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페미니스트 자체가 여성 사이에서 얼마나 소위 '선민'으로 활동하는가를 저의 짧은 경험으로 묘사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 글이 페미니스트가 우리 사회의 영속에 무슨 영향을 끼치는가를 판단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대학교 재학 당시 충북에서 야학교사로 활동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선배 야학교사와 그 친구 몇몇이 페미니스트였는데, 3개월 정도 같이 일해본 결과, 이 사람들의 신념이 내로남불이라는 점에서 지극히 타협이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령 동료 교사들과 술을 같이 먹을 때, 자기들은 무지 쿨해서, 소위 권위주의를 배척하므로 다른 사람들을 연륜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개방적으로 대해도 된다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기에는 편한 감정이지요, 실제로 그들은 연령이 어리거나 성관념이 이미 굳어진 연로한 사람들에게는 관대함을 보입니다.
그런데 막상 본인과 연령이 엇비슷하거나 중장년층 남성이 본인들에게 동지애나 편한 감정을 가지고 쿨하게 행동하는 것은 성평등에 위배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들의 성별은 약자이므로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념에 위배되는 것을 공격하는 것에는 서슴이 없습니다.
실제로 야학 교사들끼리 술자리에서 농담을 주고받을 때, 높은 지위에 있다고 판단되는 남성을 장난으로든 훈계로든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보고 , 저는 페미들이 사회의 진보보다는 계급이익에 더 관심이 많다고 보았습니다.
당시 페미임을 자처한 야학 교사들은 성차별적 발언을 규정하여 젠더감수성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거나, 이게 통하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있었던 신변잡기를 들춰내어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식으로 담론을 쓰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이게 먹힌 결과, 결국 제가 운영까지 손을 댔던 야학은 본인을 포함하여 연이은 교사들의 탈퇴로 박살이 났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야학을 하던 사람들이 젠더감수성이라는 명목의 가해자 당성시험 을 치르는 것에 분노와 자괴감을 느끼고 탈퇴했기 때문입니다.
일이 터지자 당장 수업을 메꿀 교사들이 사라졌고, 페미를 자처한 교사들은 이에 책임지지 않고 , 남아있는 다른 교사들에게 남은 수업을 떠밀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제가 생각했을 때, 페미들은 책임없이 쿨해지는 것을 공동체의 신념이나 정당한 탈권위로 여깁니다. 당장 2007년 경희대 총여학생회 사건만 보더라도, 그것이 낭설이 아니라는 점은 익히 근거를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페미들은 일관되게 합리적 비판자라는 위치에 집착합니다. 개방성을 입증하면서도 그에 대한 비난은 모면하고 싶은 심산에서 채택한 전략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그런 종류의 쿨함은 사회적 책임과는 또 다른 것이지만, 그들은 자신이 사회적 약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책임질 것도 적다고 생각하는 면모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중에 그것이 문제가 되든 말든 죄책감이나 주저함을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이 사회 도처에 골칫거리로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 유명한 사례가 지금 논의되는, 병역 의무가 남성 본연 기득권에 대한 책임이라고 페미들이 직접적으로 생각한다는 점, 그리고 모든 것에 불편함으로 시비를 거는 점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페미들은 양성평등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여성인권의 공격적 신장으로 남녀 간 산술적 평등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 대상은 단일화된 객체의 남성이며, 남성 자체를 특성이나 계층이 아닌, 신분이나 계급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얼핏 보았을 때는 페미니스트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한껏 뽐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득권을 규정하고, 그것을 헐어내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오롯이 진보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평등을 위해서도 타협을 기할 필요가 있는데, 이들은 사회적 약자를 무기 삼아 크든 작든 공동체 내에서 바라는 바를 위해 떼를 무지 쓴다는 겁니다. 이러한 종류의 신념도 사회의 진보에 동력으로 쓰이긴 합니다만, 솔직히 저는 탐탁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