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한 여페친과 나눈 대화 (스압유)
게시물ID : freeboard_13188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늬만츤데레
추천 : 0
조회수 : 28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5/22 21:47:26
오늘 수시간에 걸쳐서 한 여페친과 나눴던 대화입니다. 글을 보면 제 나름의 결론이 있고 글 과정을 보시면 공감하실 수 있는 부분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을텐데 가감 없이 의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나 : A씨. 저 요즘 이 문제로 머리가 너무 혼란스러워요. 여성들이 어떤 마음인지 많이 알겠고 남성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하거나 자신들의 가해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도 알겠는데...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실 남성도 왜곡된 사회구조속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피해자거든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양과 질이 더 압도적이긴 하겠지만요. 저는 이걸 바꿀 수 있는게 정치라고 믿고 있어요. 여성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나요? 그게 참 궁금해요. 

A : 나님의 혼란스러움과 안타까움, 답답함을 알 것 같아요. 남성도 역시 피해자라는 말에 십분 동의하구요. 그러니 남성페미니스트도 적지 않은거라 생각해요. 사실 저도 나님 마음과 다르지 않아요. 왜냐면 저나 나님이나 양성이 평등한 사회에서 단 일초도 살아본 적이 없거든요. 나님이 정치적인 해결로 결론 내기까지 얼마나 심란했을지도 짐작해요.

근데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운거예요. 여성혐오는 여성에게 자기혐오의 형태로 뿌리 깊게 박혀있거든요. 여자들도 알아요. 당장에 바뀔 수 없다는 걸. 그리고 그런 문제에 매달리기에 당장의 일상조차 헬조선에선 버겁기도 하죠. 지금은 그래요. 이것은 그저 진단을 시작하기 위한 목소리일 뿐이란걸.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 국민들은 멘붕에 빠졌어요. 어디서부터 진단을 시작해야 할지 우왕좌왕 했어요. 구조적인 문제가 총망라된 사건 앞에서 어디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 이런 저런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던걸 기억해요.

이번 살인사건도 비단 여성혐오의 문제뿐 아니라 비틀린 구조의 문제가 총망라되어 있기도 해요(제가 봤을 땐) 그러므로 나님이 말씀하신 정치적인 해결이 완전히 틀리다 할 수 없어요.  다만 여성을 골라 살해하는, 여성인 이유로 무고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정말로 현실에서 터져버렸고 그저 그런 사건 중 하나로 지나질 수 있지 않을만큼 여성들의 공포가 극에 달했죠. 그렇기에 가장 핵심인 여성혐오부터 이 사건은 진단이 시작되야 해요. 세월호 때도 우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를 묻고 고민했어요. 각자가 할 수 있는 한은 하기도 했고. 시위에 나가든 기부를 하든 페이스북에 정보를 꾸준히 공유하고 알리든. 그리고 일상에서 노란리본을 달고 붙이고 나누기도 하고. 가장 하기 쉬웠던건 지금의 자리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먼저 어린 친구들을 배려하는 거였어요. 학생에게 반말하지 않고 횡단보도나 차도에서 먼저 지나갈 수 있게 차를 멈추고 기다려주고. 그들에게 부채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세월호엔 학생들만 있던게 아니니 일하며 만나는 사람 지나치는 사람에게 존중을 실천하려 노력했어요. 페미니즘은 생각보다 접근이 쉬울 수도 쉽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저도 잘 몰라서 계속 보고 익혀요ㅎㅎ그래야 내 안에 여성혐오를 계속 발견해나갈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나 아닌 다른 여성을 이해하고 그에 따른 행동양식을 왜곡하지 않으려 생각하고 고민해요. 하다보니 부차적으로 그전엔 몰랐던 남자들의 고충도 조금씩은 이해가 되어가고 있어요.

같이 고민해줘서 고마운 마음 갖고 있어요... 따님께 신경써주세요. 아빠가 대우하는 그대로 남편을 선택하게 되요. 자식에게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죽을 때까지 우주거든요. 폭력적인 애인, 남편에게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들은 남자가 위협해서 도망 갈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정말 사람 보는 눈이 없었거나 폭력도 사랑으로 착각하는 심리적 병이 있는건데, 그것의 뿌리가 원래는 아빠와의 관계일 가능성이 크거든요. 나님이 대하는 그대로 따님은 그런 남편(애인)을 고를 수 밖에 없어요. 인간은 익숙한 것을 사랑으로 생각해요.

음..같은 맥락으로 여자에 대해 살인에 가까운 증오를 품는건 근본적으로 엄마에 대한 공포심(모성공포)가 있기 때문이라고 전 생각하고 있어요. 거기에 가부장제 문화가 부채질을 하며 그 증오를 정당화 시켜주고 있다고 보고요. 근데 엄마를 증오하는 마음이 생기는 근본적인 원인 또 다시 가부장제에 있다고 봐요. 저는..

나 : 이번 사건을 보면서 자책감 죄책김 무기력감 그리고 억울함 그런 다양한 감정들이 복합이 돼서 도무지 정리가 안돼더라구요. 솔직히 말해서 세월호 때 보다 전 더 힘들었어요. 세월호 때는 피아 구분이 확실해서 정치적 해법이 분명하고 그걸 거부하는 쪽도 분명했는데 이번 사건은 평소에는 함께 아군이라고 여기도 사람들끼리도 총질하는 상황이 연출되니까 너무 힘들어지는 거에요. 어디까지가 책망이고 어디까지가 호소인지도 불분명하고요.

