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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혐과 남혐에 대한 아주 길고 긴 개인적인 이야기
게시물ID : freeboard_13211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킷짱
추천 : 6/9
조회수 : 519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6/05/26 03:5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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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일베고, 오유고, 여시고 일평생 모르고 살다가 오유하는 남편을 만나는 바람에 오유 눈팅러가 된 30대 중반의 여성입니다.
처음에는 남편 오유하는 걸로 엄청 화내고 못하게 하고 짜증내고 했었는데
지금은 남편보다 제가 더 오유를 많이 들여다 봅니다.

3년 가까이 오유 눈팅을 해오면서 단 한번도 글을 쓴 적이 없는데, 
최근 강남 살인사건이 불씨가 된 여혐/남혐 논의를 보고 있다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 조금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제가 가장 놀랍고 실망스러웠던 점은 인터넷 커뮤니티 중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진보적인 정치적 스탠스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던 오유가
젠더 담론에 있어서는 아주 보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부터 발끈하시는 분이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엄청 길어질 것 같지만, 조금 멀리 끌고 나가보려 합니다.
백년전 여성들이 겪었던 '차별과 폭력'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남성이 겪고 있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도 나중에 하겠습니다.)

불과 백년전 우리 땅에 처음으로 일본유학을 다녀오고 고등교육을 받은 신여성, 이른바 모던걸이 등장했습니다.
당시에는 부모님이 정해주신 상대와 얼굴도 못본 채 일찍 결혼하는 조혼 풍습이 있었지요.
그러나 이 교육받은 여성들은 자신의 성적 결정권을 주장하며 자유연애를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유로이 연애하고, 자신이 선택한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지금으로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결혼하기 전에 서방을 몇이나 갈아치우는' 음탕하고 더러운 여자라는 손가락질과 돌팔매질이었습니다.
'모던걸'은 사치와 허영의 상징이었으며, '못된걸'이라고 불리기도 했지요.
우여곡절 끝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둘이나 낳았는데, 알고보니 이미 정부인이 있는 유부남인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하지만 여자를 속이고 두집 살림을 한 남자에게는 아무도 비난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아무런 법적 책임도 없었습니다.
당대의 엘리트 지식인들은 이 신여성들 여러명과 연애하는 화려한 연애편력을 자랑했는데, 
비난의 화살표는 언제나 '남의 남자 좋아하는' 못된걸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겠다던 이 못된걸들은 평생을 비난받고 무시당하며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못된걸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자유로이 연애하고 우리 스스로 사랑할 상대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거겠죠.

그러나 이것 또한 불과 백년전의 이야기였을 뿐 아니라, 아주 소수의 엘리트 지식인들의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당시 일본유학이라는 엘리트교육을 받은 남성 여성의 성비율은 고작 11대 1에 불과했습니다.
일반 여성들은 일찍이 부모님이 정해주신 남성과 결혼해, 남편의 기생놀이나 두집살이에 눈감으며 열남매를 길러내야 했습니다.
제 친할머니는 교육받지 못했고 한 남성의 후처로 들어갔는데, 그 남성에게는 이미 오랫동안 데리고 살던 기생이 있었죠.
6남매를 낳을 동안 할아버지는 여전히 기생집을 왔다갔다 했고, 
자식들이 장성해 결혼할 나이가 되어서야 늙은 기생에게 집을 사주고 내보냈다고 합니다.
제 외할머니 역시 교육받지 못했고, 남편의 여성편력 때문에 평생을 괴로워 하셨습니다.
남편이 밤늦게 들어올지도 몰라서 잠자기 전에도 립스틱을 바르고 주무셨다고 하더군요.
이 시대까지만 해도 남편의 바람은 여성이 눈 감아줘야 하는 것이었고, 이혼은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이 두 여성이 제 어머니와 아버지를 낳아서 기르셨습니다.
제 어머니는 6남매 중 셋째, 여자아이로서는 맏이였는데, 어린 나이부터 그 시대의 여자가 해야할 일은 다 해야 했습니다.
밥하고 빨래하고 어린 동생들 챙기고, 그리고 막내남동생을 위해 학교진학을 포기해야 했죠.
심지어 외할머니가 제 엄마를 앉혀놓고 학교 가지 말라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자가 공부한다고 하면 "계집년들이 공부해서 뭐하나. 성질만 고약해지지."라는 말을 들어야 했죠.
교육받지 못한 엄마는 아버지를 만나 저와 남동생을 낳았습니다.
아버지는 한 번 정도 크게 바람을 핀 적이 있는데, 이혼하자는 어머니의 청천벽력같은 발언에 두손두발 싹싹 빌며 돌아왔죠.
일평생 남편의 기생놀음을 겪어야 했던 친할머니는 우리 어머니께 '남자는 다 그렇다. 네가 눈감아줘라.'라고 조언하셨고요.

