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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농촌새마을지도자분의 새마을운동
게시물ID : history_132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쇠소깍
추천 : 7
조회수 : 1973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12/28 12:17:00
1971년, 당시 농촌새마을지도자였던 나는 오늘 박 대통령이 순천에서 열린 2013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 
석하여 축사를 통해 언급한 제2의 새마을운동으로의 확산을 주장하는 것을 보고, 그냥 웃었다.
 
"앞으로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 새마을운동의 정신을 살려서 국민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계기를 다시 마련해야 한다.,,,"
 
대통령은 이어서,
" 미래지향적 시민의식 개혁운동으로 밯전시키고, 범국민운동으로 승화시켜 나갈 것을 기대한다."
" 새마을운동은 우리 현대사를 바꾸어 놓은 정신혁명이었고, 그 국민운동은 우리 국민의 의식을 변화시키며
  나라를 새롭게 일으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 제2의 새마을운동은 세 가지 방향으로 새롭게 나아갔으면 한다. '나눔' '봉사' '배려'의 세 가지 덕목을 더
  해 국민통합을 이끄는 공동체 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 도시와 농촌,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해소하고, 세대, 지역, 계층간의 갈등의 골을 매꿔 나가는 것이 제
  2의 새마을운동의 중요한 과제....."
" 새마을운동은 국민의 창의력을 이끌어내는 창조운동, 문화의 역량을 키워내는 문화운동이 되어야 한다."
" 도시와 농촌의 풀뿌리 문화운동, 지역의 특성에 맞는 현장 중심의 창조경제를 실천하는 의식개혁 운동
   새마을운동을 통해 구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앞으로 정부는 지구촌 새마을운동을 국제협력 프로그램의 중요사업으로 추진해 나갈 것."
" 새마을지도자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끌어 온 주역.....국민들과 더 넓게 소통하면서 새마을운동을
  다시 한 번 범국민운동으로 승화시켜 국민들이 다시 한마음으로 행복한 대한민국을 일으킬수 있도록 해 주
  시기 바란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가꾸기운동' 이라 해도 좋을 것..."이라며 맨 처음 새마을운동을 도입하던
그때 그 시절의 분위기를 살리는 말을 다 골라서 했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새마을운동은 말로만 해서 될 일은 절대 아니다.
이 운동을 이끌어 나가는 새마을지도자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추진력 그리고 국가의 아낌없는 지대한 관심 없
이는 절대 불가능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새마을지도자들이 자기 탐욕을 앞세우는 분위기에서는 새마을운동이 아니라는 얘기도 된다.
 
박 대통령의 말대로 '제2의 새마을운동'을 하겠다 ?  그럼 '제1의 새마을운동'을 살펴보아야
  국민들 설득이 가능할 것 아닌가 ?
      
 
 
               
       [1971년 정부에서 일괄적으로 자연부락에 무상지원했던 시멘트 335포대 값을 다하기 위해서는, 삽, 곡괭이,
        낫, 지게, 순수레 그리고 농민의 육체적 힘이 새마을가꾸기사업의 다였던 그때 그 시절,
        농한기를 이용, 농촌마을가꾸기 사업을 추진해야만 했던 남녀 농촌새마을지도자에게는, 땡전 한 푼 정부로
        부터의 지원없이 오직 하나, 내 힘로 내가 사는 마을을 가난에서 몰아내고 말 것이라는 사명감 하나 때문에,
        내 지식, 지혜, 재산, 시간 등 모두를 내 놓아가며 새마을운동에 앞장을 섰었다.]
 
