인데, 뉴스포차인지 어딘지 기억은 안나는데 이재명 시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회상하면서 얘기를 한 부분이 있습니다.
당시 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고 인권변호사도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구나란 생각을 하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보다 쉽게 선택할 수 있었다는 우스개 소리를 했었죠.
그밖에 그는 아프리카tv를 포함한 다양한 매체에서도 굳이 이재명 시장을 띄워주려고 왜 전관예우로 수십억씩 버는
판검사 경력을 마다하고 돈을 별로 받지 못하는 인권변호사가 되었냐느 물음에 이런식의 대답을 합니다.
"인권변호사가 돈을 못 볼 것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그것은 오해다. 열심히 하면 돈은 잘 번다."
"오히려 현직에 있을 때는 공무원이 돈을 더 못번다."
이때, 참 솔직하구나란 생각을 한 기억이 나네요.
다음으로 정의감에 불탄 절은시절의 밉지만은 않은 객기에서 기인한 측면이 있습니다.
청년 이재명 시장의 위와 같은 진심을 좀더 엿볼수 있는 그의 다른 일화가 있어서 잠깐 소개하자면,
신군부 정권에 이어서 노태우 정부가 출범했을 때 당시 새로운 사법부 구성에 관한 국민들의 열망이 있었습니다.
소장판사들의 성명서 파동 이후 당시 김용철 대법원장이 물러나고 노태우 정권은 5공대 전두환에 의해서 대법관으로
임명된 정승기 대법관을 후임으로 내정됩니다.
당시 사법연수원 2년차였던 이재명 시장이 속한 노동법학회가 주도해서 이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했고, 이재명과 몇몇 동기들이 총대를 맸죠.
초안을 이재명 시장이 작성을 하고 전국에 시보를 하고 있는 동기들에게 서명지를 돌리고 기자에게 공개하는 식의 운동을 합니다.
결과적으로 정기승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되지 못했지만 연수원에서는 이재명을 포함한 5명에게 서명사건을 주도한 책임을
물어 징계대상에 오릅니다만 신군부가 몰락하고 사법부 자체적으로 민주화 열의가 컸던 덕에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군부정권의 분위기가 많이 남아 있었더라면 징계를 면치 못했을 겁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판검사 경력을 마다하고 노동변호사를 선택한 그 결단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엄청난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여러분은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상상도 못할 것 같습니다.
이재명을 믿지 못하신다면 그가 젊은날에 한 이 선택을 한 번 믿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1. 그러면 젊은 날의 이재명 시장과 지금의 이재명 시장의 말은 과연 변했을까?>
1986년의 이재명
노력한만큼의 댓가는 꼭 돌아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생활신조로 삼고있다.
- 이재명 시장을 유심히 지켜보신 분이라면 이 문구를 보는 순간 뭔가 느끼신 게 있을 겁니다.
2017년의 이재명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생의 꿈이다."
"일하는 만큼의 몫이 보장되는 노동이 존중되는 나라 여러분이 만들어 주십시오.
제가 옆에 함께 가겠습니다!"
촛불집회나 강연이나 토론회에서나 그가 항상 하는 단골 멘트입니다.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갖게되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
<2.그러면 젊은 날의 이재명 시장과 지금의 이재명 시장의 행동은 과연 변했을까?>
이재명 시장이 해온 일들과 일관되게 주장한 것들을 여러분은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과연 위의 일화는 젊은날 한때의 객기에 불과한 것일까요?
우선 생각나는 것들만 나열해 보았습니다. 아직 진행중인 것들도 많죠.
지방재정 자립과 무상급식을 위해 박근혜 정권과 단식투쟁해서 싸워왔던 것
성남시에서 새누리당 시의회와 싸워서 다양한 복지정책을 실현한 점
청년수당을 지역화폐로 발행하여 대기업이 아닌 재래시장을 활성화한 점
전국 최초로 공공병원 설립을 위해서 시의회와 싸웠고 이제 곧 개원을 앞두고 있는 점(시민운동할 당시의 약속이었음)
메르스 사태가 터졌을 때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해 시민들의 불안을 해소했던 것
이승만 박정희 참배를 거부한 것
위안부와 관련 협상 당당하게 무효라고 선언했던 것
세월호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 것(유족과 함께)
광주민주화 운동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위한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유족과 함께)
부정선거 의혹을 분명히 제기하고 수개표를 당당하게 주장했던 것
한일군사보호협정에 명백히 반대했던 것
정치권에서 가장 먼저 하야와 탄핵을 외쳤던 점
헌재 앞에서 직접 탄핵 인용을 직접 압박했던 것
기본소득 개념을 제시해서 공론화 시킨점
재벌에 대한 수사와 이재용에 대한 구속을 당당하게 외친 것
재벌 부당이익 환수법을 외치면서 돈 먹고 형만 잠깐 살면 되는 현실을 규탄한 것
무죄의 입증책임을 기업에게 물리게 하는 리코법 제정을 약속한 점
사드 반대에 대한 확실한 반대 의견을 표명한 것
매 집회 때마다 재벌체제해체를 외치면서 공정사회를 외쳐온 점.
논란이 될 것을 알면서도 한상균 전 민주노총장을 노동부 장관에 앉히고 싶다고 한 점
공개적으로 윤석열 검사를 검찰총장에 내정해서 정부내 부패를 청산하고 싶다고 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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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되기 전 아고라 게시글들>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 그대로가 녹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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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종무식>
"의회든 시장이든 혹은 임명된 공무원이든 우리가 원래 존재하는 이유가 그 세금을 내는
시민들의 복리증진을 위해서 있는 것 아닙니까? 존재의 이유가 그런거죠. 그게 아니라면
할 필요가 없는 일이죠. 만약 그런걸 잊어버렸다면 그건 날강도입니다. 강도죠"
보시고 느끼시는 게 있으신가요?
이재명 시장은 말도 행동도 철학도 소신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 정의감에 취해 부리던 객기조차 어쩌면 변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다혈질적인 성격과 공격적인 말투 그리고 다소 과격한 발언도 그대로입니다.
특히 많은 분들이 지적하고 있는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조금 수단을 소홀히 하는 면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과 내미는 칼끝은 항상 옳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진정성은 말할 필요도 없죠.
이미 심하게 훼손되어버린 버린 법질서와 그간 쌓여온 70년의 적폐, 불평등의 해소를 위해 한 번 정도 이재명 시장에게 보다 큰 권한을
쥐어주는 것을 찬성하는 이유입니다. 이재명 시장은 정치적 생명을 걸고라도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줄 것은 확실하거든요.
이재명 시장이 오유에서 파렴치로 몰리는 것이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재명 시장은 끊임없이 투쟁하고 싸워왔던 사람이고
그의 발언이나 행동은 그 투쟁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뭐 사족이고, 무엇보다도 경선이 잘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