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요즘 이슈가 되고있는 사안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끊임없는 토론이 필요하다고 글을 썼습니다.
여러 의견들이 다양하게 게시되었습니다.
양상도 조금씩 변하면서 용기있는 (여성)분들의 발언도 쏟아졌습니다.
그분들 글의 말미에 왕왕 "어떻게 (남성)여러분들의 힘을 덜어드리고 양성평등의 발전을 위해 같이 방법을 모색해야 할까요?"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지금이야 아재지만 예전 20대 꽃다운 대학생 시절 거의 마지막 세대 라고 할수 있는 운동권이었습니다.
수많은 학내 학외연대 집회에서 가장 두려웠던건 1001도, 1002도 아닌 무관심과 잊혀짐이었습니다.
나는 분명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데 지가나는 사람들은, 고개 돌린 사람들은 왜 날 외면하고 그들의 기억에서 잊혀질까..
그 당시에는 그런 그들과 나 자신에게 분노하고 절망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제가 외친 수 많은 구호가 비록 정당하고 정의로운 것이지만 그들의 오늘 저녁엔 뭐 먹을까? 이것이 더 그들에겐
중요하고 절실한 어젠다 였으니까요
개개인의 차이에 의해 이슈를 보는 관심도는 다를수 밖에 없습니다.
여성이라, 예비역이라, 면제라... 예, 개인이 가지는 관심의 총량에서 이슈가 가진 부분이 적은 비율이 되어버린걸 이해합니다.
하지만 위의 여러분들이 잊지 않고 관심을 가져주실때 이 이슈의 생명력은 지속될것입니다.
모두가 기억하는 아파하고 분노하는 세월호 참사.
하지만 저는 인정합니다. 3년전 그날의 분노보다 2년전, 1년전, 그리고 오늘날의 분노가 처음 그때의 분노보다 점점 작아지는것을요.
저는 두렵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삼풍백화점 참사, 성수대교 참사, 대구지하철 참사 처럼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로 언젠가는 희석될거란걸 알기때문에요.
가족이, 가까운 지인이 희생된 사람이 아닌 이상 큰 참사가 벌어져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본인이 속한 사회 구성원 중 극히 일부가 희생된
사건으로 기억은 받아들이는게 인간이란걸 알기 때문입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이제 현실적인 방법을 모색해봅시다.
지금은 그 어떤 이슈도 '대선'이라는 당면한 이슈를 뛰어넘을수 없습니다.
사회적 공론화를 시킬려면 대선 이후 직업정치인들의 힘을 빌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승리한 방법을 복기 해야 합니다.
1. 용기있는 직업 정치인을 찾아야 합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이 이슈에 대해 말하길 꺼려할겁니다. 아차하는 순간 엄청난 수의 유권자를 적으로 돌릴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본인의 낮은 인지도를 이슈의 중심에 서므로 인해 높이고자 하는 이도 있을거고 진정 용기있는 이도 있을겁니다.
본인의 정치인생에서 이 이슈는 일순위가 아니다 라고 생각할 정치인들도 많겠지만 인구절벽으로 인해 2~30년 뒤에는
인도적 차원이 아닌 병역의무 후 국적취득을 미끼로 난민 등 많은 수의 국외자들을 원치 않는 상황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질수도 있습니다.
2. 장외 리더들을 찾아야 합니다.
성재기 같은 사람들을 말하는것은 아닙니다. 호히려 이 이슈가 수면위로 올라왔을때 왜곡된 주장을 늘어놓으며 대중의 분노에 편승할려는
페미나치, 일베와 같은 성격의 개인과 집단은 스스로 경계해야 합니다. 페미나치의 주요 전략인 상대 젠더에 대한 일방적 적화, 일베의 상대에 대한
희롱과 모욕 그리고 테러 등 아주 쉽게 우리가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될수 있습니다. 스스로 경계하고 다잡아야 합니다.
유작가님 김총수님 같은 상호 토론을 이끌어낼수 있고 이슈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관심거리를 제공할수 있는 개인 혹은 집단에 관심과
응원을 보내줘야 합니다. 그러면서 올바른 양성평등이란 무엇인가, 국민이 시민으로 발전하기 위한 역활은 무엇인가 등
우리 스스로의 이슈에 대한 의식수준도 높이고 넓혀야 합니다. 그간 유작가님과 김제동님 같은 장외 리더들이 막연하기만 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상기시켜주고 의식의 발전에 도움을 준것처럼요.
3. 선봉에 선 자들에 대한 지지
특정 이슈가 심해에서 수면위로 오르고 쟁점화가 되면 용기있게 공개석상에서 대중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파급력있는 사람들이 생길겁니다.
그들에겐 필수적으로 좌표공격, 인격모독, 저격질, 신상털기등이 뒤따를겁니다.
예전 암흑기에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열사들이 공권력에 의해 신체적 사망선고를 받았다면
이 이슈에 대해서 선봉에 선사람들은 넷상에서 정신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을수도 있습니다.
이 공격의 주체는 말씀 안드려도 누가 될것인지는 상식적인 선에서 다들 짐작하실것이고 이 공격은 어느정도 '보편적 피해자들의 공격'으로
정당화되는 측면도 있을겁니다. 그때 필요한것이 '나서지 못한 비겁한 나지만 당신의 발언에 공감하고 지지합니다.' 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4. 법
많은 사람들이 이번 헌법재판소에 대해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형사재판이 아닌 정치적 판단을 하는 곳이라는것을 알았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 내리는 결론은 형사재판과 달리 1년 전 혹은 1년 뒤의 달라진 사회에서는 다른 판결이 나올수 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시민은 법을 지켜야되지만 법을 만들고 고칠수 있는것도 시민입니다. 주권자로서 변화를 요구할 권리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있습니다.
결론.
어찌보면 간단합니다.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주시는 겁니다. 거창한것 없습니다.
소극적 관심도 적극적 참여 만큼 모두 다 중요합니다.
무대위의 연사, 거리의 촛불들, 티비 앞의 동지, 일터에서 마음만으로 보낸 응원 모두가 주역이고 참여자였습니다.
이 이슈가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발아할수 있는 적절한 시기에 수면위로 올라갈수 있게,
공감가는 글에 추천을, 유투브의 용기있는 발언자에게는 구독을, 페이스북의 공통된 의견을 가진 친구에게는 좋아요를.
용기있는 정치인과 의식있는 장외 리더에게는 후원과 지지를.
긴 암흑기를 거치면서 얻은 2017년의 아름다운 봄을 만들기 위해 각자가 일상에서 소극적 관심과 적극적 참여를 행해왔듯이
이 이슈의 대해서도 찰나의 시간이지만 개인에겐 더 없이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서 각자의 관심의 척도에 맞게 눈길을 계속 보내주시면 됩니다.
우리는 관심과 참여만 있다면 무엇이든 이루고 바꿀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은 여러분들이 만든것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