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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주의적 자유란? (자유주의적 자유와 비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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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지브릴리
추천 : 2
조회수 : 1335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7/03/21 01:12:40
'자유'라는 말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데, 다음과 같은 자유들을 열거할 수 있습니다.

1. 소극적 자유(=자유주의적 자유) : 간섭의 부재
2. 적극적 자유 :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는 것
3. 공화주의적 자유: 예속(隸屬)의 부재(사적인 형태의 주종적 지배의 부재)
4. 민주주의적 자유 : (나의 동의를 받은) 자율적인 법 아래에서 생활함(피지배자와 지배자가 일치하는 것)

이 글에서는 '자유주의적 자유'와 '공화주의적 자유' 둘을 비교해보겠습니다. 먼저 언급하자면, 저는 공화주의적 자유에 더 옹호적입니다. 그렇기에 중립적으로 둘을 비교하지는 못할 것이고, 딱히 그걸 원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저는 공화주의적 자유는, '자유'와 '애국'을 적이 아니라 친구로 묶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유'와 '평등'도 친구로 묶는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합니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앞서 말한 책인 <공화주의>의 영어판 독자들을 위한 소개의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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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공화주의 사상가들에게 있어서 '자유롭다'는 것은 '예속되지 않는 것'--타인의 자의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식으로 정치적 자유를 해석한 것은 '자유인'의 상태를 --타인의 자의에 종속된 노예와 달리--타인의 자의에 종속되지 않은 상태로 규정한 로마법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다. 개인이 법적 정치적 권리를 가질 때 자유롭게 되는 것처럼 한 국민이나 국가는 자신의 법 아래에서 살 수 있을 때에만 자유로운 것이다. 즉 한 국가나 그 국민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법을 왕으로부터 하사받는 경우 그들은 더 이상 자유민이 아니라 예속민에 불과하며,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도 없이 예속상태에 빠져 마치 주인 앞에서 굽신거리며 살아가는 노예와 다름없게 된다.
(중략)
또한 고전적 공화주의 사상가들은 공정한 법에 따라 개인적 선택에 제한을 두는 것은 다유에 대한 제한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자유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임을 강조했다. 그들은 일반시민들 뿐만 아니라 통치자들의 행동에도 동일하게 가해지는 법적 제한은 개인들을 억압하려는 시도에 대한 유일한 방패막이라고 믿었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로마사 논고>에서 이러한 신념을 강하게 나타냈는데, 그는 제1권 29장에서 법집행자들도 두려워하는 시민 또는 법을 제 맘대로 위반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시민이 한 명이라도 존재하게 되는 경우, 국가 전체는 이제 더 이상 자유로운 국가라고 부를 수 없게 된다고 기술했다. 국가는 오직 그 법률과 헌정질서가 귀족들의 오만과 민중의 방종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때만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루소는 복종(腹從)obedience과 예종(隸從)servitude의 차이를 명쾌하게 설명했는데, 그는 "자유로운 인민은 복종은 하지만 예종하지는 않으며, 지도자는 두지만 주인은 두지 않는다. 자유로운 인민은 오직 법에만 복종하며 타인에게 예종하도록 강제될 수 없는데, 이것은 법의 힘 때문이다"라고 기술했던 것이다. 루소에 따르면 자유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제한을 가하는 법에만 복종하는 것을 뜻한다. 거꾸로 말하자면, 자유가 상실된 상태란 특권이 존재하는 상태--즉 특정 개인이 다른 사람 모두에게 가해진 제한을 면제받을 수 있을 정도의 권력을 가진 상태--를 뜻한다. 루소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시민은 법을 원하며 이 법이 준수되기를 원한다. 모든 개인들은 법 준수에 예외가 인정되면 이 예외가 자신들에게 이롭게 작용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 모두는 예외를 인정하는 관행이 나타날까 두려워하는데, 이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으로서, 바로 이러한 두려움이야말로 그들이 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지배계급의 경우는 이와 사뭇 다르다. 이들의 사회적 조건은 특권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특권을 추구한다. 만약 이들이 법을 좋아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그것에 복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법관 노릇을 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Lettres ecrittes de la montagne, in Oeuvres completes(Paris : Gallimard, 1964), vol.3,889쪽-

