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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데미안, 고전 읽기의 참맛이 이런 거였을까
게시물ID : readers_279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unabelle
추천 : 10
조회수 : 884회
댓글수 : 18개
등록시간 : 2017/03/08 17: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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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시절에 한번 읽어보았지만 - 당시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건지/읽다 그만둔 건지 그 내용이 전혀 기억 나지 않았다. 어떤 여자연예인이 자신의 이상형을데미안으로 꼽았다고 하는데, 세상에 데미안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 그저 쿨 해 보이려는 술수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내게 <데미안>은 어렵고 멀기만 했다(사실 모든 고전이 그러했다ㅠㅠ).

이번 오독오독을 통해 이 책을 다시 손에 쥐게 되면서 다른 이들의 독후감을 몇 편 검색해보았는데, 세상에나, 그 어린 나이부터 <데미안>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실재했다니!

나의 독해력과 문학감성은 그다지도 형편 없는 거였구나.

 

초반부 싱클레어의 어린 시절을 소리내어 읽으면서 <데미안>을 읽고 있는 나 자신ㅋㅋ에 빠져들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을 생애전환기의 균열에 대해 그토록 섬세하고 집요하게 파헤치다니 소문난 작가는 역시 다르구먼. 그런데 카인 이야기부터 혼란스럽다. 이 작자는 파~국을 원하는 걸까.

 

어릴 적 위인전을 읽을 때마다 그들의 아동기 에피소드는 재미있어 하다가 실제로 업적을 쌓기 시작하면서부터 급 흥미를 잃고 책을 덮었던 것처럼 에디슨이 계란을 품는 돌+아이였다는 게 웃긴 거지, 전깃불을 발명하는 건 내 알 바가 아니지 않은가 싱클레어가 김나지움에 입학한 이후로 나는 지치기 시작했다. 코 밑에 수염이 거뭇거뭇 난 사내아이들로부터 느껴지는 거리감 때문이었을까. 이 때부턴 소리 내어 읽는 것도 그만두었다.

 

피스토리우스를 만나고부터는 현학적이고 관념적인 내용이 점층하여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아직 반 밖에 안 읽었어ㅠㅠ 동공이 풀린 채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1000미터 달리기를 하듯이 허덕이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겼다. 이거 심오하구만.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아련하게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르는 생각이 내게 닿을 듯 말 듯 하여, 나는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 줄을 긋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두 번째 읽으면서부터는 눈앞에 안개가 걷히듯이 많은 것들이 명료해졌다. 헤세는 말하고자 했던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이야기를 설득하기 위해 착실하게 복선을 깔고 순차적으로 섬세하게 설명해내고 있었다. 독자의 질문은 싱클레어의 질문으로, 헤세의 대답은 데미안과 피스토리우스의 대답을 통해 이루어졌다. 되새기고 반복해 읽을 때마다 그물처럼 짜여진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고전의 참 맛이었던 건가?

 

<데미안>을 말하는 데 있어 제1차 세계대전을 빠트리면 안될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은 4년간(1914. 7. 28 ~ 1918. 11. 11) 지속되었고, 종전 바로 다음해인 1919년에 이 책이 발간되었기 때문이다. 운명의 격돌을 관통하고 이데올로기의 변화에 직면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데미안과 싱클레어가 존재하였으리라. 이후 1939년 발생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전사자의 유품 중 성경책 다음으로 많이 발견된 책이라고 하니, 독일 젊은이들에게 이 책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헤르만 헤세는 이미 널리 이름을 알린 상태였던 자신을 숨기고 굳이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책을 내었고, 프롤로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작가들은 소설을 쓸 때면 자기들이 신이라도 되는 양 (중략) 언제 어디나 가리는 것 없이 시원하게 묘사하곤 한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작가들도 물론 그렇게는 못한다. 하지만 그 어떤 작가가 자기 이야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이상으로 내게는 내 이야기가 중요하다. 이것은 나 자신의 이야기, 한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가공의 인간, 어떤 가능한, 어떤 이상적인, 또는 어쨌든 존재하지 않는 한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로 존재하는, 단 한번뿐인, 살아 있는 인간의 이야기인 것이다.
 