며칠 동안 고민하고 지켜보면
서 느꼈던 점은 내가 너무 여성들의 고통을 등한시 하고 있었구나. 그들의 절규가 이토록 갑작스럽게 터져나오고 심지어 그것이 남성에 대한 책망으로 들리는 이유도 그래서이구나라는 것도 알겠어요.

가까운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좀 떨어진 여성들의 이야기는 너무 날이서있고 그 날들 때문에 나 자신이 이성적으로 반응이 안되어서 말이죠. 왜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도 사실 고민이었거든요. A씨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좀 정리가 되요. 가장 가까운 존재인 남성들이 가해를 하고 자신들을 혐오할 때의 감정이 이젠 많이 이해도 가고요.

저는 이 문제를 매우 정치적인 사안이라고 생각해요. 구성원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우선시 되야되겠지만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기성세대들에게 그걸 기대한 다는 건 참 힘든 일이거든요. 결국 제도가 선결이 되어야 하고 젊은 세대들이 그들을 설득하고 또 스스로를 반성하며 인식을 발전시켜나가야 겠죠. 아마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런 정보들을 공유하고 토론하면서 뭔가 일조할 수 있다라고 생각해요. 

저 같은 남성들은 개선의 의지는 분명히 가지고 있지만 이 문제가 어떤 인식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문제는 그것을 알기도 전에 부정적 감정이 충만한 피드백을 먼저 받게 되니까 두렵기도 하고 반감도 생기는 거죠.

A : 부정적인 감정이 충만한 피드백.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나님이 피아구별이 쉽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이 부분은 여자들도 마찬가지랍니다. 어떤식이냐면 강남에서 죽은 저 여자와 내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심각한 절망감에 빠지는 건데요, 이건 여자들이 커오면서 늘상 겪어왔던 크고 작은 성차별, 성희롱, 성폭행(누군가는, 적지 않은 수의 여자들은 강간당한 경험과 불가피한 낙태의 상처도 갖고 있겠죠) 의 경험들을 제대로 들어내어 상처를 아파해보거나 치유받아본 적이 없거든요(기성세대들이 겪은 가난의 상처와 또 그 이전의 세대들이 겪은 전쟁의 상처, 더 나아가선 일제치하에서 겪은 민족의 상처도 마찬가지로 제대로 인정받고 상처를 치유받은 적이 없죠)

여자는 그런 경험들이 다섯살에 겪든 여덟살에 겪든 스무살에 겪든 나이에 상관없이 "내가 뭘 잘못했기 때문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회에서 가정에서 그렇게 가르치니까요. 그러다보니 상처를 은폐하고 마음 깊이 묻어버리죠. 혹은 버지니아 울프처럼 기억을 해리시켜 정신분열을 일으키기도 하죠. 아마 난 인간이 아닌 짐승을 죽였다.라며 어리 시절 자신을 성폭행한 이웃집 아저씨를 어른이 되서 찾아가 죽인 유명한 사건을 기억하시리라 생각해요. 이때 꼭 강간당했던 여자들만 분노했던건 아니였어요. 자신의 크고 작은 은폐시켜두었던 상처들을 그 사건에 투영시켜 여자들이 피아를 구분키 힘들었던 겁니다. 이번 사건도 저를 포함한 여자들이 딱 그래요. 

여자들은 분노와 절망으로 어쩔 줄 모르고 남자들은 무력감과 출구없는 답답함에 어쩔 줄 모르고 지금 그런거 같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을 당시 남자들은 밖에선 진보를 위해 이 한몸을 내던지다가도 집으로 돌아와선 아내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가정폭력을 일삼고 성매매의 낭만에 도취했다고 해요. 뭔가 잘못됬죠. 기묘한 정치운동이었어요. 

여자들의 포스팅에서 요즘 이런 말을 하는걸 종종 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도 존중할 줄 모르면서 자신이 진보인양 떠들어대지 말라고. 온건한 분노의 형태예요.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남페친 다 떨어져나가고 그러면 박해감 느끼고 자존감이 떨어지니까 말을 돌려하는거죠.. 여자들도 여성혐오 있고 혼란스러워서 우왕좌왕 하고 있는거예요. 그래서 날이 서있는거고 질책과 한탄의 분별이 모호한 감정이 쏟아지는거구요..

솔직히 저도 아직 제 자신을 추스리기 힘들어요ㅠ 저도 책망과 한탄의 구별이 쉽지 않은 정신 사나운 짓을 하고 있으니까요ㅠ

나 : 저도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그거에요. 그럼 나도 가해자란 건가? 내 아내, 내 딸, 내 어미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실 상상도 못해봤거든요.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공포가 뭔지를 확인하게 되면서 그들이 두려워하는 남성으로 부터의 폭력이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어요. 맞아요. 저도 가해자이지만 내 주변의 여성들이 어느 정도 용인해주고 심지어 인지 조차 못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따지고 보면 
저도 되게 폭력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런거 있잖아요. 어려서 부터 일상적으로 겪게 되는 일상적 폭력. 지금도 누군가에게 맞는 꿈을 종종 꾸죠. 남자인 나도 이럴 진데 여성은 오죽할까? 라는 생각을 이제 하게 되요.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런 현실이 바로 잡히길 바라는 수 많은 남자들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이에요. 물론 그들도 피해자고 또 여성들이 가진 인식에 공감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그래도 뭔가 깨달음이 있으니까 저도 생각을 좀 바꾸겠습니다. 먼저 여성들에게 공감하고 그녀들이 처한 상황들을 리얼하게 받아들이고 내가 처한 현실과 연결하여 이 문제가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문제가 아닌 인간이 극복해 나가야 할 본연의 문제임을 좀 더 자세하게 공부하고 얘기해보겠어요. 

많은 도움 됐습니다. 감사해요.
출처 나님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