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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9월 서울지방경찰청은 강력계 산하에 여자형사기동대를 창설, 여형사 21명을 뽑았다. 경찰 역사상 최초의 강력계 여형사들이었다. 당시 23세, 4년 차 순경이었던 박미옥은 그중 막내였다. 부녀자 납치와 강도·강간, 인신매매 등 여성 대상 범죄가 들끓던 시절이라 경찰 내에선 여자 형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때맞춰 창설된 여자형사기동대는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보통 고달픈 게 아니었다.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씩 떠났다. 후배들이 속속 충원됐지만 역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는 사이 박미옥은 강력계 형사 생활 25년을 맞았다.
박미옥(47·서울 강서경찰서 강력계장) 경감은 여경(女警) 사이에서 전설이다. 여경이 강력계에서 경감이 되고 일선 경찰서 강력계장을 맡은 건 그가 처음이고, 현재까지 유일하다. 172㎝ 키에 짧은 머리, 바지에 단화 차림, 말투엔 경북 영덕 출신의 투박한 사투리가 묻어났다. 지난달 11일 강서경찰서에 가서 마주 앉았을 때, 박 경감은 기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형사가 누군가를 볼 때의 딱 그 눈빛이었다.
―강력계 형사라면 체력 좋고 싸움 잘하는 건 기본일 것 같은데 어떤가.
"형사의 체력을 말할 땐 육체적 힘이 전부가 아니다. 진짜 체력은 '이골'이다. 우리는 밤 12시에 퇴근했다가도 새벽 2시에 나오라면 뛰어나와야 한다. 큰 사건 터지면 그 상태로 하루 이틀, 때론 한 달 두 달도 간다. 그런 식으로 잠 못 자는 생활이 계속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 1초 실수에 범인을 놓칠 수도 있는 법이다. 그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형사는 그 팽팽한 긴장감을, 언제 끝날지 모를 그날까지 유지해야 한다. 이 모든 게 몸에 푹 배어 있어야 한다. 이골이 나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다는 건 그런 뜻이다. 그게 진짜 형사의 힘이다."
―범인과 몸으로 싸워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어디선가 나도 모르게 힘이 나온다. 질 수 없다. 형사니까. 반드시 잡아야 하니까. 때론 깨물리기도 하고 흉기로 위협도 당하고 부상을 입지만 놓치지 않는다. 아니 놓쳐지지가 않는다."
―원래 형사 되기 전부터 힘 좋고 운동 잘했나.
"원래부터라는 게 어디 있겠나. 부족한 건 배우고 보완해야 한다. 힘과 지구력을 키우기 위해 마라톤을 뛰고 수영도 했다. 주먹이 날아오는 걸 피하려면 빠른 눈이 필요해 복싱도 했다. 단순 근육을 키우는 게 아니라 진짜 힘 쓰는 근육을 키웠다. 70㎏ 넘는 남자 형사를 어깨로 업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건 열 번 이상 거뜬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