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민방위인데도 아직도 군대 관련 악몽을 종종 꿉니다. 전쟁이 났는데 현역시절 그대로인 꿈, 재입대했는데 전쟁, 이런 꿈들요. 힘들어하면 꿈이야기를 들어보는데 리얼하게도 꾸더라구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군대라는 곳이 끔찍하게 느껴지더군요.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항상 든든하고 강한 멘탈을 가진 남편이 저럴까 싶구요.
원래 남편과 저는 연애 때부터 결혼한 지금까지도 종종 군대이야기를 하는 편입니다(왜 가야하는가부터 월급, 처우, 갈굼? 문화? 등등 사소한 것까지) 그런데 여럿 있는 자리에서 저랑 남편이 군대 이야기를 하면 남자들도, 여자들도 저희 둘다를 이상하게 봅니다. 남자들은 왜 여친(결혼 전)에게 군대이야기를 하냐며 찌질해보인다는 둥 여자들에게 그런이야기하면 차인다는 둥 저보고는 지루하지 않냐며 눈치를 대신 봐주고요. 여자들은 지루해하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으니 다른 이야기하자며 주제를 돌리려고 합니다. 저는 이 사람들의 태도가 여자들이 남자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스크롤이 조금 기네요. 글재주가 없어서 횡설수설하더라도 찰떡같이 봐주시기를 ㅜㅜ
많은 분들이 말씀하셨듯이 저도 군대에 대해 아주 조금의 관심조차 없이 살아왔어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요. 그나마 중학교 때에는 선생님중에 군대이야기를 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보통 남자아이들을 향해 말씀하셨죠. '니네 나중에 군대가면 어쩌구 저쩌구~ 남자애들 똑바로 들어~' 이런 식이요. 그럼 보통 여자애들은 당연히 관심없이 흘려들어요. 반대로 선생님께서 화장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 남자애들은 별 반응 없이 흘려들었어요. 보통의 중학생 남자애에게 화장품 만큼이나 관심없는 주제였다는 말이죠. (같은 급이 아닌 것 알고 있어요.. 그냥 비유에요) 고등학교에 가서는 여자들끼리 있어서 군대이야기는 거의 들어본 적도 없어요. 저는 이등병 일병 이런 계급 명칭도 몰랐어요. 일병이 제일 아래인줄 알았을 정도로요.
여기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금 20대 후반~30대 초반 여성들(그 위도 아마 포함되겠죠. 요즘 대학생 분위기는 제가 모르겠구요)의 입장에서, 군대에 대해 여자들이 무심한 것이 당연한 사회적인 분위기였어요. 현재 여자들이 관심없어하는 것이 일부러 남자들의 차별을 모른척하려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죠.
군대에 대해 알게된 건 현재 남편을 만나서였어요. 그전에 대학 동기들이 군대에 갔고 아쉬워하고(동기들이 대부분 남자라 3학년부터는 거의 혼자다녔죠) 휴가나오면 만나고 했지만 군대이야기를 해주진 않았거든요. 남편과 사귀게 되면서 특이(?)하게도 남편은 군대이야기를 많이 해주었어요. 무용담이 아니라 그냥 군대는 이런 곳이다. 이런 부조리가 만연하다. 누구누구와 같은 성격은 군대 체질이다. 힘들다 이런 이야기들이요. 듣다보니 또래 여자들보다 군대에 대한 지식이 많아지더군요. 관심도 생기구요.
그래서 지금은 군대 관련 문제들이 뉴스에 뜨면 찾아보기도 하고 남편에게 물어봐가며 대화를 종종 합니다. 뱃속에 있는 곧 태어날 우리 아들 때문인지 더욱 더 관심이 많아지네요.
지금 군게를 보면, 여자들이 남성징병제에 대해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이 남성징병제에 찬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여자들은 아예 군대에 대해서 배제되어있었다고 봅니다. 옳다 그르다 같은 것을 판단하기 전에 군대와는.. 음.. 남성과 생리대 만큼이나 동떨어져있었다고 생각해요. 남성분들이 생리대 종류, 사이즈, 이런 거 잘 모르시잖아요? 왜냐면 관련이 없으니 관심도 없죠. 그런 맥락으로 여자들도 잘 몰랐어요.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어른들이 알려주지도 않았구요. 방송에 나오는 군대예능으로 아 저런가보다 하는 정도죠. (혹시 제가 군대와 생리를 엮으려고 한다고 읽으시진 마세요. 그냥 비유입니다..)
