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밥먹는거에 한해서 표현이 굉장히 단순해요
맛있다or맛없다
나름 프로페셔널한 기준이 있고 미묘한 차이에 의해 갈리기 때문에 저도 그 한 마디를 내뱉음에 있어서 신중하게 말하는 편입니다.
근데 여느 때와 같이 여친이랑 맛집 탐방을 갔다가 급 혼나고 시무룩하게있다가 글씁니다.
자세하게 풀어 쓰자면, 여친이 초.중.고등학교때 단골이었던 떡볶이집으로 갔어요.
가는 도중부터 '내가 여기다 쓴 돈을 다 합치면 한 학기 등록금이 나올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 아줌마(떡볶이집 사장님)는 코묻은 돈으로 빌딩을 한 채 삿을것이다' 하면서 찬양을 하길래 '두근두근한걸?' 하면서 여친 장단을 맞춰가며 갔습니다.
가보니까 메뉴가 김밥 종류랑 라볶이랑 그라탕? 밖에 없길래 '아, 프로페셔널이구나!'라고 느꼇고 '두근두근한걸?' 하면서 또 한 번 여친의 장단을 맞춰주는걸 잊지않았습니다.
저희가 주문한 참치 김밥이랑 라볶이가 나왔지만 여친의 포토타임을 방해하면 떡볶이를 코구멍으로 먹어야하기에 정좌를 하고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ok가 떨어지고 먹으려는 찰나에 여친이 '근데 사람마다 다르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마' 하면서 보험을 들더라고요.
솔직히 저도 동네 분식집 떡볶이 비주얼에 메뉴가 나오기 전의 바운스 바운스는 사라진지 오래였습니다.
그래도 아무 말 하지않고 떡하나와 오뎅을 입에 넣었고 이러한 선입견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순간 '아, 이 아줌마(떡볶이집 사장님) 알짜배기 빌딩을 삿겠구나' 라고 생각을 고쳐먹을 정도로 정말 맛있었습니다.
자신의 숟가락에 떡 하나를 올리며 초조하게 제 반응을 관찰하던 여친에게 고개를 급하게 두 번 끄덕이며 눈을 꿈뻑이니 여친도 그제서야 '맛있지? 맞지?'하며 보험을 철회하더군요.
그리고는 급하게 김밥을 젓가락으로 집어들고는 그대로 떡볶이가 담겨있는 그릇 깊숙한 곳으로 강제 입수시키더니
제기 입에 있는 떡을 식도로 넘기기도 전에 입가에 들이댔고 저는 또 한 번 '아, 이 아줌마(떡볶이집 사장님) 최소 한강뷰구나' 라고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다시 한 번 고개 두 번 끄덕, 눈 꿈뻑하니 여친도 만족스러운듯 하나밖에 없는 달걀을 반으로 가르더니 노른자만 쏙 빼서는 오뎅에 싸먹더군요.
비록 하나밖에 없는 달걀의 노른자를 쏙 빼먹은 여친이 야속하고 '달걀은 원래 떡볶이 국물에 비벼서 숟가락으로 떠먹는건데..' 하며 여친의 방식이 못마땅해 질타할까도 생각했지만 떡볶이를 봐서 용서해주고 흰자를 빻아서 떡볶이 국물에 비벼먹는걸로 참았습니다.
여기까지 저희는 이쁜 커플이었고 분쟁의 여지 또한 여러분들이 읽으신거처럼 제가 사전에 미리 비위를 맞춰둠으로써 전혀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어가서, 저는 맛있는 식사에 기분이 좋아진 상태였고 여친 또한 노른자를 혼자 먹었으니 굉장히 만족스러웠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이기적인 행위의 쾌락과는 비례하지않게 여친의 기분은 썩 좋지않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파악한 저는 급하게 머리통을 굴리며
'여기서 선택지를 잘못 선택하면 배드엔딩이다' 라는 생각에 열기가 가득한 입술을 식히기 위해, 그리고 한 텀의 쉼표가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듯이 물 한 잔을 비우는 쉼표를 잊지않고 물잔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맛있네' 이 한 마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한 마디를 했습니다.
그리고 여친이 아무 말없이 계산을 하려는 낌새가 보이기에 지갑을 꺼내들곤 검지 손가락으로 '댓츠노노'의 뜻을 내비추며 총 7500원의 값을 지불했습니다.
맛있는 식사후에는 역시 후식이 필요하기때문에 사전에 가려고했던 아이스크림 31가지로 들어갔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제 최애케인 '사빠딸'와 여친의 최애케 '엄마는 외계인' 와 입안의 상큼함이 필요했기에 '요거트'를 주문했습니다.
앉아서 코딱지만한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퍼먹는데 여친이 갑자기 옥타브를 0.7개? 정도 내리깔며 '떡볶이 맛있었지?' 하더군요.
달걀의 노른자를 혼자 먹은 여친이 '사빠딸'의 얼마없는 딸기마저 독식할까봐 급하게 딸기를 찾던 저의 움직임이 순간 멈추었고
그 공백을 들키지 않기위해 급하게 딸기없는 '사빠딸'을 입에 넣으며 '응, 맛있더라' 하니 옥타브가 더욱 내려가서는 저를 딱따구리가 참나무를 쪼듯이 쪼앗습니다.
기억도 잘 안납니다. 예상치도 못했고 그 순간에도 아이스크림은 녹아가고있었기에.. 저의 의식은 아이스크림과 딱다구리 사이 그 어딘가로 날아갔습니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고칠게, 이 세 마디의 반복과 저의 특급 애교로 여친의 화는 수그러들었지만 여친은 진지하게 말했어요.
'너는 표현이 너무 적다, 너가 진짜로 맛있는건지 아닌지, 내 비위맞출려고 하는 말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솔직히 마지막 말에 뜨끔했지만 먹을거에 있어서 비위맞춘적은 없기에 '아니다, 내가 여기 살았다면 그 아줌마 유럽으로 효도 여행 보내줬을거다'
하면서 거짓은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친은 혼자 달걀 노른자를 먹었음에도 '나는 정색하지만 넌 안 돼, 막약 정색을 하는 순간 우리 관계는 끝이니까 알아서 나의 화를 풀어봐' 라는 태도로 저의 개인기 12가지를 관람했고 이미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때문에 마음이 아팟지만 스스로도 놀랄만큼 완성도는 높았습니다.
결국 11번째 개인기인 '풀뜯는 라마'를 보고나서야 그녀는 안웃기니 그만하라고 하였지만 아마도 이제와서 정색풀기엔 존심상하니 멈추게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잘못한것을 모르겠네요. 글로 쓰니 더 확실해집니다. 맛없다고 한 것도 아니고 맛있다고 했는데..
진짜 맛있어서 맛있다고 했는데 '나는 못믿겠다, 고로 화남'이라는 태도로 저를 혼낸 여친을 이해할 수 없어요.
그렇게 따지면 달걀의 노른자를 혼자 쏙 빼먹은 여친은 최소 15가지 개인기를 선보여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들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