헤세에게는 이렇듯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독일의 젊은이들 속에 실존하는 인물이라고 믿어지는 것이 중요했던 것 같다.

전쟁이라.

부모의 안락함으로부터 독립한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을 테고, 2차 성징과 첫사랑 따위만으로도 존재의 위기를 겪는 애송이들일진데,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사람을 죽이는 일을 부여 받는다. 심지어 그 죽일 대상은 나 스스로가 아닌 대의에 의해 결정되고. 나는 전쟁의 후유증을 안고 귀향하지만 내 전우는, 내 사랑하는 가족은 죽어버렸다. 내가 알고 있던 안온한 세상은 어디로 가버린 건가? 내가 배운 윤리는, 가치는 누가 결정한 것이었던가? 생명의 값어치가 이다지도 허망한 것이었나? 이 참상 어딘가에 신이 존재하기는 했던 건가?!

헤세는 이렇듯 전 후 정신적 붕괴를 경험하고 있을 세대에게 인간으로서의 이상향을 제시하고, 기존의 종교도 철학도 아닌 스스로가 주도하는 삶을 살아내기를 격려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인간은 누구나 저 자신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현상들이 교차하는 지점, 단 한 번 뿐이고 아주 특별한,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고 특이한 한 지점이다. 단 한 번만 그렇게 존재하는, 두 번 다시는 없는 지점이다. 그래서 각자의 이야기는 소중하고 영원하고 거룩하며, 그래서 어쨌든 아직 살아서 자연의 의지를 충족시키는 인간은 누구라도 극히 주목할 만한 경이로운 존재인 것이다.

 

사람들에겐 우리가 필요할 거야. 안내자나 새로운 입법자로서가 아니라 함께 가다가 운명이 부르는 곳에서 멈춰 설 각오가 된 사람으로서 말이지. (중략) 우리는 그럴 때 거기 있다가 함께 가는 극소수의 사람이 될 거야. 그러라고 우린 표를 지닌 거니까. (중략) 그가 어떤 파도를 위해 봉사할지, 어떤 극단의 지배를 받을지는 그 자신의 선택이 아니야. (중략) 그걸 언제나 생물학적으로 발전사적으로 생각해야만 해! 지구 표면의 격변이 물속에 사는 동물을 육지로, 육지에 사는 동물을 물속으로 몰아붙였을 때, 운명을 받아들일 각오가 되었던 표본들은 전에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일을 완수하고 새롭게 적응하여 자기들의 종을 구원할 수 있었지.”

 

부모님의 따뜻하고 선한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친구도, 연인도 없이 고독의 세월을 흘러 드디어 데미안과 에바부인을 만났지만

충만한 기쁨도 잠시, 전쟁으로 헤어져야 했다.

데미안은 죽었다.

하지만 에바부인은 물었다, 얘들아, 설마 슬퍼하는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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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입니다~

 

첫번째는 쉬운 것으로 하죠. 데미안은 어떤 방법으로 프란츠 크로머를 끊어냈을까요?

  

두번째 질문입니다. 이건 저도 대답하기 어렵네요. 당신은 최초의 균열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이 순간이 중요하고도 지속적인 부분이다. 이것은 아버지의 거룩함에 드러난 최초의 균열이었고, 나의 어린 시절을 떠받치던, 그리고 누구나 스스로 자기 자신이 되기 전에 무너뜨리지 않으면 안 되는 기둥들에 나타난 최초의 금이었다. 우리 운명의 본질적인 내면의 선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이런 체험들로 이루어진다. 이런 금이나 균열은 도로 덮여 아물고 잊히지만, 가장 비밀스러운 방에서는 계속 살아남아 피를 흘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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