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3.1절...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2호선에 탑승했다. 다행히 금방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지하철은 당산역에 멈췄다.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탑승했다. 그리고 50대로 추정되는, 머리카락이 아주 검고 짧은 파마머리를 한 아주머니가 척 척 다가와 내 앞에 섰다. 그리고 바로 나를 툭 치고 말하셨다. "나 다리아픈데 앉으면 안 될까?" 순간 여러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인터넷에서만 보던 일이 내게 일어났구나. 거절하면 어떻게 되지? 왜 하필 나일까? 안 들리는 척 할까? 정신이 모자란 애처럼 욕을할까? 내가 울퉁불퉁하고 인상 더러운 남자였어도 이렇게 행동했을까? 이런 일 안 겪으려면 개인 승용차를 타고 다녀야 하는걸까? 몇 초의 정적 끝에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러웠던 나는 주춤주춤 일어났다. 아줌마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그대로 휙 앉았다. 화가 치밀어올랐다. 다행히 그 아줌마 옆자리 여성분이 "저 다음에 내리니까 앉으세요"라고 양보해주신 덕에 앉아서 갈 수 있었다. 내가 내릴 때, 아줌마의 얼굴을 쳐다보니 인상을 찌푸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아주머니의 삶이 어떨지 알 것 같았다.
98년 전 누군가는 나라의 위대한 영웅이 되었고, 그보다 30~40년을 더 산 누군가는 지하철에서 강제로 자리 양보를 요구했다.