어머니 세대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딸인 제가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대학원까지 갔다는 사실은 뭐 거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여성들은 이제 어떤 차별도 없이 남성과 똑같이 교육받고, 직업을 가질 수 있고, 
물론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혼이 크게 흠도 안돼죠.
심지어 지금은 여자가 대통령하는 시대잖아요?
마치 어떤 성적 차별도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표면적으로는요.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자유연애조차 힘들던 우리 할머니 세대로부터 단지 두세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던 우리 어머니 세대에서 단지 한세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내면적으로 이 모든 차별이 사라졌을까요?

제 얘기를 빗대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저는 매우 운좋게도 매우 오픈된 가정에서 자라 차별없이 자랐습니다.
외할머니가 학교가지 말라고 꼬드겨서 교육받지 못한 한이 있는 엄마는 제가 여자라고 해서 차별받지 않도록 더 신경 써주셨기 때문이죠.
게다가 저는 성격이 더러웠고, 우리 아버지는 딸바보였거든요.
하지만 그런 가정에서도 아주 작은 차별들은 존재했습니다.
우리가 차별이라고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오랜 세월 우리의 삶에 익숙해져버린 젠더차별이죠.
우리가 어릴 때 엄마가 없는 날이면 제가 동생 밥을 차려줘야 했고, 동생은 밥을 먹고 설거지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여자이기 때문에 그게 당연한 일이었고 아무 문제가 될 게 없었죠.
어린 남동생은 어른들에게 '부엌에 들어가면 꼬추 떨어진다.'라는 농담을 듣기도 했으니까요.
저는 하다하다 너무 화가 났습니다.
나중엔 동생에게 라면도 끓여주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안계시고 아버지가 일찍 퇴근하시는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 밥상을 차려드리는 것은 항상 저여야 했습니다.
고작 13살의 소녀가 무슨 부엌일을 하겠습니까.
고작 하는 건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담고, 엄마가 만들어 놓은 국을 데워 내놓는 정도였죠.
저보다 삼십년 더 살고 성숙한 어른인 아버지는 부엌일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13살의 여자애인 제가 밥상을 차려야 했죠.
반면 남동생은 단 한번도 아버지 밥상을 차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남자애였으니까요.

저는 아주 운이 좋은 경우였습니다.
가정에서 받는 젠더차별이라는 게 고작 이정도였으니까요.
게다가 외가 쪽에서는 제가 첫 손주라 사랑을 독차지 했었거든요.
물론 제가 중학생 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손자들만 데리고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을 땐 정말 화가 났었지만요.
지금이야 딸이 최고라고 하지만 불과 얼마전만 해도 아들을 못낳으면 여자는 죄인이었습니다.
우리 이모만 해도 시부모의 아들 타령 때문에 딸을 셋이나 낳고서 온갖 방법을 다 해보고 다행히 아들을 낳았고요.
넷째도 딸이었다면, 우리 이모가 시모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으며 살았을 지 아찔합니다.
그리고 그 네 명의 딸들이 가정에서 어떤 언어폭력에 시달려야 했을지 상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지금은 가정의 성차별이 없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세대에는 부모로부터, 조부모로부터 끔찍한 차별적 대우를 받으며 자라난 딸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제 어머니 친구분 아들은 조금만 화가 나면 누나 가슴을 주먹으로 때렸다고 합니다.
여자 가슴을 정통으로 맞으면 남자 불알을 걷어차인 것처럼 아픕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남동생을 혼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 누나 역시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는 남동생을 위해 밥상을 차려야 했겠지요.
아들을 낳았다고 무시당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자란 딸,
어머니를 무시하는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딸,
그리고 딸이라는 이유로 부모와 조부에게 수없이 차별적 대우를 받으며 자란 딸,
삼십년 넘게 그들 마음 속에 남성에 대한 분노와 컴플렉스가 쌓여왔지요.

