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건영 한 사장 사건에 있어서 가장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한 사장도 아니고, 한 사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어제 한 사장의 번복 증언을 통해) 드러난 박모, 김모씨도 아니며 아직까지 증언대에 선 적도 없고, 앞으로 열리게 될 3차(1월 4일), 4차(1월 17일) 공판에서도 증인으로 신청되지 않은 인물, 제보자 -‘남모씨’입니다.
한 사장 사건은 곽 사장 사건의 복제품처럼 본질이 같습니다만, 이번 사건이 곽 사장 사건과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사건의 중심에 누가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대한통운 곽영욱 사건의 중심에는 곽영욱 자신이 있었습니다만, 한 사장 사건의 중심에는 한 사장이 아닌 ‘남모씨’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한통운 곽 사장은 곽 사장 스스로 검찰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이 돈을 주었다고 허위진술하면서 비롯된 사건으로 결론이 났지만, 한 사장 사건에서 (검찰의 압박을 받았는지, 검찰과 결탁했는지, 검찰의 협조요청에 동의를 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한 사장을 압박한 주체는 검찰이 아닌 ‘남모씨’라는 사람이 중심에 서 있습니다.
▲ 한명숙 전 총리가 지난 12월 6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첫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1. ‘남모씨’는 어떤 인물?
‘남모씨’는 한 사장 사건의 제보자입니다. 즉, 그는 ‘한신건영 한 사장이 한명숙 전 총리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하였다’라는 취지의 제보를 검찰에 하였으며 그로부터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의 전부입니다.
검찰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느날 문득 ‘남모씨’라는 사람이 검찰에 그러한 제보를 함으로써 검찰이 조사에 착수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검찰이 이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하여 ‘남모씨’라는 제보자가 필요했는지 여부는 시간이 흐르면서 드러나게 되겠지만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그렇다는 뜻입니다.
어제 한 사장의 증언에 따르면 ‘남모씨’는 한신건영의 이사로 등재되어 있고 감사직을 맡았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등재된 이사임에도 한 사장과는 친분이나 교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한신건영이 부도가 난 이후 사태 수습과정에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 한 사장의 증언입니다.
그런데 문제의 ‘남모씨’는 한신건영이 부도가 나고 한 사장이 고소되어 구속이 된 이후 소위 ‘사태 수습’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느나 한 사장에게 그리 우호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한 사장의 증언에 따르면 ‘남모씨’는 사태 수습을 한다는 명목으로 법인 인감과 서류를 가져가서 한 사장 동의 없이 대표이사를 교체해버렸다는 것이며, 결국 한 사장은 ‘남모씨가 20년간 애지중지 키운 자신의 회사를 날로 빼앗아 갔다’는 피해의식과 함께 상당한 분노감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2. 한 사장 증언에 의하면 ‘남모씨’는 범죄자?
아직까지 ‘남모씨’에 대한 증인 심문이 없는 상태이며 ‘남모씨’가 제보자라는 것 외에 알려진 사실이 그리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모씨의 입장표명 하나 없는 상황에서 예단하기엔 이르지만, 한 사장이 법정 증언대에서 한 발언이 사실이라면 ‘남모씨’는 한 사장이 인신구속으로 인해 기업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점을 악용해 법인회사를 빼앗은 범죄자가 되는 셈입니다.
그에 대해 억울함을 느낀 한 사장은 ‘남모씨’를 고소하게 되지만 한 사장은 오히려 재판에서 패소하게 되며 '무고의 죄'까지 덧씌워지는 설상가상의 상황이 되고 그로 인해 한 사장은 <자신은 억울한데 어떤 방법으로도 자신의 억울함을 풀 수 없다는 절망감과 함께 거대한 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 심경을 토로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어느 날 검찰수사가 시작되고 검찰에 불려간 한 사장은 ‘남모씨’라는 사람이 ‘한신건영 한 사장이 한 총리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주었다’는 제보를 하였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수사와 자신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이후 수감된 상태에서 출정형식으로 검찰청을 무려 ‘73차례’나 드나들며 조사를 받게 됩니다.
한 사장은 검찰 최초 조사에서 <한 총리에게 정치자금을 준 사실이 없다>라는 진술을 하였다고 증언을 하였으나, 증인에 대한 심문과정에서 변호인의 발언을 통해 드러난 사실을 보면 <검찰 조서 어느 곳에도 한 사장이 처음 ‘정치자금을 준 사실이 없다’고 발언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정치자금을 준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한 사장의 진술내용이 담긴 검찰조서를 모두 입수하여 보았을 변호인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결국 검찰은 최초 수사 당시 <한 총리에게 정치자금을 준 사실이 없다>는 한 사장의 진술을 조서에 기록하지 않고 누락시켰거나 조서를 새로 꾸몄다는 결과가 되므로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 되는 셈입니다.
3. ‘남모씨’의 위력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한 사장
한 사장은 “왜 허위의 내용에 대한 진술에 협조하게 되었는지” 묻는 변호인단의 질문에 증언을 하면서 “검찰 조사과정에서 남모씨와 대질심문이 있었는데, 남모씨가 특수부에 와서 고래고래 고함을 쳐서 놀랬다”는 답변과 함께 대단히 중요한 발언을 합니다.
“검찰과 짰는지는 모르겠지만, ‘남모씨’가 특수부에 와서 고래고래 큰소리를 치고 호통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한민국에 특수부에 와서 그렇게 고함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라는 증언을 합니다. 그래서 그 순간 자신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순순히 협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권력의 벽을 느낀 것입니다.
