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걸 내팽겨치고... 일년전 그 기억에 사로잡혀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 3월 14일의 하루는. 여전히 그대로. 그날의 온도. 그날의 분위기조차 그곳에 그대로 남아있다. 달랐던건. 내 옆에서 참새처럼 재잘거리던 네가 없었고. 같이 왼발 오른발 발걸음을 맞추던 네가 없었고. 봄날씨임에도 쌀쌀했던 추위를 보듬어주던 너의 손길이 없었고. 나를 배웅해주던. 너의 촉촉한 눈망울이 없었을 뿐.
너를 만나러가는 버스. 설레임 반. 두려움 반. 네가 소개해준 분위기 좋은. 아름다운 달. 그 레스토랑. 너와 사진 찍었던 곳에서 나 홀로 어색하게 찍은 증명사진. 너의 집 근처 카페. 네가 올거라고 생각했는지. 나는 얼굴한번 다시 보고 머리 매무새를 정리했다. 수다스러운 아줌마들의 대화가 끝나고. 네가 보면 여자가 귀여운척 너무 한다는 쓴웃음을 지을것만같은 한 커플도 떠나고. 다시 난 홀로. 사실 네가 안올거라고 생각했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그치만. 네가 왔으면. 와주었으면 했다. 너에게 음성메세지를 남기는 나의 목소리가 어색하고 자신감이 없어 지우고 다시 남기고 십수번.. 네가 오늘만큼은. 나와 마주했으면... 했다.
헤어진 이야기... 왜 그랬느냐. 그런 시시콜콜한 대화말고. 그 동안 어떻게 지냈어? 잘 지냈어? 서로 사는 이야기 나누고 싶었고. 그 시간동안 같이 있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그저 널 보고 싶었고. 홀로 유학생활하는 너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너를 기다리는 그 짧디 짧았던. 다섯시간동안. 난 홀로. 네 집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너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우리가 사랑한 5년간의 시간에 비하면. 정말 짧은 시간이지만. 너와 나의 이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적당했던 그 짧은 시간.
너와의 추억이 담긴 엽서에 우리의 사랑에 이별을 고한다. 아니, 이미 끝나버린 사랑. 나만이 붙잡고 있던 그 사랑의 종말을 인정해야만 한다. 한 뼘 남짓의 작은 엽서에는 하고싶은말이 너무도 많아. 내 진심이 올곧이 쓰여지지 않는다. 결국 멋지게도. 너를 붙잡을 수 있을만한 명문장도 쓰지 못했다. 이별 후 연습했던 담담한 말조차 쓰지 못했고. 난 다시 너와 사귀었던 스물 세살의 내가 되어 시시콜콜한 말들을 썼을 뿐.
나를 바라보고 있는 라넌큘러스 한 다발. 너는 그녀를 볼 수 있을까. 과연 내가 남긴 마지막 선물을 찾으러 와줄까. 그렇다면. 너는 좋겠다. 내가 주었던 꽃들 처럼. 너는 그녀의 방안에 자리하겠지.
너를 잊겠다며. 그렇게 너에게 간 짧은 여행인데도. 왜 나는 이 시간까지 너를 생각하며 긴긴 밤을 지새우는 것일까. 네가 나를 생각할까. 너도 나 만큼 아플까. 너는 날 정말 잊은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