성희롱과 성폭력문제는 또 어떨까요?
제 얘기를 또 해보겠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때 자주 겪던 일 중 하나는 동네 남자애들이 스쳐치나가면서 제 사타구니를 쓱 만지고 도망가는 일이었습니다.
놀이터에서도, 수영장에서도 그런 일들은 더러 일어났죠.
처음에는 도대체 이게 무슨 장난인지 몰라서 어리둥절 했었지만
나중에는 내 사타구니를 만지고 도망가는 자식의 뒤를 쫓아가서 뒤통수를 후려치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여자애들은 슬슬 가슴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브래지어라는 걸 차게 되었죠.
남자애들은 신나게 여자애들 브래지어를 푸르고 다녔습니다.
여자애들은 수치심에 떨며 하루에도 몇번씩 책상에 얼굴을 묻고 울어야 했죠.
가슴이 발달하고, 생리를 하는 자연스러운 성장마저 놀림의 대상이 되었고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중학생 때 저는 유독 가슴이 발달해서 여름 하복을 입으면 위에서 가슴골이 다 들여다 보였습니다.
남자애들은 쉬는 시간마다 제 자리로 몰려와서 저와 얘기하는 척하며 위에서 제 가슴을 내려다 봤죠.
그 시선을 다 알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 했습니다.
그걸로 화를 내고 남자애들과 싸울 자신이 없었거든요.
중학교 체육선생은 수업시간마다 애들을 앉혀놓고 음담패설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여자 젖꼭지를 이렇게 이렇게 하면 여자가 까무러치게 좋아한다라는 말도 제스처와 함께 할 정도의 높은 수위였는데
남자애들은 눈을 반짝이며 경청했고, 여자애들은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몰라 아무도 화를 내거나 수치스러워할 수조차 없었죠.
그 체육선생은 저한테 C컵이냐 D컵이냐 묻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전 그것이 성희롱인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전 "아니에요! 저 그렇게 안 커요!" 하며 부끄러워 했을 뿐이죠.
한 남자 선생은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놀고 있는 저에게 다가와 명찰이 제대로 안달렸다며
직접 하겠다는 제 손을 뿌리치고 제 왼쪽 가슴을 살짝살짝 터치하며 손수 명찰을 달아 주었습니다.
기분 나빴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죠.
친구와 늦은 저녁 공원 산책을 하다가 바지를 내리고 쫓아오는 변태와 만나 끼야약 소리지르며 달리기하는 정도는 일상적인 이벤트였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전철로 등하교를 했는데 아저씨들이 위에서 가슴을 내려다보는 일은 일일히 기억하기도 어렵네요.
한번은 어떤 아저씨가 잠든 제 옆에 앉아 몰래 허벅지를 만지다가 걸려서 욕 한바가지 해주고 내려버린 적도 있었죠.
하지만 무서워서 그 인간을 경찰에 신고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성질이 더러워서 당하면 욕이라도 해주는 깡이 있었죠.
아무 말도 못하고 두려움에 떨면서 당하기만 했던 수많은 여학생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자취하는 대학생이 되어서는 혼자 밤산책을 하다가 자기 성기를 흔들며 쫓아오는 변태 자식에 쫓겨서 집 앞까지 달려온 적이 있었죠.
별별 욕을 다 퍼부어줬는데 신이 난다는 듯이 흔들어대며 3층까지 쫓아오더군요.
동네 사람들! 살려주세요! 온갖 비명을 질렀는데 아무도 내다보지 않았습니다.
며칠을 두려움에 떨며 밖에 못나갔어요.