여기서 우리는 정치적 자유에 대한 공화주의적 생각이 자유주의적 생각과 어떻게 다른지 보게 된다. 공화주의는 우리가 타인에 예속되지 않을 때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데 반해, 자유주의는 우리가 외부의 간섭에서 벗어날 때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간섭은 받지 않지만 여전히 예속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좋은 주인을 만나 제 맘대로 생활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주인을 어딘가에 두고 있는 노예의 경우가 그렇다. 반대로 예속되지 않고 독립되어 있지만 많은 간섭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정당한 법률에 복종해야 하고 수많은 시민적 의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자유시민의 경우가 그러하다. 고전적 공화주의자의 사상가들의 주장은 요컨대 예속이 간섭보다 자유에 대한 훨씬 고통스러운 침해라는 것이다.
(중략)
정치적 자유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그 모든 정신적 정서적 함의와 함께 자유주의적 생각(그 자유주의적 습속도 포함해서)보다 훨씬 더 공화국의 정치적 목표에 친화적이며, 더욱 이롭다. 그것은 다음의 예들이 보여주듯 예속에서 해방되는 동시에 법이 부과하는 의무와 간섭에서도 벗어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성을 남성의 사적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공화국은 남성이 누리는 선택의 자유를 법률을 통해 간섭해야 한다. 노동자를 고용주의 자의적 권력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공화국은 고용주가 누리는 선택의 자유를 법률로써 제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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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롤리가 말하는 '공화주의적 자유'는 시민이 다른 시민의 의지에 종속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즁요한 것은 '나쁜 시민의 지배로부터, 착한 시민을 구하자'라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화주의적 자유는, 노예의 주인이 착하냐 나쁘냐를 묻지 않습니다. 착한 주인을 만난 노예는 간섭 받지 않고 잘먹고 잘살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화주의적 자유가 혐오하는것은 주인이 있다는 것 그 자체입니다. 다소 극단적인 케이스지만, 법이 없다고 생각해봅시다. 그것을 자유로운 세계라고 할 수 있을까요? 힘이 약한 사람은 강도가 무서워서 밥거리를 돌아다니지 못합니다. 여성들 역시도 안전을 위하여 외출을 마음놓고 하지 못합니다. 결혼을 하고나면 남편이 폭력을 휘두를지도 모릅니다. 물론 꼭 그렇다는 법은 없습니다. 길거리에 강도가 돌아다니지 않을 수도 있고, 호색한이 돌아다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결혼을 하니까 착한 남편을 만나서 폭력 없이 알콩달콩 잘 살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닙니다. 시민들이 다른 시민의 '자의'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힘이 약한 사람은 강한 사람들의 의지에 예속되어 있고, 아내들은 남편들의 의지에 예속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공화주의가 말하는 '자유의 침해'입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게, 바로 공화주의적 자유의 핵심입니다. 그렇기에 공화주의는 법을 통해 간섭하자고 말합니다.(다만 그 통치는 사람이 아니라 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법을 통해 강도짓을 못하게 간섭해야 하고, 가정에서 폭력을 휘두르지 못하게 간섭해야 합니다.

앞서 말한 예시들이, 상식적인 선에서는 답이 뻔하기에 감흥이 잘 오지 않으신다면, 이번에는 미국 사회의 떡밥인 '총기 규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자유주의적 자유는 총기 소지를 옹호합니다. 시민에게는 무장할 권리가 있으며, 무장할 권리의 박탈은 혐오스러운 간섭이라는 것이 그 논지입니다. 하지만 공화주의는 반대의 결론을 내립니다. 총을 가지고 있는 시민의 '자의'에 다른 시민이 예속되어 있습니다. 물론 총기 소유자라고 해서 나쁘다고 할 순 없고, 상식을 가진 선량한 시민들이 많습니다. 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무슨 서부영화마냥 행동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다른 시민들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나옵니다. 공화주의적 자유는 총기 소유자가 착하냐 나쁘냐를 묻지 않습니다. 총기 소유자의 자의에 다른 시민들이 예속되어 있다는것 자체가 치명적입니다. 그렇기에 총기를 규제하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기부'와 '복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두가지의 극단적인 사례를 가정해봅시다.

1. 복지를 위해 갑부에게서 100의 세금을 강제로 뜯는 사회. 기부는 없음. 가난한 자들은 도움 없이 스스로 생존하거나 재기하는게 불가능함.
2. 갑부에게서 돈을 강제로 뜯지는 않지만, 갑부가 100을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사회. 가난한 자들은 도움 없이 스스로 생존하거나 재기하는게 불가능함.

자유주의적 자유는 2번 사회를 더 좋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이는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이 서유럽의 복지 시스템을 공격하는 논리이기도 하며, 적어도 도덕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2번 사회의 부자들이 훨씬 고결하고 선합니다. 하지만 공화주의적 자유는 다르게 말합니다. 개인들의 선함과는 별개로, 1번이 훨씬 좋은 사회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2번 사회는 빈자들의 생존이 부자들의 의지에 예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공화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노예의 상태입니다. 착한 부자라고 할지라도, 언제 마음이 바뀌어서 기부를 줄일지 모릅니다. 마치 '착한 주인'이라도 언제 마음이 돌변하여 노예를 학대할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공화주의는 착한 주인을 모시냐 나쁜 주인을 모시냐를 묻지 않습니다. 주인이 있다는 것 자체가 자유의 침해입니다.

그렇기에 자유주의와는 달리, 공화주의적 자유는 평등과 대립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평등의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녀석이죠. 물론 이 자유는 '경제적 평등'과는 다른 개념이며, 실제 지향하는 바도 경제적 평등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와 평등이 대립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분명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개념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공화주의적 자유는 '자유'와 '국가'를 대립하는 관계로 설정하지도 않습니다. 자연 속에 있는 인간은, 공화주의적 관점에서는 절대로 자유로운 인간이 아닙니다.(오해를 막기 위해 말하자면, 공화주의는 '간섭'을 사소한 것으로 취급하거나 괜찮다고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간섭'과 '예속'이 충돌할 때 예속을 더 아파하는게 공화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다 쓰고 보니까 '공화주의 짱짱'이라는 심히 편향적인 뉘앙스의 글이 되었네요. 다만 저는 처음에서도 강조했지만, 공화주의적 자유가 '평등'과 '국가'라는 개념과 친하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합니다. 자유주의적 자유는 전체주의로부터 개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점에서 분명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자유를 위해서 시민들이 총기를 소유하게 되는 (적어도 저 개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부당한 결론이 도출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당한 결론에 브레이크를 걸고, '시민이 다른 시민의 의지에 예속되지 않을 권리'를 옹호한다는 점에서 공화주의적 자유는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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