1970년 4월 22일, 전국 수재민 복구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지방장관회의가 열렸고, 이 회의를 주재하던 박정희
대통령이 엉뚱한 발언 하나를 쏟아냈다.
그 배경에는 5.16군사쿠데타가 성공한 쿠데타가 되었고, 정치가 안정되면 군으로 전원 복귀하겠다던 당초의
대국민 약속을 뒤집어야 할 판국이었으며,
내가 아니면 5천년의 가난을 몰아낼 사람이 그 누구도 없다고 착각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독선과 기고만장한
오만이,
윤보선, 김영삼, 김대중, 이철숭 등의 야당 지도자들이, 본격적으로 정치활동 금지조치에서 풀려나면서 국민들
여론과 함께 강력한 박정희 반대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에 불안을 느낀 나머지,
3을 위한 헌법개정유신헌법 기초작업을 끝내고, 이제 해야 할 일은 반대세력들을 잠재우기 위한 국면
특단의 조치 있어야 된다고 판단,
" 농민들의 근면, 자조, 자립정신을 바탕으로 수해복구와 농촌재건운동에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 농촌마을 가
  꾸기사업을 추진해 보도록 하라. 이를 '새마을가꾸기사업'이라 하는 것도 괜찮겠다....." 했다.
그리고 나서 1971년, 내무부와 청와대에 '새마을담당관제'를 신설하고, 수원에 새마을지도자연수원을 개원,
전국의 자연부락 33,267마을에 남녀 새마을지도자를 임명하고, 장차관, 군장성, 국회의원, 시도지사, 기업체
사장등을 총 망한 새마을교육을 집중적으로 실시, 농촌새마을 우수 성공사례 발표와 분임토의까지 시키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우상화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나섰다. 
  
                      
 
그때 당시 새마을교육을 받은 새마을지도자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주창한 '새마을운동' 이 조국근대화와 경제
부흥 그리고 이 나라 이 민족이 잘 사는 길이라 믿고, 새마을성공사례를 들으며,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새마을 노래' '잘 살아보세' 라는 노래가 이를 반영하는 징표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 하나가 나왔다.
"새마을운동은 유신이념의 실천도장" 이었다.
그러니까 박정희 대통령이 주창했던 새마을운동은 결국 유신이념 실천을 위한 전초전이었고,
정치적 꼼수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새마을운동이 성공을 거둔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카리스마와 중앙집권적 강제에 의해서만 가능했다.
   정치적 목적이 충족되면서, 새마을운동은 민간주도형으로 전환했고, 새마을운동이 전경환 새마을
   운본부장의 손에 넘어가면서 비리가 본격화 하기에 이르렀고, 새마을지도자들도 대가성을 바라는 
   이상한 새마을정신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해마다 열리는 새마을지도자대회는 누가 뭐라해도 예전의 새마을지도자대회와는 그 성격부터가
   달라졌고, 새마을운동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위세를 떨치기 위한 목적이 더 강해 보였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은 전국 33,267개의 자연부락에 시멘트 335포대씩을 무상지원하면서, 동네 숙원사업을 부락
적으로 추진하라 했다. 그리고는 1년후 전국 전체 농어촌 부락을 대상으로 새마을가꾸기 사업에 대한 평
가를 실시했다.
평가결과 시멘트 335포대와 농민들의 노동제공, 자체적 기금조성 등으로 비용까지 부담하면서 부락 숙원사업
물론 공동체형성을 위한 가시적 성과를 거양한 부락이 있었는가 하면,
시멘트 335포대의 사용처를 놓고 이전투구의 모습을 보였거나 실적을 평가하기 조차 민망한 농어촌가꾸기에
쳐버린 부락까지 있어, 평가결과는 두 가지 행태로 나눌 수가 있었다.
이에 농어촌 부락 33,267개 마을 중 50%에 해당하는 우수 부락 16,600개 마을에, 시멘트 500포대와 철1
톤씩을 무상으로 재 지원하고, 부락 공동체 형성을 위한 부락 숙원사업을 추진하도록 조치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자금이 필요한 부락을 선정, 농어촌 소득증대사업의 일환으로 현금 500만원을 별도로 지원
까지 해 주었다.
지게나 겨우 지고 다닐 수 있었던 마을 안 길이 손수레가 지나다닐 수 있도록 넓혀졌고, 초가 지붕대신 스레트
기와, 함석지붕으로 개량됐다.
마을마다 마을공동회관이 지어졌고, 어느 마을은 새마을구판장새마을금고가 자생적으로 문을 열기도 했
다.
 