이정도면 저는 상당히 운이 좋은 편입니다.
저는 동네오빠나 삼촌에게 성추행을 당하거나 성폭행을 당하지도 않았고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데이트폭력을 당한 적도 없죠.
대학생 시절 동기 남자애들하고 과제하다 한 방에서 자고, 술마시다 한 방에서 자는 일이 무수히 있었지만
성추행도 성폭행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제 친구들이 흔하게 겪었던 스토킹이라는 것도 한번도 당한 적이 없습니다.
남자애들하고 대등하게 음담패설을 주고 받을 수 있었고
직장 상사에게 기분나쁜 성희롱을 당한 적도 없습니다.
물론 회식 후 제가 너무 추워서 부들부들 떨고 있자, 직장 상사가 뒤에서 저를 껴안으며 "데려다줄까?" 했었던 적이 있었죠.
저는 씩씩하게 "괜찮아요! 혼자 갈 수 있어요!"라고 했고, 그게 별로 기분나쁘지 않았습니다.
친한 선배같은 느낌이었거든요.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엄청 기분 나쁜 성희롱이었을 수도 있죠.

분명 수많은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성희롱을 당하고 성추행을 당하며 자랍니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범죄에 노출되어 있죠.
그저 밤거리를 걷고 있는 것만으로요.
게다가 우리는 방어할 수 있는 육체적 힘이 남성보다 약하니까요.
최근엔 결혼하고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밤늦게 혼자 집에 걸어가고 있는데 그 골목길엔 저 말고도 저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어요.
저는 귀에 꼽고있던 이어폰도 빼고 잔뜩 긴장해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그 남자가 "저기요." 하고 말을 걸었습니다.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길을 물어보더군요.
다행이다 싶어서 친절히 길을 알려줬어요.
그랬더니 계속 저와 함께 걸으며 여기 근처 사냐, 언제나 이 시간에 집에 가느냐, 하며 이것저것 물어보더군요.
결혼했다고 얘기했는데도 계속 따라와 말을 붙여서 집에 가는 내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남편이 데리러 나왔지요.
그 남자가 단지 나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인지,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내가 사는 곳을 그 남자가 알고 있다는 공포심 때문에 한동안 해가 지면 밖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이런 여성들에게 밤길 뒤를 따라오는 남자의 발소리는 정말 말도 못할 공포입니다.
늦은 밤 남성과 단둘이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지요.
남성들은 자신을 잠재적 범죄자로 대하는 그 여성이 기분 나쁘고 아니꼽겠지만
스스로 조심하는 것 외에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여성들에게 
"밤에 너무 늦게 돌아다니지 마시오."라는 말 외에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나요?
노출 의상을 입지 말라는 얘기는 어이가 없어서 언급도 하고 싶지 않군요.

여성들은 이제 아무런 차별없이 교육받고, 직업을 가지고, 결혼상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지만
성폭행을 당하면 여전히 자신이 얼마나 정숙한 여자인지 입증해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백년전 모던걸들이 자기 인생을 걸고 갈기갈기 찢어 발겼던 그 '정숙'을 지금 21세기에 입증해야 된다고요.
만약 클럽에 자주 드나들고 노출 의상을 즐겨입고 남자 관계가 복잡한 여자가 성폭행을 당했다면요?
법정에서 받을 모욕을 생각하니 신고조차 못하고 덮어버리는 여자들은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네가 먼저 유혹했잖아! 이 더러운 년!"이라는 소리는 지금도 먹히는 얘기입니다.
여성은 유혹하는 존재이고, 남자는 유혹당하죠.
유혹하는 애가 못된 거지 유혹당하는 쪽은 늘 아무런 책임도 잘못도 없습니다.
한 회사 안에서 불륜 문제가 터지면 일을 관두는 것은 반드시 여자쪽입니다.
성희롱이나 성추행 문제가 불거져도 일을 관두는 것은 여자죠.
성폭력 범죄자의 구형이 고작 2년, 3년밖에 안되는 것은 여성의 몸가짐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 분명하고,
남성은 유혹에 약하다는 참으로 관대한 사회적 통념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는 것은 여성의 몸이 너무나 유혹적이어서가 아니라 만만해서 입니다.
드라마 '시그널'에서 여학생이 강간당했던 이유가 그 여자아이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였나요?
아니요, 여자아이는 남자애에게 대든 '벌'의 의미로 집단 강간을 당했습니다.
일부 폭력적인 남성들은 여자에게 화가 나면 가장 무서운 협박의 의미로 '쑤셔 버린다'라고 말합니다.
여성을 제압하고 남성의 우월함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단의 하나가 바로 강간인 것입니다.
남성의 성은 여성에게 '벌'을 줄 수 있을 만큼 강력합니다.
그에 반해 여성의 성은 오랫동안 비하당했고, 무시당해 왔습니다.
지금도 남자에게 계집애 같다고 하는 건 거의 욕과 같은 수준입니다.
여성의 성을 비하하는 수많은 이름들도 있죠.
백년전 모던걸들은 '못된걸'. 나이든 남자와 연애하는 여자들은 '스틱걸'이라는 이름으로 비하당했고,
남자 관계가 조금 복잡하면 '걸레'라는 이름으로 불리웠으며
얼마전에는 '개념녀'가 아니면 몽땅 싸그리 '김치녀'로 매도당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보지들이 갑질한다고 비하하는 '보슬아치'라는 이름이 생겼었죠.
요즘 오유에 자주 보이는 '메퇘지'라는 이름도 그 연장선상입니다.
'김여사'라는 이름은 어떤가요.
"여자가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 어딜 기어 나와!"라는 얘기를 우리 어머니들은 무수히 들어야 했습니다.
그나마 돼지나 년이라는 글자가 안들어간 것은 어르신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남자들 입맛에 맞지 않는 여자들에게 무수한 비하의 이름들이 붙여질 것입니다.
인터넷의 발달 덕분에 이 이름들이 새로 만들어지는 속도도 아주 빠를 거고요.
이 모든 것들을 삼십년 넘게 보고 듣고 겪으며 여성들 마음 속에 남성에 대한 분노와 컴플렉스가 쌓여왔지요.

