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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군대는 사랑도 허락되지 않나요?
게시물ID : military_662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썸E
추천 : 10
조회수 : 661회
댓글수 : 18개
등록시간 : 2017/03/13 19: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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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펌글
 
- 군대 얘기만 나오면 생각나는 이야기
- 이런 이야기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겠지만
- 군대는 여자에게든 남자에게든 힘든건 사실이고
- 군대를 겪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힘듦에서 조금은 편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 그냥 요 근래 군대이야기가 많이 나오길래 옛날에 써둔게 생각나서 올려봐요
- 왜 남녀가 군대로 싸워야 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 남녀가 서로를 존중해주고 서로를 다독여줘도 모자란게 군대 이야기 아닐까요
 
 
 
 2년이 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금방 지나가고 나면 오히려 좋은 추억으로, 기억으로 남을거라 생각했다.
남들 다 가는 군대니까 나도 빠질 수 없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국가에 대한 사랑이니 의무니 이런것 보다는
그저 남들 다 하니까, 가야 할 시기가 되니까, 가야만 했다.
 
주변에서는 내 입대가 가장 느렸다.
친구들은 백일휴가, 일병휴가, 상병휴가를 나오는 그 시점에
나는 막 머리를 잘랐다.
 
미룰 수 있다면 군대를 더 미루고 싶었다.
한 1년 정도만 더 늦게갈 수 있다면 그러려고 했지만
이미 통지서도 나오고 휴학 신청도 하고
알바도 그만 둔 터라 떠밀리다싶이 가기로 했다.
 
통지서가 나온 사실을
입대 일주일 전에 너에게 알렸다.
 
넌 담담하게 받아들이는거 같았다.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고 
뭔가 동요하는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그때가 우리 사귄지 1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고
한번 헤어졌다 다시 만난지 100일이 조금 넘은 시기였다.
 
주변에선 다들 그렇게 말했다
 
한번 헤어졌다 만난 커플은 다시 헤어질 수 밖에 없을거라고.
 
너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우리의 재결합을 탐탁치 않아했고
그래도 난 너아니면 안될거 같아서
처음 사귀자고 했던 그날을 되새기며
풋풋한 그때의 우리로 돌아가자는 말과 함께 
다시 만나게 되었다.
 
헤어지기 전보다 우린 서로를 아꼈다 (고 나는 생각한다)
 
 
 
 
-
 
 
 
입대를 하루 앞둔 날,
난 무작정 너를 끌고 어느곳으로 향했다.
 
그동안의 알바비를 차곡차곡 모아 마련한 돈으로
우린 커플링을 했다.
 
비싸지도, 저렴하지도 않은
그냥 우리가 하기에 딱 좋았던 그 커플링은
입영통지서가 나온 날부터 쭉 생각하던 것 중에 하나였다.
 
그날 넌 처음으로 울었다.
그러면서 그랬다 내게.
 
2년 아무것도 아니니까
2년 뒤에도 행복할 우릴 생각하면서 기다리겠다고
이 커플링 보면서 계속 기다리겠다고.
 
울며 말하는 너를 보니
내 마음도 같이 무너져내렸지만
최대한 듬직한 모습을 보이려 너를 토닥여줬다.
 
훈련소까지 같이 가자했지만 내가 말렸다
엄마도, 누나도, 너도,
아무도 훈련소까지 오지 말았으면 했다.
 
왠지 울것 같아서
우는 모습은 보이기 싫어서
 
그렇게 내 고집대로
우린 기차역에서 헤어지고
난 홀로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생전 처음 보는 곳으로 향했다.
 
가족과 너를 기차역에서 돌려보낸건 탁월한 선택이였다.
 
눈물이 나도 모르게 나오고 있었기에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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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훈련소 입소부터 자대를 배치 받기 전까지의 그 느낌을
너와 가족들(정확히는 너에게만)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보고싶고 만나고싶고 찾아가고 싶지만
군대라는 사실은 
그 어떠한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전화조차도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게다가 
어렵사리 전화가 허락된 그 때에 (첫전화!!)
넌 전화를 받지 않았었다.
그 순간의 따끔거리는 마음은 
지금도 가끔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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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도 쓰고
쓸데없는 낙서도 쓰고
너에 대한 그리움을 쓰기도 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하루의 낙이 그거였다
편지도 쓰고 일기도 쓰고 낙서도 쓰고 하며
아직 깜깜하기만한 군생활에 빛을 주었다.
 
편지하니까 생각나는데
훈련소 시절에는 라이트펜이라고 해서
볼펜 끄트머리에서 불빛이 나오는 펜이 인기였다.
 
평소에는 쓰지도 않았던 편지가
밤이면, 새벽이면, 어찌나 쓰고싶던지
침낭을 뒤집어쓰고 한문장 두문장 써내려가는게
그렇게나 좋았다.
 
가끔 걸려서 혼나는 동기들을 봐도
나는 안걸리겠지 하며 몰래몰래 
편지지를 채워나가고는 했었다. 
(결국 나는 안걸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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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목소리를 듣고 
편지에 대한 답장도 받고
먹을게 가득한 소포도 받으며
 
시간은 흘러갔다.
 
군인이 돈이 어딨냐며
콜랙트콜로 전화하라고 넌 그랬지만
난 쥐새끼 눈물만큼 주는 그 군인 월급을
모조리 전화카드에 썼었다.
 
하루는 너가
내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편지와 함께 
1만원이 담긴 전화카드를 보낸적이 있었다.
 
넌 모르겠지만
난 그 카드를 쓰지 않고
고이 모셔두고 있었다.
 
 
 
 
 
 
 
 
-
 
 
 
 
 
 
 
함께 찍었던 사진을 보며
관물대에 조심스럽게 넣어둔 사진을 보며
그렇게 버텼다.
 
