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를 누르지 않을 정성.
세상은 날이 갈 수록 빠르게 진보하고, 세월은 화살보다 빠르게 과거의 일부로 사라져 간다.
한..16년 전 쯤,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 때 쯤엔, 130만 화소 폰카로, 그 당시 유일하게
무려 접사-매크로가 된다는 점 때문에 촌스럽기 짝이 없는 그 때 그 폰을 골라서는
버튼키가 안눌리도록 줄기차게 사진을 찍어왔더랬다.
단 한 순간도 소중한 순간, 멋진 장면을 놓치지 않겠다며 핸드폰을 손에서 떼지 않을 각오로.
(물론 군대 있을 땐 '대부분' 어림도 없지만)
아무도 들여다 보지 않을 내 오래된 싸이월드 사진첩 어딘가엔, 나도 기억 못 할 소중한 사진들이
여전히 1과 0으로 거기에 그대로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망했다면서 pdf로 저장하니 마니 하는 소식도 들은 기억이 나는데;; 아직도 저장 안했다..;;)
그 후로도 여전히 사진을 찍다 보니 결국 크롭바디에 몇가지 렌즈들을 거쳐 지금은 오막포에 신계륵까지 왔다.
장비 만큼은 누군가는 꿈에 그릴 정도는 되지 싶을 만큼 끝자락에 다다랐지만,
그렇다고 내가 찍는 사진들이 언제나 끝내주는 건 물론 아니다 ㅋㅋ
나도 안다. 줌렌즈 F2.8 어쩌고 할 사람들아 나도 안다고 ㅋㅋ
누구나 공감할 얘기겠지만..렌즈가 어쩌고 구도가 어쩌고를 떠나서..
사진 한 장 찍기 정말 쉬운 세상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디지털 셔터음이 울렸다가
휴지통 아이콘이 눌리며 초점 잃은 순간들이 당신들의 현재로부터 떠나 기억도 못할 과거의 일부로 사라져 갈거라는 건
누구라도 다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나 사진 한 장에 담긴 추억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왔을거라 믿는다.
별 시덥잖은, 한 여름날 선풍기 앞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이라든가 하는 것 말이지..
어딘지도 모를 꽃밭에 주저앉아 손가락 두개로 브이를 그리고 있는 내복입은 사진 한장 쯤 있잖아 ㅋㅋ
(정말 비참한 지난 날들 속에 살아온 누군가들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해.
너의 소중한 순간에 너의 사랑하는 사람이 너와 함께 하지 못했다는 건 정말 유감이다.
거듭 미안하지만, 나는 그래도 그리 비참한 어린 시절을 보내진 않았기 때문에,
미안하게도 어린 시절 앨범이 부모님 집 장롱 안에 두어 권 쯤 있는 것 같다.
(너도 너의 자녀들에겐 그런 멋진 추억들 꼭 남겨주길 바란다..부디.))
그런데 말이야. 이 사진으로 말하자면 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초점도 안맞고 촌스러운 옷에..바가지 머리에..
우스꽝 스런 표정으로 찍힌 내 '흑역사'일텐데 말이야,, 하루에도 수십장씩 '셀카'를 찍어도 이 장롱 속 색 바랜 사진에
비빌 구석이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없단 말이지..
분명 어디 동네슈퍼에서 팔던 그 종이껍데기 일회용카메라로 찍은 사진일 것 같은데,
이건 수십년이 지나 진보된 문명의 힘으로 훨씬 더 선명하고 훨씬 더 실물에 가까운 이 사진도,
그냥,,수백 수천 장의 내 수 많은 셀카 중 한장 정도밖에 안된단 말이야..
단지 '이 사진은 좋아요 열개 쯤 받을 수 있겠군'정도로 말이지.
아이폰 사진첩 속 가득한 내 디지털 사진들은..
조리개가 뭔지, 노출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셔터를 눌러 찍은 사진들보다 나은 점이 도무지 없더라는 말이야.
똑같이 셔터버튼만 눌렀을 뿐인데.
홈버튼 바로 위에 있는 셔터 버튼을 누른만큼 삭제버튼도 지지 않을 만큼 많이 누르다 보니
이건 뭔가 아닌가 싶더라.
음.. 여전히 잘 모르겠다.
누군가는 천부적인 자질이 있어서 찍기도 전부터 어떻게 찍힐 지 눈에 보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셔터박스가 고장나도록 찍어도 자신이 무엇을 찍고 싶은지 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겠지.
오랫동안 사진을 찍어 왔다고 안보이던 게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깨달은 점은 있다.
아름다운 순간은 누군가의 '좋아요'를 바라지 않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쏟아'보낸 그 한 순간, 내 눈앞을 무심히 스쳐 지나가며
내 마음에 후회만을 남기지.
바로 그 순간이, 내 아들 딸이 빛 바랜 장롱 속 앨범에 스크랩 되었어야 할 사진이였는데.
그렇게...무심하게도..가버린단 말이지..
오막포에 신계륵이니 당연히 멋진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은 없어.
그렇다고 돈지랄도 아닌데 일본까지 가서 산 장비들로 아무렇게나 눌러댈 생각도 없지만.
분명한건, 정말 소중한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면, 정말 얌전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거다.
쭈그렁탱이 노인네가 될 때 까지 한참이나 남았으니 하고싶은 대로 살겠다고, 그렇게 빈 깡통마냥 꽹꽹거려서야
순간은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포커싱이 안된다는 말이다. 셔터를 누를 여유를 주지 않는 다는 거다.
매 순간을 소중하게, 젠틀하게, 마치 어제 내 인생이 끝날 각이였는데 어떻게 죽다 살아난 것 처럼.
나와 내 주변 환경, 내 시간, 모두들..
필름 사진 한 장 한 장 인화하듯 소중히 받아들이다 보면 조금씩은 보이지 않을까 싶다.
함께해서 소중한 이들과, 감사한 나날, 머무르고 싶은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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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까지 결혼 전의 내 생각.
지금? 물론 지금이라도 보였으면 좋겠다.
뭐 물론,, 그 무식하게 시커멓고 큰 카메라로 지금을 방해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냥 그 순간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을 뿐.
모든 아름다운 순간을 찍을수는 없다는 걸 이젠 잘 안다.
한장이라도 더 찍으려고 발버둥 칠 수록 추억은 더 매몰차게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갈 뿐,
나의 내복 입은 작은 뚱땡보는 지금 나에게 손가락 몇개를 펼쳐 보이며 웃고 있고, 카메라는 장롱 속에 있다는걸 잘 안다.
장롱 문을 열면 뚱땡보의 웃음은 과거의 일부로 사라져 간다는 걸 잘 안다.
단 십초만 있어도 내 아들의 인생샷을 찍을 수 있을 거라고 문득 생각하지만, 이내 마음을 접는다.
이제서야 어렴풋이 알 것만도 같다.
사진에 미련을 갖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은.
지금 이 순간을 누릴 마음의 여유를 가졌다면, 무책임하게 지금을 무시하고 셔터를 냅다 누르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할 정성을 마음에 담고 있다면.
카메라고 나발이고 다 무슨 소용이냐.
지금 여기에, '나도'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