직장에서 받는 여성들의 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니 숨도 차고 자리도 부족합니다.
게다가 저는 공부를 오래하고 프리랜서 일을 주로 해와서 일반 직장 경험이 짧으니 말을 아끼겠습니다.

자 이제 드디어 강남살인사건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랫동안 성적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어 오면서 분노와 컴플렉스가 쌓여왔던 여성들은
강남 살인사건에서 자신의 죽음을 봅니다.
왜냐면 그 여자분은 정말로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살해당했 거든요.
이 정신병자는 화장실에 숨어서 6명의 남성을 그냥 보내고 처음으로 들어온 여성을 수차례 칼로 찔러서 죽입니다.
그것이 한 정신병자의 정신나간 범죄일 뿐일지라도 그 여성분이 살해당한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닌 '여자'이기 때문이죠.
심지어 밤거리를 혼자 걷고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여성들은 공포에 떨며 생각합니다.
"그동안 여자이기 때문에 겪어왔던 수많은 성차별과 폭력은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이제는 여자이기 때문에 죽기까지 해야 돼?"
그동안 쌓아왔던 분노와 컴플렉스가 이번 사건으로 모두 폭발했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추모는 더이상 희생자인 여성에 대한 추모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차별받고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 전체'에 대한 추모가 맞습니다.
희생자는 여성 전체의 죽음을 대변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그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모든 운동은 하나의 사건을 도화선으로 해서 폭발하는 것이니까요.
예를 들어 군대에서 지속적으로 왕따 당하던 한 남성이 살해당했다고 칩시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거대한 추모운동이 일어나고, 군대의 문제점에 대한 발언의 장이 되고 개선을 요구하는 적극적인 운동으로 나아간다면
이것은 더이상 왕따 당하던 한 군인에 대한 추모가 아니라 사회운동으로 발전한 것이죠.
현재의 강남추모 역시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오랜시간 컴플렉스에 시달렸다보니 일부 여성들이 완전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거에요.
사실 저는 그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실제로 남성들에게 위협을 받았던 경험이 있는 여성이라면 이번 사건에 자신을 투영하는 정도가 굉장히 강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 공감정도가 너무 강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비슷한 정도의 증상을 보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학대받았던 여성들이 우리가 이렇게 당했왔으니 이제는 너희들도 당해봐 라며 복수심에 불타는 악녀로 변했다는 것이
현재 강남추모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동시에 남성들이 이 열받은 악녀들에게 마찬가지로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며 대응하기 시작하면서 완전 난장판이 됐죠.
왜냐하면 최근 백년간 남성들도 마음 속 깊은 곳에 분노와 컴플렉스를 쌓아왔거든요.
지난 백년간 여성들은 급격하게 변하게 시작했습니다.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남자의 바람을 여자의 운명이라 받아들이는 것도 거부하고, 
남자와 동일한 교육을 받고 남자들만의 세계였던 돈벌이의 세계로 뛰어들었죠.
자존심 센 남자들이 처음으로 여자를 상사로 모셔야 하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공무원 여성 합격률은 꾸준히 늘어나 최근엔 50퍼센트가 넘었습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위협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죠.
왜냐면 실제로 취업이 겁나 어려워지기 시작했거든요!!!!
게다가 남성들이 군대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때
여자들은 일찍 졸업해서 취업하고 경력을 쌓으니 여성 상사는 아주 흔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거기다가 이 교육받고 일하는 여성들이 집안일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요즘 젊은 여성들은 집안일 할 줄 모르는 정도에 있어서는 젊은 남성들과 거의 동일합니다.
그런데도 결혼과 동시에 집안일을 강요받기 시작하죠.
제 시어머니는 당신 아들 부엌일 시킬까봐 저한테 우리 아들 부엌일은 시키지 말아라 신신당부를 하셨답니다.
하지만 이 교육받고 일하는 여성들이 어디 어른들 말씀 듣나요.