가끔 선임들이
 
여자친구 예쁘다? 왜 너따위가 좋대?
너 집에 돈 많냐? 아님 다른게 대단한가?
 
등등의 말을 건내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만큼 너라는 존재는 내 자랑이자 버팀목이었다.
 
 
 
 
 
 
어느날,
전화중에 넌 울먹였다.
 
보고싶은데 못본다는게 이렇게 서러운지 몰랐다며
빨리 보고싶다며 흐느꼈다.
 
거기서 내가 해줄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
 
그저 들어주고 토닥이고
빨리 휴가 나갈게 라며
나도 보고싶다고 사랑한다고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그랬다.
 
군대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원망스러웠다.
 
 
 
 
 
 
2~3일에 한번씩은 오던 너의 답장이 줄어들고
보내지 못한 내 편지는 쌓여가던 그 시기에
 
이상하리만큼 훈련이 겹치는 바람에
전화도 못하며 마음만 타 들어가고 있었다.
 
상병장 들은 훈련 중에 잠깐 시간내어 돌아다녔지만
이등병, 일병들은 자리만 지키고 있기에도 눈치보이고
혹여나 실수하지는 않을까
훈련 싸이렌 소리를 못 들으면 어쩌지 하며
긴장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난 빨리 훈련을 끝내고 너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편지가 왔다 너에게.
훈련기간동안 받지 못했던 편지가 세통, 한번에 도착했다.
 
기쁜 마음과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살폈다.
 
조금 두꺼운 편지와 얇은 편지가 있었고
날짜가 쓰여진 순서대로 두근대며 읽어내렸다.
 
조근조근 옆에서 너가 말하는냥
편지의 내용도 일상적이고 포근했고 그리웠다.
 
그리고 마지막 편지,
 
거기엔 생각지도 못했던
이별에 관한 내용이 써있었다.
 
너무 보고싶은데 못보니까
못보는 마음때문에 속상하고 그립고 힘들고 지쳐만 가는데
이 마음 달래주지도 못하는 나때문에 더 슬프다고.
이제 겨우 몇달 지났을뿐인데 이렇게 힘들면
남은 시간 동안 얼마나 힘들지 가늠도 안된다며
이별하자며 너는 그랬다.
 
제일 속상한건
그게 사실이라는게 미칠듯이 슬펐다../
 
힘들때 옆에 있어주지도 못하고
아파도 해줄 수 있는것도 없고
보고싶을때 볼수도 없고
전화하고 싶을때, 문자하고 싶을때,
그냥 술한잔 하며 도란도란 얘기하고 싶을때,
그냥마냥 보고싶을때
 
어느때에도 난 너의 곁에 없었다.
 
그래서 난
너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조용히 편지를 가슴에 안고
그렇게 울며 너를 보내기로 했다.
 
헤어졌다는게 알려진 그날,
우리 분대는 회식을 했다.
맛있는거 먹고 잊으라며 분대장이 한턱 쐈는데
먹기 싫은데도 먹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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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너가 그리운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왜 군대를 와야만 했나
왜 군대때문에 헤어져야 하지?
너 힘든것도 이해가 가지만
나도 참 힘든데
왜 우리는 서로 힘들어야만 하지?
 
 
 
그러한 것들도 다 일기, 낙서를 썼다.
 
뭐라도 끄적거리며 써내려가야
터질듯한 마음이 진정되는것 같았다.
 
 
 
다들 이별한 군인은 자살위험이 있다며 
날 감시하고 경계하고 가끔 면담도 했지만
난 자살 따위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왜 죽어 죽기는
 
그저 이 답답한 마음을 풀 곳이 필요했는데
군대는 딱히 그럴만한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더 글 쓰는 것에 집착했던거 같다.
 
수양록이라 불리는 낙서책도 다 쓰고
수첩 몇개, 노트도 몇개 써내려가며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려 했지만
그럼에도 넌 몇번씩 내 맘에 나타나 나를 힘들게 했다.
 
휴가를 나가면 
너가 보고싶었지만
 
만나러 가거나
연락하지는 않았다.
 
난 군인이니까.
어차피 못볼 사이니까.
 
그냥 친구들이 소식을 알려주면
그렇구나- 하며 씨익 받아넘기기만 했다.
그리고 속으로 울었다.
 
 
 
 
 
 
 
 
-
 
 
 
 
시간은 계속 흘렀고
나도 일병, 상병, 병장이 되었고
후임이 들어왔다.
 
 
 
후임들도 나와 똑같이 헤어지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단념하면서
군대임을 원망했다.
 
빌어먹을 군대 ..
 
헤어진 후임을 위해 해줄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 밤늦게 화장실을 가는건 아닌가
근무중에 이탈하는건 아닌가
걱정하며 바라보는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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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사탕을 주고싶었다
너에게
 
그렇게 헤어질거라 생각도 못했지만
헤어지고 나서도 왜 모았나는 모르겠다.
 
줄 사람을 잃어버린 별사탕은
의미도 없이 쌓여만 갔고
 
2년이란 시간이 지나 가득 쌓여있을 쯤에는
버리기가 아까워 버리지도 못한
지난 추억의 골동품이 되버리고 말았다.
 
 
 
 
군대에 가지 않았더라면
너와 헤어지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저 별사탕은 너가 받았을까
 
 
그건 아닐수도 맞을수도 있지만,
 
하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건
 
군대는 사랑을 하기에 참 적합하지 못한 곳이며
사랑을 한다해도 감수해야 할 아픔과 슬픔이 너무 많은 곳이라는 것이다.
 
 

출처 제가 몇년전에 쓴 글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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