저는 군대 관련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여자들이 군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몇년 사이에 이루어지지 않을거에요. 그동안 알게모르게 교육되어왔거든요. 군대에 무심하고 무지한 여자들은 남녀평등도 모르고 이기적인 존재들일 거라고 단정짓지 말아주세요. 지금 남자분들은 억울하고 또 억울하시겠지만(그 마음 저도 십분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남녀가 서로 싸우는 건 득이 될 게 없다고 봐요. 사실 이 이야기가 군게에서 나오게 된 것도 얼마되지 않았지요. 남자분들 중에 늘 마음에 품고 있었던 분도 계시겠지만 그냥 남자는 가야하는 곳인가보다 하고 짜증나지만 다녀오신 분도 계셨을 거에요. 우리가 다 그렇게 교육받았는걸요.
군대 문제에 관해서 여성과 남성이 함께 이야기하려면, 지금 군게와 같은 분위기에선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지금 글 쓰며 얼마나 떨리는 지 몰라요. 날선 댓글이 너무 많아서요. 여자들은 왜 군대 안갑니까? 라는 취지의 글에 '아 몰랑 빼에에엑 이러고들 있겠죠 ㅋㅋ ' 이런 댓글 달리고 추천받고.. 물론 그런 여자들 있을 것이지만 아직 아무도 그런 댓글달지 않았는데 첫 댓글부터 탁 그런 글을 보면 저는 그냥 뒤로가기 눌러요. 아래 글들 읽다가 상처받을 까봐요. 그런데 그런 글들이 다수라서 댓글 한번도 못달았어요. 무서워서요.
군대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없는 여자들을 마냥 욕하지만 마시고 여자들도 관심을 갖고 같이 논의해보는 군게가 되었으면 합니다. 주변 여자분들에게 군대이야기를 해보세요. 제 남편처럼요. 저는 남편이 담담하게 해주는 군대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부조리한 일을 들으면 괜히 화가 나기도 했고요.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게 중요한거죠. 만약 남편이 다짜고짜 저에게 나는 군대 다녀와서 이렇게 힘든데 너는 참 좋겠다. 사지 멀쩡한 게 왜 군대를 안가! 라고 했다면 전 더이상 군대에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 거에요.
남자분들의 분노는 당연하지만, 그 분노의 원인을 군대에 안간 여자들에게만 돌리지 마시고, 남자에게만 국방의 의무를 강요하는 이 나라와 그런 남성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여가부(군가산점 폐지 등) 등 진짜 원인인 곳으로 돌리시고, 여자들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셨으면 합니다. 물론 여자들 중에 물귀신이냐 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그런 분들은 일일히 대응하시다가 혈압오르니 주의하시구요. 그 외 대체복무제, 국방세 납부, 요런 의견들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이러이러해서 타당하지 않다고 말씀해주세요. '결국 여자들 가기 싫은 거잖냐. 돈내고 퉁치시겠다?' 이런 마음 아니에요. 정말요. 여자분이 나름 남성징병제는 차별이 맞고, 이런 대안은 어떨까? 하고 쓰신 글들 봤는데, 댓글 중에 비아냥대는 말, 군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글 쓴다. 이런 댓글들을 보고 제가 속이 상했어요. 위에서도 말했듯 여자들 군대 당연히 몰라요. 그러니 모르면 알려주세요. 화내시지만 말구요 ㅠㅜ
마지막으로.. 저는 남편과 대화하면서 우리나라 상황 상 모병제는 어렵다. 그렇다면 여성도 함께 징병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신체적 능력 상 아마 여자는 남자와 같은 일을 모두 수행하기엔 어려울 것이다. 아마 행정병같은 일은 여자들로 채워지지 않을까? 하며 군대가는 상상을 해보았네요. 삭발한 제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 끔찍합니다. 남자분들은 20대가 다가오면서 자연스럽게 군대에 대한 상상을 하셨겠죠? 다녀오신 분들 대단하시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