이제 집안일은 돕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거라고 오랫동안 부르짖어 온 덕분에
남성들이 드디어 집에서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 육아도 함께 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열심히 돈을 벌어 오기만 하면 아내가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길러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남성들은 돈도 벌고, 집안일도 하고, 육아도 해야 합니다.
게다가 여자를 상사로 모셔야 하고요.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문제는 이 과정들이 무려 한세대 만에 너무 급격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여성들은 스스로 변화했고, 남성들은 변화를 강요받았죠.
그 차이 때문에 남성들은 계속해서 위협을 느껴야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이 권리를 부르짖을 동안, 실제로 남성들은 계속해서 권리를 내려놓아야 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남성성에 대한 담론은 거의 변화한 것이 없습니다.
남성들은 백년전이나 지금이나 남자다워야 하고, 나라를 지켜야 하고, 가정을 지켜야 하죠.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일하는 여자에게 화를 낼 이유가 부족하니 모든 분노의 화살은 가정주부에게로 돌아갑니다.
일하는 여자가 집안일을 나눠하자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가정주부가 남편에게 집안일을 시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라는 얘기죠.
가정주부가 환한 대낮에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친구들과 만나 밥을 먹는 것이 세상 제일 꼴배기 싫은 일이 됩니다.
가정주부는 저녁에는 친구를 만날 수 없으니까 낮에 만나는 건데 말이죠.
(물론 집안일은 뒷전으로 하고 팽팽 놀러만 다니는 가정주부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정에 소홀하고 육아에 무심한 남편이 있는 것처럼요.)
직장과 가정, 경제적인 문제들로 어쩔 수 없이 가정주부가 되는 여성들이 억울해 합니다.
여성들은 결혼해서 수퍼우먼을 강요받거나 욕먹는 가정주부로 사느니 결혼을 거부하겠다고 말합니다.
아니면 애를 안낳겠다고 말하고요.
평생 열심히 벌어도 집 한채 마련할 수 없는 각박한 사회가 되자, 
고생하기 싫은 어떤 여성들이 집과 차를 가지고 있는 남자하고만 결혼하겠다고 선언합니다.
뭐 결혼 전에는 다들 그런 백마탄 왕자님을 기대하고 하는 겁니다.
저같아도 운좋게 그런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면 좋아라 했겠죠.
하지만 현실은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직업도 없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일부 여성들의 이 철없는 발언은 그동안 참고 있던 남성들의 컴플렉스를 제대로 건드렸죠.
'김치녀'니, '보슬아치'니 혐오이름을 붙여대며 길길이 날뜁니다.
여성들도 '한남충'같은 이름을 만들어내며 같이 날뛰었죠.
아주 유치하고 히스테릭한 자존심 싸움으로 번져갑니다.
이 문제의 대부분의 원인은 사회적이고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데에 있는데도 말이죠.
(이 싸움의 진행에 대해서는 더 자세한 스토리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싸움 밖에서 구경하던 저에게는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군대 얘기는 더욱 팽팽하죠.
저는 우리나라 군대는 남성들이 노예취급받으며 폭력에 노출된 채로 2년을 보내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성들은 실제로 2년을 군대에서 보내면서 엄청난 컴플렉스에 시달리게 됩니다.
2년 동안 청춘과 노동을 국가에 바쳤는데 아무런 보상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요구한 것이 군대 가산점이었죠.
그러나 여성들은 여전히 승진이나 인사고과에 있어 남성에 비해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었는데
거기에 남성들이 가산점까지 받게 되면 벌어질 일들에 우려했죠.
그래서 나온 얘기가 임신 드립이었어요.
"우리도 원치 않은 희생을 한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도 원치 않은 일을 하니까 니네도 참아."라는 아주 수준낮은 반박이었죠.
그러자 남자들은 여자들도 군대를 보내야 한다는 더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내가 똥통에서 뒹구는 것이 억울해 죽겠으니 너도 똥물 좀 묻어봐라라는 거였죠.
아무도 현재 군대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서로 미워서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마치 지금의 강남추모 현장 처럼요.