               
                   [어느 특정지역을 가다 보면 새마을기가 무슨 조경용으로 게양이라도 된듯 보이는 곳도 있다]
 
근면, 자조정신의 발로는 충분했다고 판단한 박정희 대통령은 2단계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농어촌 '소득증
사업'으로 방향전환을 꾀했고, 이는 바로 돈이 직결된 사업으로의 전환이었다.
소득증대사업 성공사례를 좇아 벤치마킹이 이루어졌지만, 동네마다의 특성이 달라, 정부가 원하는 것만큼의
성과거양이 어려워지면서, 이제는 정부가 주도하기에는 재원확보를 포함, 부담이 점점 커져만 갔다.
 
유신정권 수립도 끝났고, 이제는 새마을운동도 마을 자체적으로 추진하도록 정부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도시와 공장으로의 확산을 꾀하는 쪽에 오히려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공장새마을운동협의회, 민간단체새마을운동협의회, 새마을지도자협의회, 도시새마을운동햡의회, 새마을금고
연합회, 새마을문고연합등 새마을관련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지금 생각해 보면 박 대통령 말대로
'창조경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크게기여 했음은 물론, 정치인으로 출세하기 위한 지름길을 만들어 주었는지
도 모르겠다.
70년대 초반, 내 것을 공 것으로 투자하며 마을을 위해 헌신했던 새마을지도자들은 어디다 내 놓아도 떳떳해,
새마을지도자 간담회에 참석해도 올곧은 일이면 할 말을 다할 수 있었고, 박정희 대통령도 새마을지도자들의 건
의를 지방장관들의 건의보다 우선하여 들어 줄 정도였는데, 지금 새마을지도자들의 위치는 어디쯤 일까 ?
 
박 대통령이 제안한 것처럼,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2의 새마을운동이 필요한 것일까 ?
   '나눔' '봉사' '배려' 3운동을 꼭 제2의 새마을운동에 결부시켜야만 하는 이유가 많이 궁금해 진다.
 
지금 우리나라의 정서는 국정원, 국가보훈처, 군 사이버사령부, 경찰, 검찰, 보수언론 등의 불법 대선개입 정황
을 놓고 시끄럽다.
5.16군사쿠데타가 성공한 쿠데타가 되면서, 정치군인들이 국내 정세가 안정되어 정치활동 제한조치까지 풀어
주었으면서도, 그들의 당초 '대국민 약속' 이었던 본연의 임무였던 군으로의 복귀를 파기했을 때,
국내정세가 시끄러워지고 있었던 그때의 그 정황과 비슷하다.
이때 나온 것이 '새마을운동'을 통한 새마을지도자 중심의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정권 지지세력확보였는데,
박 대통령이 다시 '제2의 새마을운동'을 역설한 것이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을 닮아도 너무 철저하게 닮아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다 행여, 전국 새마을지도자들까지 박 대통령의 무조건 지지세력으로 확보하기 위해, 괸치 새마을운동
로 변질시킬지도 모를 일이다.
정치적 꼼수를 숨기는 것이 어쩌면 그리 똑 같을까 ?
 
                
                      [2011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가 울산에서 개최된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 외국인
                       지도자들까지 참석하여 게앙된 국가들의 旗만 보아도 국제 새마을지도자대회 면모
                       를 갖추었다.]
 
새마을운동의 국제화 이미 오래 전의 얘기이고, 이제는 새마을지도대회에 외국 새마을지도자들까지 참석
하는 국제 새마을지도자대회 발전되어 있는데도,
구태어 이번 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지구촌 새마을운동을 국제협력 프로그램의 중요사업으로 추진해 나갈 것
이라 강조한 이유는 또 뭘까 ?
'창조경제'에 이어 '새마을운동'까지 국제사회에서 자기 인기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채택하려 하는 것
아닌가 ?
이제 그만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국민들을 속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출처 : http://blog.daum.net/tnstntjd7/8885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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