첫째, 여기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은 한 사장이 발언한 <검찰과 짰는지는 모르겠지만>이라는 부분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한 사장이 느끼기에 그렇게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고, 그만큼 ‘남모씨’가 특수부에까지 와서 큰소리치는 상황이 한 사장에게는 한편으로 작위적이고 한편으로 두려움을 느낄만큼 위협적이었다는 뜻입니다.
둘째, ‘남모씨’가 검찰 특수부에 와서 큰소리를 치고 호통을 치는 상황 속에서 한 사장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이 최초에는 부인하고 거부했던 ‘남모씨’가 설정해 놓은 허위사실대로 진술함으로써 검찰에 협조하기로 맘을 먹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남모씨가 벌인 ‘특수부에서의 호통’이 즉각 효력을 발휘하였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셋째, ‘구속된 상태에서 허위사실 주장’이라는 점에서 대한통운 곽 사장 사건과 한 사장 사건은 동일하지만, 곽 사장에게 압박을 가한 당사자는 검찰이었던 반면 한 사장 사건에서는 검찰은 완전히 빠지게 되며 그 압박의 역할을 ‘남모씨’가 고스란히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를 들먹이며 '협박과 회유'라는 양날의 칼로 한 사장을 압박합니다.
4. ‘남모씨’는 왜 허위사실을 제보한 것일까?
이 시점에서 ‘남모씨’는 왜 허위사실을 검찰에 제보했을까 하는 문제를 짚어보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일단 ‘남모씨’의 제보가 ‘허위사실’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어제까지 밝혀진 사실에 근거하여 ‘한 사장의 최종 증언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표현하는 말입니다.
‘남모씨’는 가장 중요한 핵심 증인인 만큼 앞으로 증인 심문과정을 통해 하나씩 밝혀지겠지만 그가 왜 검찰에 허위제보를 하였는가 하는 점은 이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될 뿐만 아니라 ‘정치자금 제공 여부’ 수준의 단계를 훨씬 뛰어넘는 문제가 되는 것이며 어쩌면 검찰 수뇌부의 진퇴와도 직결되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파괴력은 가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라 할 것입니다.
일단 드러난 사실만으로 몇 가지 가능성에 대하여 유추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다음에 언급하는 내용들은 어디까지나 여러 ‘가능성’에 대해 유추해 보는 것이며, 재판의 전 과정을 방청한 사람으로서의 어떤 느낌과 드러난 정황을 놓고 분석한 개인적 소견임을 밝힙니다.)
첫째, ‘남모씨’가 거론했다는 ‘서울시장 선거’ 문제에 주목해 본다면, ‘남모씨’는 서울시장 선거에 영향력을 미칠 목적으로 한 사장을 협박하고 허위진술을 하도록 강제하고 압박했을 가능성입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남모씨’와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측과의 연계 가능성, ‘남모씨’가 오세훈 서울시장의 당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정치활동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한, 검찰 역시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에 협조했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으며 그러한 정황은 사건의 날짜와 시간조차도 특정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 하나 없이 ‘정치자금을 주었다’는 제보 하나만으로 기소로 몰아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러한 가능성을 유추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할 것입니다.
둘째, ‘이번 사건은 정치적 목적을 가진 표적수사이며 곽영욱 사장 사건에서 위상이 추락한 검찰이 그것을 만회할 목적으로 벌인 수사’라는 한 총리 측의 일관된 주장에 주목해 본다면, 검찰은 한신건영 한 사장으로부터 회사를 빼앗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남모씨’의 처지를 이용하여 그러한 ‘남모씨’의 혐의를 풀어주는 대가로 남모씨에게 한 사장을 협박하는 역할을 맡겼을 가능성입니다.
그러한 전제를 놓고 유추해 본다면 그러한 방식은 곽 사장 사건에서의 학습효과 - 즉, 검찰 스스로 대한통운 곽 사장을 압박하였다가 법정에서 연로한 곽사장이“검사님이 무서워요. 눈을 이렇게 뜨고…. 검사가 죄를 만들잖아요.” 등등의 증언이 나왔던 최악의 악몽이 재현될 것을 우려한 검찰이 이번 사건에서는 뒤에 물러나 조정하는 역할을 하였을 가능성입니다.
셋째, ‘남모씨’가 한 사장에 대한 개인적 감정과 회사소유문제로 인한 다툼으로 앙심을 품고 한 사장을 음해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제보하였으며, 검찰은 그 제보에 의하여 수사를 하였는데 느닷없이 한 사장이 술술 소설을 쓰는 바람에 진술하는 대로 조서를 꾸며 기소 하였으나, 법정에서 증언번복으로 인해 공소내용이 완전히 뒤집히는 상황을 맞게 되었을 가능성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부실수사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위에 거론한 내용 중 어느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을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 하겠습니다만, 어떤 상황이든 검찰과 독립된 공적 기관에서 면밀한 수사가 있어야만 제대로 밝혀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저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5. 더 이상 사법기관의 치부를 보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대한민국에서 최고 엘리트들이 모여 있다는 서초동, 여러 사건들과 여러 차례에 거친 재판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사법 수준이 아직도 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분노를 넘어서 커다란 자괴감과 함께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그 어렵고 힘들다는 고시를 패스하고 어느 누구보다도 사회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기관에 소속된 사람들이, 국가로부터 녹을 먹고 국민으로부터의 권한을 위임받아 공적인 업무를 공의롭게 수행하여야 함에도, 그들 스스로의 치부에 눈감고 밝은 태양 아래 드러날 거짓에 무감각한 모습을 보아야 하는 것은 고통이상의 형극입니다.
이제는 그러한 모습을 보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나마 한 가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되는 것은 참으로 차분하고 침착한 가운데 재판을 진행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정리해 나가는 재판부를 보면서 얻게 되는 일말의 위안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