백년전 모던걸들은 '사랑'을 부르짖었죠.
그런데 지금 여기에는 '증오' 밖에 없어요.
오유 역시 '여혐'은 존재하지도 않는데, 미친 여자들이 '여혐'과 '남혐'을 조장한다고 말하죠.
물론 거기에는 오랫동안 차별과 폭력 속에서 남성 전체에 대한 분노를 키워온 여성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 여성들은 실제로 남성평등보다는 남성혐오에 가까운 발언들을 내뱉고 있습니다.
남성을 약을 먹여 능욕하고 비디오로 찍겠다는 그 무시무시한 글을 보세요.
그건 그동안 남성들이 여성에게 했던 모든 일을 그 몇배로 갚아주겠다는 끔찍한 복수 선언입니다.
그런데 그 무시무시한 악녀를 과연 누가 만들었나요?
누가 그녀들을 일상적으로 차별하고 무시하고 비하하였나요?
그녀들이 그동안 당해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의 착각이고 피해망상에 불과한가요?
전 그녀들을 차별하고 무시하고 비하한 것이 개별적인 어떤 '남자'가 아니라 '남성중심적인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여자가 말이야~" "남자가 말이야~"라는 명백히 차별적인 젠더담론이 여전히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은 가정에서, 사회에서 수없이 많은 차별대우와 성적 폭력을 경험해 왔습니다.
여성혐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무수히 많은 이름들로 불리워졌고요.
나는 여자를 때리지도, 여자를 무시하지도, 여자를 성추행하거나 희롱하지도 않았다! 라고 얘기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요.
그리고 그 사회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권익을 부르짖을 수록 여성혐오는 소리없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혐'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고, 강남의 저 분노한 여성들을 다 정신병자 취급해버리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상사에게 성추행 당한 여자가 미친X 취급을 받으며 혼자 회사를 그만두는 일과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요?
아무일 없다는 듯이 다시 전으로 돌아가고 또 어떤 여자가 성추행을 당하고 혼자 회사를 관두겠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미움의 골만 깊어집니다.

사실 이 깊어진 미움의 골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노에 찬 여성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남혐을 부르짖을 때
'여혐'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거나
'여혐'으로 맞서는 것 둘 다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메퇘지'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다른 여성들과 구별, 분리, 고립시키려는 시도 역시 마찬가지에요.
일부 여성들은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이 구분법에 충실해서 '난 아니에요.'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분리시켜 나오겠죠.
그렇게 착한 여자, 나쁜 여자가 구분됩니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요.
모르겠네요.
시스템적인 문제해결도 문제지만
사실 이 남녀 문제는 남성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전체적으로 개선되고 
남녀가 오랫동안 쌓아온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라서 더욱 어려울 것 같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글이 너무나 심각하게 길어서 아무도 안읽을 것 같다는 거죠 ㅋㅋㅋㅋ
어쩌다 이렇게 길어졌는지 스스로도 모르겠네요.
아 후회된다.
하여튼 지금 저기는 남녀가 서로 미워서 부들부들하는데
저랑 남편은 아주 사이가 좋습니다.
꼭 결혼 안한 애들끼리 서로 미워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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