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를 시작하면서였을까. 언젠가부터 집회에 나가기 시작한 뒤, 가끔 난 스스로 집회에 나가는 이유를 고민하곤 했다.
세상에서 누군가에겐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웠을 그대들. 피우지도 못한 채 스러진 꽃들. 그것이 나에겐 어느새 무거운 이유가 되었다.
때때로 너른 광장 속 텐트 세칸 크기의 분향소에 들러 눈시울 붉히며 국화 한 송이 올리고 너희들의 사진을 죽 둘러보는 것이, 그저 돈도 없고 힘도 없으며 가진 것이라곤 그나마 긴 시간 버틸 수 있는 두 다리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을까.
뭔가 너희들에게, 너희들의 가족에게. 더 했어야 했는데. 뭔가 더 노력을 했어야 했는데. 천일이 지난 지금에도 나와 모두는 같은 생각을 하리라.
무능이 죄가 될 수가 없다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학식이 풍부한 사람들마저 무능의 극치를 달리던 자에게 내린 판결이 저렇다니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물론 이제야 너희들의 한을 풀기 위한, 진상 조사를 위한 첫 날이 시작되는 것에 희망을 가지나.
여전히 나는, 무슨 말을 너희들에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저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출처 |
가끔은 이렇게 격해질 때가 있습니다.
내일도 전 광장에 들러 국화 한 송이 올리고 또 울고 가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